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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디 Nov 02. 2023

아직도 두 발을 못 타?

두 발 자전거의 쓸모

아들의 일기


10월의 어느 일요일.

일기는 일요일 저녁에 쓰는 게 국룰이지. 학교에서 주말 숙제로 주 1회 내주는 일기. 일요일 저녁마다 책상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꿈틀이가 애미 속을 뒤집는 그거다. 초3 아드님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했다.


나는 자전거를 못 탄다. 내일 학교에서 자전거 실습을 한다고 했는데…


온갖 글쓰기 책들에서 첫 문장에 훅 들어가라고 말하지. 글쓰기 비법책을 읽었을 리 없는 초3이의 첫 문장이 애미 가슴에 날카롭게 꽂힌다.

이 집의 초3 아드님은 생활통지표에서 학습의 ‘ㅎ’ 도 찾을 수 없는 분이다. 선생님들께서 살펴주신 통지표 종합의견란에 따르면, 몸이 날렵하여 달리기를 잘 하고 체육활동에 자신감이 있으며 친구들과 정정당당하게 겨룬단다. 축구, 태권도, 수영으로 일주일을 보내는 운동형 초딩. 그는 자전거를 못 탄다. 안 타본 걸 수도 있지만 말이다. 관심사 외의 것에는 눈길 한 번 안 주기도 하고, 지금껏 애미가 덩치 큰 고철덩이를 선뜻 권하지 않았다. 자전거 타는 이 나라 아들들의 위험천만 아찔한 찰나를 수없이 목격한 내가 니 애미다.  


"이번에 학교에서 자전거 배울 수 있어 좋겠다. 탈 수 있게 되면 우리 초3이도 자전거 장만하자."

학교 자전거 실습을 앞 두고 초3이에게 의연하게 말했지만, 마음이 쓰이는 애미였다. 두 발 킥보드 탄 지가 몇 년인데 운동장에서 전문 선생님께 배우면 금세 탈 거야. 내 새끼 믿는다, 기다린다 하면서도 애미는 유튜브에 검색을 하게 되더라. '자전거 타는 법 배우기' 처음 보이는 영상을 찜하고,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두 발 자전거 5분 만에 탄다고?


아파트 현관 1층에 한 1년은 족히 세워 둔 7살 따님의 네 발 자전거에서 보조바퀴를 떼어냈다. 지구에게 미안할 만큼 물티슈를 촥촥 뽑아 한참을 닦았다. 애미의 쓸모는 여기까지, 이제 스스로 타보거라. 애미가 역사적인 순간을 영상으로 담아주마. "이 자전거 내 거야!"를 외칠 법한 7살이도 오빠가 운동으로 지는 꼴(?)은 못 보겠는지, 녹이 슨 18인치 자전거를 기꺼이 내어주었다.


유튜브 조회수 33만 회에 달하는 '4세부터 80세까지 자전거 혼자 배우기' 영상에 존경을 표하며 요약정리해 본다.


애미애비가 허리 나가도록 잡아주지 않고, 아이 스스로 5분 안에 두발타기 성공한 비법 4단계.

1단계-안장 높이를 낮추고 양발로 걷듯이 밀면서 나아간다.

2단계-한 발만 페달에 얹고 다른 한 발로 밀어 본다.

3단계-발로 밀어서 출발 후 양발 페달에 얹고 앞으로 간다.

4단계-여기까지 익숙해진 후에 페달링을 한다.


유튜브 족집게 영상 덕분에 초3이는 1단계! 2단계! 를 외치며 단계별로 시도하더니 단박에 앞으로 나아가더라. 시커멓던 애미의 심정은 허여멀건한 헛웃음을 깔고 기쁨과 안도와 허탈을 둘둘 말은 김밥이 되었다.

"엄마, 나 5분 만에 두발 성공했어! 나 천재지?"

그래 니 잘났다. 장하다. 우리 초3이.

보조바퀴 떼느라 애미 손 떨린 두발의 첫 순간.@HONG.D 찰칵


자전거 내 거야!


7살 따님 여태껏 기다려 준 게 고마웠다. 내놓으라는 거다. 오빠가 재미있어하니 너도 타봐야지 암만.

"우리 7살이도 타볼래요? 오빠가 가르쳐 줄게요."

기분 째지는 초3이가 여동생을 기가 막히게 챙기더라. 7살이의 핑크핑크한 양말을 치렁치렁한 바지 위로 끌어올려 주며, 자전거는 안전이 최우선이란다.

아이를 둘 이상 키워 본 애미들은 둘째의 고귀함을 알 거다. 오빠가 하면 나도 거뜬하다는 승부욕에 경력 따끈따끈한 5분(minutes)차 선생님의 코칭이 더해져, 결국은 그녀도 해내고야 만다. 믿거나 말거나 초3이의 측정 기준 25분 만에.




내 품에 안고만 있던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 첫 한 발 떼던 그 순간을 부모로서 어찌 잊으랴. 그에 버금가게 세 발, 네 발 자전거를 타던 아이가 두 발을 타고 앞으로 나아갈 때, 그 뒷모습을 보며 이 나라 부모들이 그렇게들 감개무량했겠지. 진즉에 해줬어야 하는 걸, 고철덩이가 위험하다고 괜한 거리두기를 했던 애미가 미안하다. 이렇게 나라는 애미는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고 두 아이에게 해줄 큰 과제를 한 방에 해치웠다.


초3이는 어쩌면 조금 천천히,
7살이는 어쩌다 살짝 빠르게,
아이들 스스로의 속도로 길을 나아간다.

 



오늘도 놀면서 아이들에게 배워가는 길=STREET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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