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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다 Jul 17. 2024

산만일기

나는 내가 이렇게 산만한 사람인줄 몰랐다. 나도 나름 몰입의 즐거움을 모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마도 번아웃이라고 부르면 될 것 같은 상태에 빠진 뒤로는 무엇도 끈기있게 오래 붙들고 할 수 없었다. 약간의 여유가 허락된 후로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며 활활 타오른 것도 잠시. 아이디어는 넘쳐났지만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붙들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고 마음만 조급해졌다.


마치 그런 거다. 하늘에서 갑자기 과일이 우수수 떨어지는데, 뭐가 더 맛있고 큰지 고민하다가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놓치는 사람의 형국이다. 그래서는 결국 땅에 떨어져 묵사발이 된 과일 무더기 사이에서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우는 수밖에 없다. (냄새는 좋을 것 같다.)


내가 지난 두세 달간 해보려고 생각 내지 시도만 깔짝깔짝 했던 것들을 나열해보자면 이렇다.

1. 유튜브: 나도 공부할 겸 영어 콘텐츠 유튜브를 해보려고 했었다. (브런치도 고려했었다) 하지만 역시 보통 정성과 노력으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이미 너무 대단한 사람들이 많아. 

2. 소설 쓰기: 두어 가지 구상한 이야기가 있지만 도저히 직접 앉아서 글을 써내려가는 단계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대략의 구상을 하는 데도 며칠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 시간만큼은 즐거웠다)

3. 이모티콘 만들기: 손이 안 따라주니 아이디어도 같이 막혀버렸다.

4. 악기나 보컬 레슨: 정~~~말 생각만 했다. 하면 참 좋을 것 같긴 하다.

5. 운동: 잠.....시 했었다. 운동만큼은 진짜로 할 줄 알았는데...

6. 요리: 좀더 건강하게 챙겨먹기 위해서 요리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것도 생각만 했다.

7. 온라인 강의 듣기: 좋은 강의를 발견할 때마다 의욕에 차서 등록한 뒤 며칠 후엔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린다. 


휴...


새삼 무엇이든 한 가지를 붙잡고 꾸준히 하는 사람의 무서움을 느낀다. 그 모습은 고독하고 아름답다. 

한편으로는 지금의 이 상태 자체를 인정하고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시간이 아까워서 마음만 급한 채 중심축이 없으니 이리 달리다가, 저리 달리다가, 우뚝 멈춰 섰다가, 주저앉았다가... 엉망이다. 


평생에 이 정도로 갈피를 못 잡고 산만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이것은 그런 상태에서의 나의 일기. 주제도, 방향도 없다. 


오늘은 그냥 이대로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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