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으로 여행을 갔을 때, 좀 놀란 사실이 있다. 길거리에서 ‘튀르키예 커피’ 간판을 걸고 터키식 커피를 파는 곳이 즐비하다는 거다. 물론 중동에도 이른바 차이하네로 대표되는 ‘다방문화’라는 것은 있다. 주로 차를 마시지만, 커피도 있다.‘아메리카노’나 ‘카페라떼’나 그런 종류의 커피와는 엄연히 다른, 중동의 커피는 민트와 같은 약초와 함께 끓여낸 매우 연하고 오묘한 맛이 나는 신비한 커피다.
오만 무스카트(Muscat)에서 대접받은 민트향 오만 커피와 대추야자
그에 비해 터키 커피는 중동 커피와는 완전히 다른 장르다. 참 진하다. 컵도 작다. 매우 곱게 간 커피 입자 때문에 마시고 나면 컵 아래에 진흙 같은 커피가루가 가라앉아 있다(남겨진 머드의 모양으로 커피점도 치는 신기한 나라가 튀르키예다). 설탕도 잔뜩 들어가 단맛에 기분이 좋아진다. 이 엄연한 차이점을 보이는 커피가, 요르단에 당당히 음료 한 섹션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왜 ‘터키’일까?
매우 진하고 설탕이 잔뜩 들어간 튀르키예식 머드 커피. 중동 음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을 정도로 튀르키예 문화의 위치는 확고한 편.
튀르키예를 여러 차례 방문했고, 그중 반할 이상은 2주~한 달 넘게 중장기 체류한 배낭여행이었다. 자유롭다는 특성 때문에 꽤 많은 곳들과 참 소소한 곳들을 기웃기웃거렸다. 백패커들이 모여드는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지도를 보지 않은 채 꼬불꼬불한 길들을 걸어 그 길을 내 길로 만들었다.
그 기억 중 좋아하는 한 씬(scene)이 있는데, 여행 중 어느 날 새벽에 무심히 깨어 무작정 길거리로 나섰을 때다.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 뒷골목에 있는 어느 게스트하우스에 묵을 때였다. 날이 밝기 시작하여 좀 어둡지만 시야는 자유로웠던 새벽 5시경으로 기억한다. 이른 시간이라 길거리에는 ‘깨어있는 존재’보다 정체에 가까운 새벽의 서늘한 기운만 가득한 상황이었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조용한 거대 도시의 모습은 꽤 인상적이다. 이 도시는 이제 한 시간 남짓 안에 곧 꿈틀대며 깨어나 매우 복잡하게 들끓을 것이다. 그런데 그전까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하다. 푸르스름하고 약간 찬 공기가 묵묵한 안개처럼 내려앉아 있을 뿐이고, 사전에 정교하게 맞춰진 알람처럼 새들만 지저귈 뿐이다.
아무도 없는 고요, 내 발자국 소리만 들리는 적막. 무언가 막 시작될 징조를 보이는 조용한 긴장감 속을 천천히 누빈다. 그런데…!
튀르키예 이스탄불(Istanbul) 골목의 새벽을 깨우던 기가 막히게 맛난 빵가게
불이 켜진 곳이 있다. 고요함을 적나라하게 깨는 분주함도 느껴진다.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감지된다. 문화인류학자의 호기심으로 기웃거려 보니 ‘빵’을 굽는 곳이다. 아직 다 깨지 않은 새벽, 지금은 빵집만이 유일하게 살아있다. 그것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역동적이게. 마치 단 한 번도 멈춘 적 없는 도시의 심장처럼.
잠자는 사람들의 보들보들 한 꿈을 모두 수집하여 갓 구워낸 듯한 따뜻하고 향기로운 튀르키예 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