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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두달홍천살이 Sep 05. 2020

주말을 망쳤다는 생각에 스스로 괴로울 때

누구에게나 내게 주어진 시간을 잘 쓰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특히 할 일들이 정말 많을 때에는 조금이라도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느낌이 들면 괴롭다. 그런 사람에게 주말은 정말 귀한 시간이다. 온전히 나의 시간이 주어져 마음이 편해져야 하는데 더 예민해지게 된다. 부담이 오는 것이다. 평일 직장에 출근해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8시간 근무할 때에는 내가 해야 할 일들만 하면 된다. 그러나 직장 밖을 나오면, 그 시간들을 배분하고 요리하는 건 온전히 내 재량에 달려 있다.


새해의 시작과 함께 지난 직장을 그만두고 지난 5월 말 새로운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정규직이 아니다. 12월 말, 나는 다시 실직자가 된다. 그 사실은 내가 직장 생활을 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다음 직장을 준비하게 했다. 9월에 찾아올 한 공공기관의 공채에서 합격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 필기 논술 시험 및 직업기초능력 평가(NCS) 준비를 해야 한다. 실력 향상을 위해 절대적인 시간 투자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동시에 내가 그토록 원했던, 책을 출판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9월 말까지 원고 작업을 마쳐야 한다. 이 일 또한 내 절대적인 시간 투자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백지장을 채워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말에는 최대한 많은 시간을 들여 이 작업들에 매진해야 한다. 휴, 이렇게 내 여유 시간들을 책임감을 주는 일들로 채워 나가려는 조급함과 강박관념으로 인해 탈이 났다.


지난 주말 고향을 방문했다. 서울에서는 지하철 30분, 버스 1 시간씩 해서 약 1시간 반-2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원래 내 계획대로라면 저녁이 되기까지 나는 어느 조용하고 편안한 카페에 혼자 틀어 박혀 원고 작업과 공부를 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내 예상에 빗나가는 결정을 하게 된다. 엄마와 여동생이 춘천을 간다는 얘기를 듣고 그곳에서 내가 평소 먹고 싶었던 음식들이 생각났다. 따라가서 오랜만에 추억의 맛을 느끼자 했다. 그리고 2-3시에 돌아와 내 작업을 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변수가 나타났다. 우선, 동생 볼 일을 마치고 나서 갑자기 사소한 일로 인해 엄마와 동생 사이 말싸움이 생겼고 나도 감정적으로 휘말렸다. 내가 가고 싶었던 맛집에 갔지만 엄마와 동생은 전혀 즐기지 않았다. 나 혼자 돈이 아까워서 꾸역꾸역 먹다 나왔다. 그 맛도 예전 같지 않아 실망했다. 그 배부른 상황에 나는 또 욕심을 부렸다. 내가 예전에 한 번 가서 먹어 보고 반한 그린티 라테를 파는 카페에 멈춰 그 그린티 라테를 사 먹었다. 뭔가 과도한 욕심과 섭취를 했다는 불편한 느낌으로 집에 돌아왔고. 그다음부터 나는 몸에 열과 메슥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누워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결국 누워서 영화만 보다가 잠들었다. 다음 날에도 저녁까지 누워 지내다 겨우 카페에 나와 2-3시간 정도 작업을 했다. 내가 목표했던 성취를 내지 못해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고, 어제까지의 모든 내 선택과 상황들을 탓하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돼지처럼 꾸역꾸역 먹은 거야? 돈이랑 시간만 버렸잖아. 어이구, 미련해.'

자책감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렇게 월요일이 찾아왔지만 주말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좀처럼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러다 그 감정을 물리치려 저항하는 게 그 감정을 더 강하게 만든다는 걸 깨달았다. 어쨌든 이미 일어난 일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고 당시 나는 실수를 했을 뿐이다. 계획했던 일을 못 했을 뿐이다. 지금부터 하면 된다. 그 점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잘하면 되는데 나는 계속 과거의 사건으로 나를 벌주고 있었다. 나는 단지 주말을 맞아 평소 내 안에 참고 있던 욕망을 성취시켜주려 했던 것뿐인데,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자 즉각 스스로를 탓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스로에게 이렇게까지 단호하고 매정해야 할까?


내 이성이 원하지 않았던 결정을 하는 나 자신이 나타나 본래의 계획을 망칠 때도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불쾌한 감정을 남긴다. 그러나 그런 부족하고 실수 저지르는 나의 모습도 나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용서해 주자. 아픈 게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그동안 너무 혹독하게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바람에 주말에 긴장이 풀려 탈이 난 걸 수도 있다. 몸이 보내는 경고의 신호였을 수도 있다. 과거는 잊고 충분한 휴식을 허락한 뒤에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제대로 집중할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떨까? 그 실수를 딛고 더 잘 해낼 나의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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