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솔로 방랑기
쿰(Qom)에 온 건 카펫 때문이다.
박물관 큐레이터 시절, 전시를 준비하면서 카펫을 수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분은 학자도 아니고, 무역상도 아니고, 그냥 카펫이 좋아서 전 세계를 돌아가니며 카펫을 모으는 찐 컬렉터였다. 살고 있는 집 말고 카펫만 모아두는 아파트를 따로 마련해두고, 거기에 온갖 진귀한 카펫을 막 쌓아놓고 사는 신기한 한국 분이었다. 그분이 모은 카펫 중에는 크기도 크고, 가격도 캐 비싼 몇천만 원짜리 카펫도 있었는데, 돈을 벌어서 다 카펫에만 쓴다고 했다. 그야말로 레알 찐 덕후다.
이 분은 뭐니 뭐니 해도 이란 카펫이 최고고, 그중에서도 쿰 카펫이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했다. 그 비밀을 밝히고자 쿰에 오고 싶었나 보다.
쿰은 매우 보수적인 도시다. 테헤란이나 하마단과는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 테헤란처럼 아슬아슬하도록 자유분방한 복장을 하고 다니는 여자들도 없고, 남자들도 아야툴라 호메이니처럼 커다란 터번에 긴 옷과 가운을 걸치고 다닌다. 밤마다 동네 모스크에서는 기독교의 통성 기도 같은 기도소리가 들린다. 조금만 이상한 짓을 하면 길가던 아저씨한테 바로 혼날 것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하마단이나 쿰의 게스트하우스 주인들처럼 진보적 청장년층은 이 완고한 시아파 이슬람 꼰대 아저씨들을 '크레이지 맨(crazy man)'라고 했다. 사람들 모습뿐만 아니라 도시 자체가 그냥 뙇 '보수' 그 자체고, 그 보수적인 느낌이 철철 넘친다. 쿰엔 유독 이슬람 신학교가 많고 시아 세력이 매우 쎈 데라고 한다. 왜 쿰이 카펫으로 유명한가 궁금했는데, 하루 돌아다니다 보니 딱 알겠다. 모스크와 신학교가 많고 종교력이 쎈 곳이니 당연히 카펫 소비가 많을 수밖에!!!
오전에 호스텔 주인인 카미(Kami)와 시마(Shima)가 차려준 조식을 먹으면서 세 시간은 수다를 떤 것 같다. 이 커플은 테헤란 대학교 캠퍼스 커플로, 2년 정도 동거하다가 3개월 전에 결혼했다고 한다. 이란엔 전통적으로 '시게(Sigheh)'라고 하는 일종의 계약 결혼(?) 문화가 있고, 그래서 동거 커플도 의외로 많다.
수다를 떨면서 향후 여행 일정을 얘기하다가 시마가 사우디아라비아에 가보라고 한다. 거기 여자 혼자 못가지 않냐고 하니까 약 한 달전에 법이 바뀌어서 이젠 외국인의 경우 여성 혼자도 여행이 가능하고 히잡을 안써도 된댄다!!! 언빌리버블!!! 완고한 사우디도 변화하고 있구나...!!
이란 여행 후 사우디로 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온종일 쿰 거리를 마냥 쏘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