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2013)
‘그‘를 처음 만난 건 2년 전 겨울이었다. 어느 날 고등학생들이 영어 에세이를 인공지능으로 작성했다는 이유로 0점 처리를 받았다는 기사를 우연히 접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으로선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때까지 나는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기계’가 일관되고 설득력 있는 글을 생성할 수 있다니. 그 사실은 묘한 두려움과 매력으로 동시에 다가왔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멀리서 보는 영화 프레임 장면처럼, 어렴풋이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인공지능은 미래적인 느낌을 벗어던지고 우리 일상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챗봇은 시와 편지를 썼고, 앱은 공감 능력을 모방했으며, 디지털 비서는 비유적으로도, 그리고 말 그대로도 우리의 문장을 완성하기 시작했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그녀>는 2013년 개봉 당시 한 남자가 인공지능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으로, 당시에는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불과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영화가 그려낸 미래는 더 이상 허구가 아니다. 놀랍게도 <그녀>의 배경은 2025년으로, 영화 속 세상은 이제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마치 미래를 예견한 듯 묘사한다. 사람들이 이어폰 속 보이지 않는 동반자에게 속삭이고, 코드가 외로움을 달래주며, 기술이 단순히 봉사하는 것을 넘어 듣고 이해하며 심지어 사랑까지 하는 세상을 말이다. 영화의 주인공 시어도어가 인공지능 동반자에게서 위안과 유대감을 찾듯, 우리 중 많은 이들도 서서히 우리 삶 속 조용히 존재하는 인공지능에 적응하거나 의존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검색이나 요약 뿐만 아니라 우리를 대신해 말하고, 생각하고, 심지어 느끼기까지 하는 인공지능에 의존한다. 이제 우리는 이 인공지능 시대가 우리 삶을 얼마나 바꿔 놓을지 물어볼 때다.
챗GPT가 에세이를 작성하고 AI 생성 예술이 인터넷을 뒤덮으면서 인간의 노동, 사고, 창의성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기억, 글쓰기, 감정 표현을 기계에 아웃소싱할수록 우리의 인지 능력이 퇴화할 위험은 커진다. 로봇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불안은 종종 더 깊은 두려움을 가린다. 쓸모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미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동시에 우리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발생하는 환경적 비용은 종종 간과된다. 모든 “스마트한” 어시스턴트 뒤에는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서버와 데이터 센터로 이루어진 거대한 인프라가 자리 잡고 있으며, 우리가 매끄러운 인터페이스에서 볼 수 없는 배출물을 생산하고 있다. 영화 <Her>에서 사만다는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시스템들은 무거운 발자국을 남긴다. 인공지능과 점점 더 얽혀가는 사회에 적응해 나가면서, 우리는 인공지능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서 조용히 빼앗아 가는 것이 무엇인지도 고려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단순히 우리를 돕는 것을 넘어, 우리를 대신해 사고하고 감정적 지지까지 제공하는 존재로 점점 더 자리 잡아가면서, 인공지능 도구가 우리를 성장 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지 아니면 조용히 우리를 능가해 가는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영화 <Her>에서는 기계가 반란을 일으키거나 지배하지는 않지만, 인간 감성과 연결이 차지했던 자리를 기계가 부드럽게 대체해 가는 미래를 통렬하게 엿볼 수 있다. 이제 상상했던 그 미래가 현실이 된 지금, 우리는 편리함과 효율성을 대가로 무엇을 포기하기로 선택했는지 성찰해야 한다. AI에 대한 우리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우리가 학습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 심지어 사랑하는 방식까지 변화하기 시작했다. 종종 우리는 이를 완전히 인지하지 못한 채로 이러한 변화를 겪고 있다.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기술에 의해 점점 더 형성되는 세상 속에서 수동적인 참여자가 될 위험에 처한다. 이 새로운 현실을 헤쳐 나가면서 진정한 도전은 AI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맥락 속에서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진정으로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의식하고, 호기심을 갖고, 질문할 용의를 지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