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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델라 Nov 24. 2019

27. 요양원 입소 4일 만에 퇴소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가 잠깐 한눈판 사이에 가족들은 차에 올라타 귀가를 했고, 할머니는 남겨졌다. 가족들은 할머니를 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2시간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그날 저녁, 할머니는 주간보호센터에 있다고 생각하셨다가 저녁이 되어서도 집에 보내주지 않자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저녁식사까지 맛있게 하시고(주간보호센터에서 저녁까지 드시고 오셨다.) 6시부터 소리치며 곡소리를 했다.    

 

    할머니 :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어떻게 키웠는데... 자식새끼들이 날 여기에 버리고... 아이고... 내가 돈 들여 가며 어떻게 키웠는데... 비싼 공부시켜달라는 거 다 해줬는데... 어떻게 날 버리고... 아이고...     

    곡소리는 저녁 6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상주하고 계시는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 가족들과 통화하면 조금은 나아질까 싶어 통화를 시켜줘도 곡소리는 같았고 가족들의 어떠한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사회복지사, 간호부장님, 원장 수녀님이 동원되어 달래려 하자 다가오는 팔을 물기도 했단다. 좀 진정을 하셔야 대화가 되고 달랠 수 있을 텐데 아예 대화조차를 거부하고 들으려 하지 않으시니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냥 할머니가 지치길 기다려야만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요양원은 병원이 아니기에 진정제를 투여할 수도 없고, 경구 진정제도 일정 용량이 정해져 있어서 할머니들이 적응할 동안 애를 많이 쓴다고 했다. 할머니가 경구 진정제를 드리려면 드릴 수 있었지만, 물도 안 먹고 곡소리만 내는 할머니에게 경구 진정제는 꿈도 못 꿨다.      


    할머니를 요양원에 입소시킨 다음날 엄마의 직장인 요양병원에서는 할아버지가 자식들이 자기를 버렸다고 112에 신고한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직장에서 경찰이 오고 한바탕 소동을 정리하고서 퇴근하면 요양원의 전화기 너머 들리는 할머니의 곡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요양병원에서 112에 신고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다반사로 있다지만 하필 자신의 부모님이 요양원에 들어가 있는 동안 이런 일이 일어나자 엄마도 마음이 많이 안 좋으셨나 보다. 엄마는 그 시절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간호대학을 나와 지금까지 전문인으로서 직장을 다니시는데, 할머니가 '공부 다 시켜놓은 자식들이 자신을 버렸다'라고 말씀하시니 죄책감에 시달려 많이 우울해하셨다. 그리고 혹시 적응하시는 동안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직장에서도 전화기에  온 신경을 쏟아야 했고, 직장에 있는 동안 전화를 받으면 병원(직장)에서 치매 어르신의 고함과 전화기 너머의 할머니의 곡소리를 동시에 들어야만 했다.

    한편 할머니는 곡소리를 내다 지쳐 새벽에 잠에 들어 한숨 자고 나면 다시 주간보호센터에 와있는 걸로 착각하여 활동을 열심히 하셨다. 꽃꽂이, 만다라 색칠공부, 종이접기, 노래 부르기 등 오후 시간을 보내고서 저녁을 먹으면 또 똑같이 곡소리를 내었다. 4일 동안 간호부장님은 매일 다른 방법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함으로써 할머니를 달래고 적응하려 애쓰셨고, 원장 수녀님은 매일같이 전화 와서 적응을 못하신다고 데리고 가라 하셨다. 4일 차 되는 날, 저녁 7시쯤 갑작스레 원장 수녀님께 전화와 당장 할머니를 데리고 가라 하셨다.     


    원장 수녀님 : 보호자님, 어르신 지금 며칠 째 적응을 못하셔서요. 지금 데리고 가셔야겠습니다. (퇴소하셔야겠습니다.)

    엄마 : 아... 지금 시간도 너무 늦었고 당장에 데리러 갈 사람이 없어서 그러는데 가족끼리 논의하고서 내일 오전 일찍 가면 안 될까요?

    원장 수녀님 : 네 안됩니다. 지금 당장이 어려우시다면 늦은 시간이라도 데리러 오세요.      


    단호한 원장 수녀님의 말씀에 가족들끼리 지금 당장 누가 데리러 갈 수 있는지 연락을 했다. 회식을 하는 아들, 성당 모임에 나간 아들, 당장 데리러 가기에 가장 멀리 사는 아들... 결국 당장에 데리러 갈 수 있는 사람은 성당 모임에 간 셋째 삼촌이었고 할머니를 데리러 부랴부랴 갔다.




*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20대 손녀와의 동거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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