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의 마음 이해하기

by 인기



악당의 치명적인 결점은 ‘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봤던 TV 만화의 악당들은 하나같이 말이 많았다. 치밀한 계략을 통해 주인공을 궁지로 몰고 완벽한 승리를 목전에 둔 바로 그 순간, 악당의 독백이 시작된다.

보통 독백은 승리에 대한 자아도취로 시작해 주인공과 세계에 대한 한풀이로 이어진다. 그런데 얼마나 길고 장황한 지- 악당이 자기 독백에 취해있는 사이- 주인공과 친구들은 반격을 준비하고 결국 악당은 패배하고 만다.


물론 악당은 패배해야만 한다. 그것이 부여받은 악당의 소명이다. 만약 주인공을 궁지로 몰자마자 -독백을 시작하지도 않고- 무심하게 죽여버리는 악당이 있다면 TV 드라마와 영화의 제작자들은 그를 고용하지 않을 것이다. 악당은 독백을 통해 스스로의 패배를 향한 시간을 벌어야만 한다. 슬프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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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년 전 영화가 된 매트릭스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스미스 요원이었다.


스미스 요원은 인간에 대한 엄청난 적개심을 가진 코드화 된 '프로그램'이다. 영화 초반엔 역시 악당답게 말이 많다. 어리숙한 주인공 네오를 붙잡아 앉혀두고 ‘인간이란 종이 왜 사라져야 하는가’에 대한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주인공 네오가 세계의 구세주로 밝혀지자 스미스 요원도 달라진다. 영화 중후반 그는 네오를 붙잡자마자 곧장 죽여버린다. 지체도 망설임도 없는 즉각적 승리. 관객들은 경악한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스미스 요원에게 매료됐다. 그는 악당 이상의 악당이었다. 쿨하게 악당계의 규범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몇몇 악당계의 ‘아웃라이어’들을 제외하면 악당들은 대부분 혀가 길다. 그것은 TV 드라마와 영화 제작자들이 그들에게 부여한 존재론적 숙명이다.


‘이렇게 주절대다 보면 나는 패배하겠지만, 나는 꼭 말해야겠어요’


나는 가끔 악당들이 안쓰럽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원한을 가진 채 살아왔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보다 부당한 상황에 더 자주 놓였고 그것이 그대로 가슴속 한이 되었다. 건강한 방식으로 응어리를 풀어낼 기회를 갖지 못했다. 평범했던 그들이 악당이 될 때까지,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았다. 말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선천적 사이코 패스나 타고난 악당은 다르겠지만 - 대부분의 악당들은 가슴속에 불덩이를 품고 사는 딱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승리를 목전에 둔 그 순간 가슴속에서 불덩이를 꺼낸다. 이제 세상을 향해 불덩이의 존재를 알릴 때가 온 것이다. 주인공은 쓰러져있고 악당은 독백을 시작한다.


보통 악당들의 한풀이 독백은 이러한 구조로 되어있다.


1단계: 내가 이렇게 행동한 건 내 탓이 아니다.

2단계: 바로 너 혹은 사회가 날 이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3단계: 그렇기 때문에 난 이렇게 행동할 권리가 있고 넌 이런 꼴을 당해도 된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의 대화 어디서 낯익지 않은가? 연인과 부모 자식처럼 가까운 사이에서 극한의 순간에 다다랐을 때, 주고받는 상처의 말들이 대개 이런 구조다.


‘불화의 책임은 너에게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못되게 굴어도 된다’


어쩌면 우리는 악당의 마음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은 악당에게 마음이 쓰이고 또 한편으론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새해의 다짐: 우리 모두 악당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그들이 세상에 ‘짠’하고 나타나서 독백을 시작할 때

따뜻하게 달래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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