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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Dec 14. 2023

내 의심병의 시작

저주를 퍼붓는 나와 모든 걸 이해하는 부처 남편


셰어하우스 실패 후에도 남편이 가장 이루고 싶어 하는 버킷리스트 꼭대기에 '다주택자'는 변함없이 자리를 지켰다.  그 목표에 닿으려고 애쓰다가 나가떨어질 때마다 나는  '성취가 절실한 내 인생에 번번이 좌절만을 안겨주다니! 포기다 포기'라고 백기를 들고 내 버킷리스트 이탈리아 여행하기를 지우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집념의 이과남자는 정말이지 농막이라도 하나 사서 다주택자가 되어야 멈출 거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또(!) 적당한 곳을 찾았다며 임장 스케줄을 짰다. 천안에 갭투자를 하려 34평 아파트 계약까지 갔다가 여러 사정들로 좌절되고 난 직후였다. 회복탄력성도 좋지. 남편은 '라리 수도권 투자가 낫겠다'는 내 말에 눈을 돌려 부평으로 향했다. 아직 다 지어지지 않은 아파트 분양권을 사보고 했다.


차를 타고 부평으로 들어서니 아직 페인트 칠도 하지 않은 회색빛의 거대한 아파트가 겹겹이 서서 나를 반겼다. 오래되고 낡은 동네에 우뚝 서있는 아파트를 보며 남편은 말했다.



"여기가 4억이 안돼. 물론 24평이긴 하지만 새 아파트고 지하철 7호선도 가까워. 주변 정비가 이뤄지고 있어서 사두면 분명 가격이 오를 거야"



천안에 갭투자를 하려고 했던 30평대 아파트는 5억이 넘었다. 전세가가 높긴 했지만 여러모로 부담이 되는 가격이었. 여긴 5천 세대의 24평 새 아파트. 부동산이 하락세였던 시기라 피가 붙지 않은 매물도 있다고 했다. 우리는 한 달에 거쳐 주변임장을 마치고 고민을 거듭한 후 인천 부평의 새 아파트 분양권을 사기로 결정했다. 분양권이 가진 리스크를 점검해 보았지만 애초에 리스크 없는 투자는 불가능했으므로 리스크를 줄이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세입자를 빨리 찾을 수 있게 급매로 나온 로열동 로열층을 매수하기로 한 것이다.



마음을 먹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 됐다. 마침 누가 봐도 접근성이 좋은 동호수가 저렴한 가격에 나와 계약을 진행하기로 했다. 부동산에 가계약금을 보낸 순간 심장이 두근댔던 기억이 난다. 이미 목전까지 갔다가 허물어진 경험이 몇 번이나 있어서 미리 흥분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드디어 소원했던 다주택자가 되는 건가! 싶어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문제는 약속했던 계약날 터졌다. 우리에게 집을 팔기로 했던 사람이 연락두절로 일관했다. 타게 연락을 기다리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상대에게 기대와 절망을 반복하는 일은 20대 연애시절 이후 좀처럼 없었어서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애증의 상대가 매도인이라는 건 더 어이가 없었다. 종일 초조하게 기다는 시간을 보내며 내 마음은 불덩이처럼 타올랐다.


천만 원을 더 얹어준다는 사람에게 분양권을 팔았다는 소식 들은 건 나중었다. 가계약금은 돌려받았지만 이 일로 얻은 배신감과 불신은 치유되지 않았다. 매도자는 물론이며 부동산중개인까지 의심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왜 약속을 안 지켜? 가계약금 보냈는데 이럴 수 있는 거야? 솔직하게 말하고 우리에게 선택권을 줬으면 우리도 천만 원 더 낼 수 있었는데! 잠적을 하다니 이해할 수 없어!!!!!"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서 얼굴도 못 본 그 사람이 늦잠으로 다급하게 출근하며 엉망인 하루를 시작하기를, 점심시간에 바지에 커피를 홀랑 쏟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웃긴 꼴로 넘어지기를, 집에 돌아왔더니 누가 차를 대차게 긁어놓고 연락처를 안 남겼기를, 딱 그만큼 부끄럽고 불행하기를 바랐다. 남편은 그의 불행을 빌고 있는 나를 한심하게 여기며 혀를 찼다. 분양권을 살 때 이런 일은 아주 흔하다는 거였다.



"5천 세대나 되는데 뭐, 다른 동호수 또 찾으면 돼"



평소에 법륜스님 말씀을 열심히 듣는 남편은 이 상황에서도 부처 같은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나는 소소한 저주를 퍼붓는 일을 좀처럼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아직 멀었나 보다. '예의를 갖추지 않는 사람에게 관용의 태도라니 있을 수 없지.' 나의 이해심과 다정함은 나를 존중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져야 마땅했다.



돈이 오가면 시시때때로 이익에 따라 마음을 바꿔도 되나? 나는 오히려 이 일로 의심과 불신을 더 높이 쌓아 올렸다. 돈이 오가기 때문에 당연히 지켜진다고 믿었던 약속들이 얄팍한 마음으로 쉽게 치부되는 걸 보며, 돈 앞 약속도 신의도 의미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부처의 역할은 남편에게 일임하고 나는 순수함을 잃으며, 의심을 일삼는 우리 엄마와 닮아갔다.  그것은 부동산투자와 다주택자에 한 발 더 가까워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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