내가 가장 미워했던 것

나와 나를 싫어하는 나

by 으농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제일 미워하던 건 과거도 아니고,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도 아니고,

그냥 나 자신이었구나 하는 생각.


좀 어이가 없기도 했는데, 이상하게 조금 뿌듯했어.

그걸 인정하는 내가 기특하다는 느낌도 들었고.


나는 오래 우울했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거의 기본값처럼 따라붙었어.

뭔가 큰 사건이 있어야

그런 마음이 드는 게 아니라,

그냥 작은 실수 하나에도 바로

“아 진짜 싫다” 같은 생각으로 훅 떨어져 버렸어.

그게 너무 익숙해서 이상하다는 느낌도 없었어.


근데 어느 순간,

그 감정을 딱 바라보고

“아 이게 자기혐오구나”라고

알게 된 순간부터 조금씩 달라졌어.

이게 해결된 건 아니야.

그냥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해야 하나.


예전엔 혐오가 올라오면 그게 그냥 ‘나’였어.

분리도 안 되고,

감정이 그냥 그대로 나를 삼켜버렸거든.

근데 요즘은 좀 다르게 느껴져.

‘나를 싫어하는 나’를

내가 싫어하는 느낌이 생겼어.

이게 말은 헷갈리는데,

감정이랑 나 사이가

아주 살짝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야.

그 틈이 진짜 얇기는 한데,

그 덕분에 내가 완전히 끌려가지 않게 되더라.


창밖을 보면 충동이 올라오던 시기도 있었어.

이사한 집이 높아서 처음에는 더 강했어.

근데 시간이 지나 적응하니까 충동이 줄었어.

그걸 보고 조금 놀랐어.

“내 몸이 스스로 나를 지키는구나” 하고.

이게 별거 아닌데, 나한테는 되게 큰 힌트였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조금 더 강하구나

그런 느낌.


지금도 나는 정말 괜찮지 않아.

자기혐오도 계속 올라오고,

예고 없이 감정이 무너지는 날도 있어.

근데 이제는 그 감정이 올라올 때,

아주 잠깐이라도 멈춰서

“아 또 이 패턴이네”라고 말할 수 있게 됐어.

이 멈춤 몇 초가 예전엔 없었거든.

근데 지금은 그 몇 초 때문에

폭주하는 날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어.


큰 변화는 아니야.

근데 나한테는 의미 있는 변화야.

혐오를 정확히 바라봤다는 것.

그리고 그 혐오랑 나 사이에

아주 작은 거리라도 생겼다는 것.

지금 나는 딱 그 지점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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