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3 지구의 성장도 그러하
예전에 참 많이 인용되던 속담인데 근래에는 보거나 들을 일이 많이 없었다. 수천년 전 로마제국을 추억하기엔 요즘 세상이 너무나 빨리 변해서인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단지 내가 별로 접하지 못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수도 있겠다.
잊고 있던 이 속담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드는 요즘의 재미거리가 있다. 바로 앉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는 지구 모습이다.
짧은 배밀이 시기를 지나고 자유롭게 몸을 뒤집더니 이제는 제법 그럴듯 하게 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역시 앉는 것은 어나더 레벨인가 보다. 그럴 법도 한게 엎드리면 기는 것까지는 무게중심의 변화가 크지 않고 팔다리 힘만 갖고서 가능한데 앉기 위해서는 몸을 일으키고 스스로 머리와 상체의 무게를 지탱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기가 태어나 앉게 되는 과정이 어떠할 지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고 사실 그리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옆에서 매일매일 관찰하는 입장이 되자 언제 지구가 멋있게 딱 앉을 수 있을지 상상하고 응원하게 되었다.
첫 단계는 아마 엎드려뻗쳐 자세였던 것 같다. 워낙 잘 먹어서 여전히 상위 10~15% 몸무게를 유지하다 보니 힘도 좋아, 양 팔로 몸을 지탱해 들던 단계에서 무릎도 번쩍 뻗어 몸을 완전히 공중으로 띄웠다. 처음엔 살짝 자세를 유지했다가 내려가는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자세를 유지하게 되었다.
다음은 인어공주 자세이다. 엎드려뻗쳐 상태에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엉덩이를 털썩 하며 한 팔로 몸을 옆으로 지탱하게 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옆으로 앉아 있는 인어공주를 연상시킨다. 이 자세도 바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보통 엉덩이를 털썩 하면 되집기처럼 몸이 넘어가 뒤통수를 쿵 하는데, 그것이 반복되다 보면 무게중심이 옮겨질 때 균형을 조금씩 잡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지금 지구의 단계는 바닥을 짚는 팔의 각도가 꽤나 높아진 인어공주 자세인데 서서히 앉는다는 것에 대한 감을 잡아가는 것 같다. 가끔 지구를 들어 앉는 자세를 만들어 주면 그래도 몇 초는 자세를 유지하다가 옆으로 스러지는데, 그 유지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그리고 인어공주 자세도 이 쪽으로 했다가 저쪽으로 했다가 하면서 끊임없이 횟수와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아직 완전히 앉지는 못했지만 이제 머지 않았음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대체 어떻게 앉는 게 될까?’라는 의문 뿐이었다면 끊임없이 시도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니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고 있다.
완성된 모습만 보고서는 그 지난한 발전 과정을 알 수가 없다. 최전성기를 누리던 로마의 모습에서 늑대의 젖을 먹는 로물루스를 떠올리기 어렵듯이.
앞으로 더욱 놀라운 성장과정이 있을텐데 벌써부터 너무 장황하게 표현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부족한 것보다는 넘치는 것이 좋으니 응원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또 육아에 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