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씨의 세그림. 41화
'17.1.15 일
북극의 밤은 길다. 더군다나 1월은 극야라고 해, 하루 종일 해가 없다. 달리 말해보자면 하루 종일 밤일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직접 이곳에 오기 전까진 온종일 너무 어둡기만 하면 어쩌나, 여행은 전혀 못하고 방에만 있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을 했더랬다. 허나 내 착각이었다. 정말로 해는 볼 수 없지만, 태양이란 녀석은 너무나 강렬해 그 빛을 이곳까지 뿌려 북극의 땅을 밝혀낸다.
어제는 아이스피요르드까지 산책을 다녀왔다. 파란 바다에 침착하고 거대한 빙산이 떠있다. 그들은 조용하다. 때론 빙산의 일부가 무너지며 천둥같은 소리를 낸다곤 하지만, 듣지 못했다. 그들을 바라보며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큰 것들은 바다 위 한자리에 산처럼 자리잡았다. 반면 작은 것들은 비교적 느리지 않게 바다를 떠다닌다. 이 조용한 곳에 보이는 생명이라곤 갈매기들 뿐이다. 그들이 종종 물에 부리짓을 하는 걸 보니 아마 바닷속은 이곳보다 훨씬 분주할지도 모르겠지만, 여튼 수면 위는 참 고요하다.
"우루루, 뀨뀨, 꾸오옹!"
갈매기의 소리를 따라 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과 대화가 된다면 꽤나 유용할 것이다.
오늘도 산책을 가기 위해 어두운 늦은 아침에 눈을 떴다. 서둘러 준비하고 집을 나서야 밝을때 밖을 걸을 수 있다. 다른 할일이 없으니 해가 짧은 이곳에서 산책이라도 밝을때 제대로 하고픈 것이다. 준비를 마치고 커튼을 젖혀보니 눈이 내리고 바람이 몰아친다. 눈보라가 휘몰아친다고 하기엔 조금 부족하다. 긴 산책은 어려워보여, 잠시 동네나 돌아볼까하며 집을 나섰다.
결과적으로 1분도 안돼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보기보다 눈이 너무 휘몰아쳐 앞을 보기도 쉽지 않고, 바닥에 쌓인 가벼운 눈발이 신발 안으로 자꾸 들어온다.
숙소에선 크게 할게 없다. 의자에 앉아 창밖이나 보며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린란드에선 와이파이도 꽤나 비싸다. 때문에 인터넷을 주구장창 할 수도 없다. 누워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장을 넘기다 혹시나 하여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날씨가 더 험해져 눈보라가 친다. 체념과 함께 다시 누워서 책을 읽었다. 앉아서 책을 읽었다. 다시 누워서 읽었다. 예전부터 써보고 싶었던 글도 썼다. 쓰다가 힘들어 지면 다시 책을 읽었다.
어찌보면 이 시간은 내가 예전부터 꿈꿨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지루하고 고독하지만, 이 강제된 여유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를 지루함이 반갑다. 이런 긴 지루함이 찾아오면, 나는 그제서야 내가 진정으로 원해왔던 일을 하기 시작한다. 하고 싶고, 해야하지만, 어쩐지 미뤄왔던 그런 일들.
이런 시간을 왜 하필 비싼 그린란드까지 가서 가져야하는거냐 물으면 크게 내세울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런게 그린란드고, 북극이란 곳이며, 때론 눈보라 치는 이곳의 삶이 아닐까 싶다.
눈바람이 창 밖에서 윙윙 된다. 슈퍼마켓도 가지 못해 내가 굶주리고 있음을 알았던 것일까? 주인 아저씨가 날 불렀다.
"같이 저녁먹자."
"오, 땡큐땡큐!"
지루하고도 멋진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