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춘욱 Aug 05. 2021

새 책, "투자의 신세계"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

경제적인 문제에 '정의'를 집어넣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역사상 가장 심각한 경기불황을 들라면 역시 '대공황'이 떠오릅니다. 다우지수가 고점에서 90% 폭락한 것은 물론, 경제성장률 -30%를 기록한 역사상 최악의 경기침체였습니다. 대공황을 유발한 요인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제시됩니다. 컨베이어 벨트를 활용한 포드주의 생산 방식이 '공급과잉'을 유발했다는 설명부터, 1929년 주식시장의 붕괴를 유발한 '거품'에 초점을 맞추는 견해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1907년 그리고 더 앞의 1873년에도 심각한 주식시장의 붕괴, 그리고 공급과잉이 있었습니다만.. 1929년처럼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인 침체가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대체 1929년 10월의 주가 폭락은 왜 그토록 길고도 힘겨운 불황으로 연결되었을까요?


제가 참여한 책 "투자의 신세계" 1부는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미국과 영국의 정책 금리 흐름을 나타내는데, 1929~1933년을 전후해 두 나라의 금리 방향이 종종 달라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공황이 절정에 달했던 1930년 영국의 금리(검정선)가 무려 6%까지 인상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극심한 불황이 발생한 상황에서 금리를 인상하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그 뒤에는 영국의 '금본위제'에 대한 집착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금본위제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각국 화폐의 가치를 금에 고정시킨 일종의 고정환율제도였습니다. 예를 들어 1온스의 금에 대해 미국이 30달러로 교환해주고, 1온스에 대해 영국 파운드가 10의 비율로 교환된다면 1파운드는 3달러의 가치를 지니는 셈입니다. 

고정환율시스템 하에서 각국의 금리는 동일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국의 금리가 5%인데 미국 금리가 10%라면, 영국에서 미국으로 금이 유출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국경제는 금의 유출로 경제 내 화폐 공급이 줄어들고 은행들은 빠져나가는 돈을 잡아 두기 위해 이자율을 인상해야 할 것이며, 반대로 미국은 금의 유입으로 이자율이 떨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두 나라의 금리는 언젠가는 동일한 수준으로 수렴하게 될 것입니다.그러나 이 과정은 매우 힘겨울 것이며, 특히 금의 유출이 발생한 영국경제는 극심한 불황을 겪었을 것입니다.


1929년에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영국경제는 1차 대전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경제는 호황을 넘어 버블 레벨에 도달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미국 중앙은행은 정책금리를 인상했습니다. 6%까지 올렸죠. 이건 미국 입장에서 타당한 일이었습니다. 경제를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금리를 인상해 주식시장에 유입되는 거대한 유동성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죠.

그러나 영국 입장에서는 이건 '횡액'이었습니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했는데, 영국이 금리를 인상하지 않으면 금이 유출됩니다. 반대로 금리를 미국 수준에 맞추면, 막 회복되던 경제가 망가집니다. 어떻게 해도 영국경제에 좋은 일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미국 따라서 금리를 인하했습니다. 그리고 대불황이 시작되었습니다.


1930년, 미국은 주식시장의 붕괴에 대응해 금리를 1.5%까지 인하했고, 영국도 금리를 따라 내렸습니다. 그러나 영국경제의 상황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정치 불안이 높아지는 가운데 "영국이 금본위제를 폐지할 것"이라는 예상이 부각되며 영국에서 금이 유출되자, 영국 정책 당국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당시 독일이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금리를 인하한 것도 영국의 금본위제 폐지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었죠.

그리고 영국의 선택은 "금본위제 유지"였습니다. 1931년 봄 정책금리를 다시 6%까지 인상해, 금의 해외 유출을 막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물론 미국도 영국의 금리인상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정환율제도이기에, 유력한 국가가 금리를 인상하면 다른 나라도 이를 따르지 않으면 안되니까 말입니다. 

결국 파국이 왔습니다. 불황이 '대공황'으로 발전했죠. 경기가 심각한 불황에 처했는데, 금본위제를 사수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으니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습니다. 기업과 가계의 파산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람들이 은행에서 일제히 예금을 인출하는 일. 즉 뱅크런이 발생했습니다. 한 해에 수 천개의 은행이 망하는 판에 경제가 잘 돌아갈 리 없습니다. 


1931년 9월, 역사적 순간이 찾아 왔습니다. 영국이 금 본위제의 폐지를 공식 선언하고 금리를 2%까지 내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고집을 부렸습니다. 루즈벨트가 새로운 대통령에 취임한 1933년이 되어서야 금 본위제를 폐지하고 금리를 인하했죠. 

지금 돌이켜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금본위제가 대체 무엇이기에, 국민들의 고통을 감수하고 유지하려 했던 것인지 말입니다. 당시 정치가들이 가진 지배적인 신념이 금본위제의 유지에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겠지만, 아래 <사진>에 나타난 것처럼... 수많은 가정의 삶을 파괴할만큼 가치 있었던 것이었는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사진 출처: 위키.


대공황 이후에도 이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1989년 일본의 자산가격 붕괴 및 장기불황도 이 비슷한 '정의감' 혹은 '철학'이 빚은 참극이었습니다. 자산시장이 붕괴되고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중에도 '자산버블 척결'을 외치면서 금리인상 기조를 유지했었으니까요. 

더 나아가 2008년 이후 시작된 유럽의 장기불황도 독일의 '신조'가 빚어낸 일이었죠. 남유럽 국가를 '돼지들'이라고 멸시하며, 경제가 망가진 나라에게 재정긴축을 강요했던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과정에서 남유럽 국가의 의료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망가졌는지 생생하게 목격한 바 있죠.


교통사고가 발생해 큰 부상을 입은 이에게 "넌 왜 그렇게 부주의하게 운전하냐"고 꾸짖는 구급대원의 모습일 떠오릅니다. 누구나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경제정책의 당국자는 경제위기가 발생할 때에는 잠시 자신의 신조를 내려놓고 실용주의적인 대응을 최우선으로 했으면 합니다. 

이상과 같은 과거의 경험은 투자자들에게도 좋은 투자의 잣대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불의의 충격으로 자산가격이 폭락하고 경제가 망가졌더라도, 정책당국이 신속한 대응에 나설 때에는 미래를 지나치게 비관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2020년 3월이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상초유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각국 정부가 적극적인 경기부양정책을 펼친 결과, 지금의 경기회복을 누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1989년 일본, 그리고 2008년 이후의 독일 정부 같은 일이 벌어질 때에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 봅니다. 경제는 유리 그릇과 같아서.. 한번 망가지면 복구하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히 금융기관들이 연쇄적인 위기에 처하고, 이게 다시 대출회수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때에는 후유증이 상상 이상으로 커질 수 있음에 유의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IMF, "일시적인 인플레에 긴축으로 대응말라" 권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