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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현 Jan 28. 2023

[페일 블루 아이] 이성과 감성 그리고 도덕성의 관계

이성은 감성을 배제하고 팩트에 근거해서 논리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아니다

넷플릭스 영화 <페일 블루 아이>는 허구의 이야기에 미국의 실존문학가 에드가 알렌 포우를 등장시킨다. E.A. 포우가 실제로 다녔던 웨스트포인트 육사를 배경으로 육사생 살인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줄거리다. 그 탐정을 조력하는 학생이 포우다.


영화에서 포우는 감성적이고 몽환적이며 영적이면서도 매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포우의 시는 시 특유의 감성을 운율로 표현하고, 비현실적인 내용의 소설을 이성적으로 묘사하는 등 감성적이면서도(내용) 매우 논리적인(형식) 문학(포우는 최초의 추리소설 작가)을 추구했다고 평가 받는다.


탐정 역시 사건 풀이를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추적해 나가지만, 그 역시 감성과 이성이 혼재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살인 사건 해결을 다루면서 증거보다는 논리적 정합성에 비중을 두는 것으로 보아 영화는 전반적으로 인간의 이성과 감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듯하다.




"영화에서 에드거 알렌 포우는 감성적이고 몽환적이며 영적이면서도 매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포우의 시는 시 특유의 감성을 운율로 표현하고, 비현실적인 내용의 소설을 이성적으로 묘사하는 등 감성적이면서도(내용) 매우 논리적인(형식) 문학을 추구했다고 평가 받는다.

탐정 역시 사건 풀이를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추적해 나가지만, 그 역시 감성과 이성이 혼재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위와 같이, 넷플릭스 <페일 블루 아이>에 대한 소감에서 나는 마치 감성과 이성이 대립하는 성질의 능력인 것 마냥 표현했지만, 영화는 사실 이 두 능력을 대립하는 성격의 인간 특성으로 보지 않는다.


19세기 초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탐정(크리스찬 베일 분)은 육군사관학교에 개인적 반감을 갖고 있다. 그 반감을 교장에게 표출하면서 내뱉는 말에서 영화가 내포하는 이성의 역할이 드러난다. 탐정이 육사에 반대하는 이유는 육사의 규칙과 규율이다. 지나치게 엄격한 나머지 학생들의 '이성'을 억압한다고 그는 성토한다.


'지나치게 엄격한 규칙과 규율이 이성을 억압한다'라는 말은 감성(감정)과 이성을 반대되는 성질의 능력으로 인식하는 한국의 흔한 상식과 철저하게 어긋난다. 이성적인 사람이 감성(감정)을 잘 제어해 규칙과 규율을 잘 지킨다고 여기듯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성과 감성과의 관계는 서로 반비례한다. 그러므로 규칙과 규율이 엄격할수록 이성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탐정은 정반대로 말한다. 반비례하는 관계는 이성과 감성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과 규칙, 규율이라고.


이성이 감성(감정)을 제어하는 일을 하는 능력이 아니라면, 이성은 과연 무엇일까? (이 부분은 스포) 탐정은 육사에 개인적 원한이 있다. 그 딸이 육사생에게 강간을 당했고, 그로 인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 그가 학생들의 이성 능력과 학교의 엄격한 규칙 및 규율을 비판한 지적은 이러한 배경에서 기인한다. 즉, 이성은 단지 감성(감정)을 배제하고 사실이나 규칙에 입각해 행동하는 능력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도덕적 판단과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지나치게 엄격한 규칙과 규율이 억압하는 것은 감정(감성)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도덕 능력이 된다. 한편, 이야기에서 도덕과 이성은 깊은 관련이 있지만 이성과 감성 그리고 논리는 서로 영향을 끼치는 관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A.E. 포우나 학생 건강을 살피는 외과의사 박사가 보여주듯 감성도 매우 논리적일 수 있고, 미신과 주술도 합리적일 수 있다. 결국 도덕은 감성보다 이성과 훨씬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는 보여주고자 한 것 아닌가 한다.


인간을 인간답게(도덕적 인간을) 만드는 능력이 곧 이성이라는 사실은 근대 이후 사회의 기초인 '개인'이 탄생하게 된 씨앗 개념이다. 오늘날 모든 인간을 평등하고 자립 가능한 존재로 만든 인간관이 바로 내 행동이 신의 뜻에 부합하는지 아닌지(양심)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성)이 모든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이성은 단지 팩트에 근거해서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도덕 능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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