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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chic Jan 08. 2021

우리 엄마는 왜 이렇게 귀여울까

귀여운 환갑, 개구쟁이 우리 엄마.

난 금수저를 가지고 태어나진 않았지만, 귀여운 엄마한테 태어났다. 


우리 엄마는 고생도 엄청 많이 했다. 일단 중풍에 걸린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이 셋과 함께 시가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고, 시누이 셋을 모두 결혼시키고 딸 둘을 낳아 키웠다. 결혼한 지 약 34년이 된 지금도 시어머니, 남편, 작은딸과 함께 살고 있다. 사람이 많은 집에서 사는 건 그냥 숨만 쉬어도 스트레스다. 화장실도 계속 맘 편히 가기 어렵고, 모두가 한 마디씩만 해도 9마디일 테니... 그리고 본인의 가족이 아닌 어색한 남편의 가족과 갑자기 같이 살게 되고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 역시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집에서 살림만 한 것도 아니다. 한 때 몰아닥친 경제 위기 속에서 엄마는 '가장'의 역할을 했다. 그때는 집에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이 '엄마' 뿐이었고, 셋넷도 아닌 여섯 개의 입을 위해 우리 엄마는 고군분투했다. 이쯤 되면 삶의 풍파에 냉소적이고 날카로운 사람이 됐음직한데, 그녀는 귀여움을 잃지 않았다. 


엄마는 자꾸 단어를 이상하게 바꿔 말한다. 와이파이를 '와이파이브', 이모티콘을 '이티모콘'으로 말한다. 재작년에는 해외여행을 가면서 수영장에서 입어야 하니 '레시 가드가 필요하다'라고 얘기했는데, 엄마는 이걸 금세 '기라로시'로 바꿔버렸다. 대체 '레시 가드'와 '기라로시'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너무 궁금해서 나와 내 동생은 인터넷에서 '기라로시'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엄청 많다. 엄마한테 '뭐 잡숫고 싶은 거 있어?'라고 하면 보통은 '없다.'라고 대답하지 않나? 우리 경애 씨는 '어~~~~~~엄청 많지!'라고 말한다. 그래서 뭐가 먹고 싶은데?라고 하면 '안 알려줄거지롱~!'이라고 한다. 휴. 그리고 작년에 괌에 다녀와서는 별안간 영어 공부를 할 거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며칠 주민센터 교육 프로그램도 막 찾아보더니 금세 흥미를 잃었다. 그래도 하고 싶은 게 많고, 결과가 어떻든 입 밖으로 표현하는 엄마가 너무 귀엽다. 


우리 경애 씨는 시키는 것도 잘한다.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날 '엄마 이제 인사해! '라고 얘기하면 주저 없이 '잘~~ 놀다 갑니다! 고마워요~!'라고 허공에 인사를 하고, '엄마 여기서 길 잃어버렸을 때 내가 어떻게 하라고 했지?'라고 하면 '헬로! 마이네임 이즈 경애. 아임 피프티 나인 이얼드 올드! 플리즈! 아이원투고홈'이라고 외운 내용을 더듬더듬 말한다.  그리고 음료를 가져다준 점원에게 '고맙다고 해줘!'라고 하면 이국적인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때에에엥~큐우~'라고 한다. 부잣집 마님 같이 여유가 넘치는 눈 빛으로.


마지막으로 엄마 마음에는 아직도 어린 개구쟁이가 있다. 눈이 펑펑 온 날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엄마! 밖에 눈이 와'라고 했더니, '아니 무슨 눈이 와! 와! 정말이네~ 나영아! 놀이터에 눈 쌓였다. 나가자'라고 하더니 전화를 끊어버리고 나가버렸다. 몇 시간 뒤에는 엄마와 동생이 눈밭에 굴러다니는 영상과 엄마가 만든 눈사람 사진이 카톡으로 전송됐다. (아빠는 허리가 아파서 못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다음 날, 엄마는 속상한 어투로 카톡을 보내왔다. '눈사람 도둑맞았어. 방금까지 있었는데..' 엄마를 닮았던 입이 세모난 눈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동네 놀이터에 세워둔 눈사람을 엄마는 주방 창문으로 계속 지켜봤나 보다. 눈 사람을 계속 계속 쳐다봤을 엄마도, 그 눈사람을 훔쳐간  누군가도 모두 귀엽고 미스터리 하다.


다음 달이면 우리 엄마는 환갑이다. 여행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재밌는 일을 마구마구 하고 싶은 우리 경애 씨는 코로나가 너무 원망스럽다. 9시면 문 닫는 카페도 슬프고, BTS 다이너마이트에 온 몸을 흔들어 재껴야 하는데 열지 않는 에어로빅장도 슬프다. 환갑에는 알프스 하이디가 되고 싶었는데, 다음 달 환갑도 끽해야 제주도 일거라 또 너무 서글프다. 그래도 엄마는 유튜브로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보면서 우울함을 달랜다. 그리고 나에게 카톡을 보낸다. 


'선영아! 코로나 괜찮아지면, 갈까 말까 고민하지 말고 무조건 어디든 가버리자! 멀리멀리!'


나는 종종 여동생과 '우리 엄마는 왜 이렇게 귀엽게 됐을까?'를 토론한다. 귀여움도 유전자일까? 돈 없고 힘들었던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우리 경애 씨는 독보적으로 귀엽고 사랑스럽다.

금수저, 은수저보다 귀여운 엄마한테 태어난 게 제일이다. 엄마가 너무 귀엽게 늙어서 부럽다. 

나도 꼭 귀여운 할머니가 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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