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3058㎡
인간은 공간을 갖가지 방법으로 호칭하고 인식한다. 그 공간을 점유한 물체들의 속성을 고려하여 나무가 모인 곳을 ‘곶자왈’로 부르거나, 그 공간의 위치에 따라 ‘두물머리’ 등의 이름으로 부른다. 또는 더 큰 의미에서 그 공간의 물리적인 크기와 높이만으로도 ‘산’이라는 명칭이 결정되는 등 그것은 매우 다양하다.
이렇게 대륙과 바다, 그리고 하늘에 단어를 뿌리고 나서 인간은 그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어 삶을 이었다. 비로소 ‘집’의 용도가 정해졌고, 삶의 구획에 따라 매긴 공간의 이름은 조금 더 작고 자세했다. 행위에 따라 ‘부엌’ ‘화장실’ 등으로 불리는 공간이 생기는가 하면, 소유의 개념으로 ‘우리 집’, ‘내 방’ 등으로 불리는 공간이 생겼다. ‘안방’, ‘거실’, ‘공부방’ ‘다용도실’ 등 인간은 그 삶을 뻗친 거의 모든 곳에 소유와 행위를 투사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하여 현대 주택 설계에서 공간의 명칭은 일정 단어로 굳어져있다. 언급한 안방, 거실, 부엌, 화장실 등은 우리가 집을 지을 때 무조건 고려해야하는 공간이고, 이것은 일종의 모듈로 굳어져 설계 단계부터 공간적인 역할에 대한 기대를 부여받은 채로 집 속에 편입된다.
이렇듯 공간의 가치는 명칭으로 정의된다. 필수적인 공간과 유동적인 공간들의 배치 방법은 삶을 영위하는 방식과 직결된다. 그러나 이 가치는 때때로 한 마디의 말에 의해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평’이라는 단위는 일본에서 왔다. 과거 고구려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척’단위가 1800년대 일본에서 ‘자’ 단위로 전환된 뒤 그것이 일제 강점기를 거쳐 그들이 우리의 토지를 나누기 시작한 이래로 쓰여 온 것이다.
한 평은 약 3.3058㎡(제곱미터) 정도 된다. 예를 들어 약 50평의 토지가 있다고 한다면 제곱미터로는 이에 3.3058을 곱한 165.29㎡ 정도의 토지가 되는 것이고, 150㎡의 토지가 있다고 한다면 평수로는 이를 3.3058로 나누어 45.37평이 된다. 반대로 3.3058의 역수인 0.3024로 곱셉과 나눗셈을 바꿔 계산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단순한 넓이를 나타내는 단위가 어떻게 공간의 가치를 지워버리는 것일까. 사실 공간의 넓이를 나타내는 모든 단위들이 그 의미를 싹 지워버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명칭으로 설명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마지기’가 그렇다. ‘마지기’는 ‘한 말의 곡식을 뿌릴 수 있는 정도의 땅’이라는 의미다. 쌀을 기준했을 때 한 말의 쌀은 뿌리면 약 네 가마니를 생산한다. 이렇게 지력을 고려한 명칭이라 지역별, 토질별로 그 넓이가 다르기도 하다. 동일한 가치를 다타내는 단어이자, 삶의 방식이 잘 스며있는 말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한 평’은 어떠한가. 아무런 공간에 대한 고려 없이 그 넓이만을 계산한다. 물론 수학적 단위는 용이하다. 이 계산은 면적을 따져볼 필요가 있을 상태에는 의미가 있는 일이다. 같은 생활공간 두 개를 비교하거나 위에서 말한 마지기를 넓이로 환산해볼 때도 유용한 단위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삶의 단위는 아니다.
부동산 구매자의 첫 질문은 대부분 ‘평당 가격’ 이다. 신기한 것은 환산 과정이다. 땅의 가치와 건물의 가치가 함께 고려돼 결정된 총액이 총 평수로 환산되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넓이를 나타내는 ‘평’과 집의 ‘평’은 둘 다 3.3㎡를 나타낼지언정 그 의미가 아예 다르다.
주택의 가격책정은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사실상 다른 구조의 주택이라 할지라도, 심지어는 그 주택의 층수가 다소 달라도 평당 가격이 비슷하거나 동일한 때가 있다. 이것은 한국 주택단지의 특성을 고려해 새로 지은 주택이거나 신규 택지가 아닌 곳을 제외하고 본다면 더욱 그렇다. ‘평당 가격’이 주택의 모양과 상관없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미 ‘평당 가격’은 지역의 단위로 모종의 이유를 통해 결정이 되고 나서 그 대지의 넓이로 다만 나누어질 뿐, 공간의 ‘인간’은, 그 삷의 방식과 주거의 형태를 구성한 주택의 가치는 가격의 결정에 그렇게 중요한 조건이 아닌 셈이다.
공간을 점유하던 삶의 그림자는 삭제되고, 대신 그 가격만이 남는다. 이는 증권시장의 주식과도 같다. 주식의 소유주에게 회사의 가치는 그 가격증감의 양도차익 이외에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 ‘종이 조각’의 가격은 회사 내부의 그 어떤 것과도 소유주를 이어주지 못하는 것이다. 회사 상품의 질과 사원의 노고가 증발되듯, ‘평당 가격’에는 공간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 사라진 채 금전적 가치만이 남는다.
단순히 넓이의 면적인 ‘평’을 언급해 그 면적을 어림할 때와, 주택을 지칭해 그 가격을 논할 때는, 이렇게 그 의미가 다르다. 이 때, ‘평’이 담는 가치는 공간의 외부를 수렴하지만 그것이 원래 가리키는 면적만큼의 삶은 그 의미에서 어느새 사라진다.
그렇다고 해서 평당 가격에 공간의 가치가 아예 반영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교통사항이나 인테리어의 가치 등은 언제나 이 가격에 영향을 주는 항목이다. 이것은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입지하고 있는 대지의 접근성 등 여러 요소의 고려에서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이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문제다.
과연 우리가 삶의 방식에 무게를 두는 시각을 가졌다면, 부엌 한 평과, 거실 한 평, 그 두 개가 사람이 살기 조화롭게 구성된 집의 큰 공간 전체의 구성을 생각한다면, 그 공간을 단순한 평으로 나눈 평당 가격으로 그 가치를 쉽사리 어림잡을 수 있을까.
공간에서 삶이 사라지고, 그저 손에 잡은 주식의 오름세와 하향세를 고려해가듯 살고 있는 곳의 ‘평당 가격’을 바라본다면 과연 우리는 이 분야에서 필연적으로 효율적인 아파트를 등지고 주택을 선택할 수 있을까.
우리는 왜 ‘평’에 갇혀 공간에서 삶을 실종시킬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