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켈리] 자립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다

성공한 노년의 남자, 비로소 잃어버렸던 '나'를 찾고 은퇴를 번복하다

by 홍주현

넷플릭스 영화 <제이 켈리>를 보았다. 두 세 번 끊어봐서인지, 보는 동안은 살짝 지루한 감이 있었는데, 보고 나니 '개인주의' 관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십 년간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군림한 제이 켈리. 연기자로 살아온 그의 삶은 오롯이 스크린 위에 남았지만, 정작 '나다움'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영화소개처럼 제이 켈리는 은퇴를 고려해도 될 정도로 성공한 노년 배우이다. 그가 공로상을 받기 위해 이태리에 가는 동안 겪는 이야기가 그의 내면 변화를 중심으로 그려진다.


언뜻 이 영화는 메시지가 진부해 보일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영화 리뷰도 좀 뻔하다. 젊은 날 가족을 소홀히 하면서 성공에만 목매던 노년 남자가 지난 날을 돌아보면서 후회하다가 결국 그동안 자기 성과를 보면서 감회에 젖는 모습을 중심으로 인생의 아이러니라느니 후회의 씁쓸함을 남긴다느니 등과 같은 내용이다. 그런 식으로 보면, 이 영화가 특별할 게 아무 것도 없다.


포인트는 성공에만 목매던 그가 뒤늦게라도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이제부터라도 가족에게 잘하려고 하는 데도, 가족이 그 구애를 거절하는 데에 있다. 거절이라지만, '그때 나 너무 상처 받았어. 용서 못 해!' 이런 마음이 아니다. 그냥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가버렸고, 어쨋든 지금 아빠/아들과 특별히 가까이 지내지 않아도 자신은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태껏처럼 각 자 자기 길 가자는 의미다.


가족 별로 중요치 않다, 내 일, 즉 배우로서의 성공이 가장 중요하다던 제이 켈리가 노년이 되자 가족을 찾는 변화도 '개인주의'의 심리적 관점에서 눈여겨 볼 지점이다. 물론, 젊은 날 제이 켈리의 일에 대한 몰입은 배우라는 일 자체보다는 출세주의적 성공 욕구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젊은 날에는 그가 정서적으로 독립해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다른 누구, 즉 타인(대표적으로 가족)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화심리학 조사에 의하면, 성별, 나이, 인종/문화권 등을 기준으로 했을 때 개인주의 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젊은 백인 남성이다. 하지만 그랬던 백인 남성도 노년이 될수록 타인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는 성향이 증가한다. 아버지와 딸이 자신의 수상 시상식에 와서 함께 기뻐하고 기념해달라며 부탁하는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


하지만 그들은 거절한다. 그리고 결국 매니저와 함께 한다. 매니저는 자신이 관리하는 배우를 가족처럼 여기는 등 매우 따뜻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매니저가 가족의 자리를 대신한다고 볼 수 있을까? 가족과 같은 관계이기는 하지만, 조금 다르다. 매니저와는 일로 엮인 관계라는 점에서 아버지와 딸처럼 그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매니저와 함께 앉은 시상식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출현한 작품 그리고 그 영화들을 보는 관객의 표정을 보면서 진정 자신의 일을 사랑하게 되고, 그만두려던 연기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결심한다. 연기라는 일이 그의 정서적 버팀목이 되는, 진정한 개인주의자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특별하고 의미있다. 잃어버렸던 '나다움'을 다시 찾는 그 모습은 바로 성공이라는 외적 성취, 또는 가족이라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정체성을 찾으려 했던 시도를 멈추고 홀로 서는 순간이다. 이제 그에게 일은 성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비로소 그 자체가 된다. '개인'의 취미처럼. 성공한 남자, 하지만 가족에게 끝내 버림받는 이야기이지만, 개인주의 시각에서 이 영화는 결코 씁쓸하지 않다. 오히려 희망적이고 밝다.


이 영화를 보고 씁쓸한 느낌이 든다면, 아마 스토리 전개가 이런 식이어야 희망적이라고 여기지 않을까? 뒤늦게라도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그에게, 그를 원망하던 가족이 이렇게 저렇게 자기 서운함을 토로하고,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자신에게도 아버지/아들인 그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걸 깨달으면서 소위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서로 얼싸안는 애~절절한 모습. 한국에서 쓰고 만들었다면, 제이 켈리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전개됐을 가능성이 크다. 역시 남는 건 가족, 사람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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