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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Jan 27. 2024

결혼은 '따로 또 같이'

스트레스 관리는 스스로의 몫


20대에 난치성질환을 진단받았다. 생명에 지장이 있는 병은 아니지만 증상이 시작되면 일상생활이 완전히 불가능해지는 자가면역질환이다. 다행히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정기적으로 대학병원 진료를 받으면서 큰 문제없이 인생의 크고 작은 일들을 헤쳐올 수 있었다. 아니었나? 생각해 보면 일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을 포기했던 적도 있었고 몇 년에 한 번씩은 꼼짝없이 앓아눕기도 했다. 유산과 난산의 원인이 이 병이었을 거라고 의심한 적도 있었.


그러나 아프다는 사실을 매번 자각하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래 끌어안아온 병을 부정적으로 인식할수록 내 삶은 더 비참해지기 마련이기에 나는 유병장수의 시대에 긍정의 마음을 실었다. 남들보다 병원에 더 자주 가서 검사하니까 큰 병은 안 걸리겠지, 하는 마음으로 내 안의 약한 부분을 단단하게 다져나갔다.


결핍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안온한 내 삶 중 오래 앓고 있는 이 난치성질환이 내 몫의 결핍이라고 생각하면 받아들일만했다. 약을 열심히 먹고, 병원에 꾸준히 방문하면서 최대의 적이라는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 꽤 오래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잊고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 말이다.


7년 동안 독한 약 없이 관해기를 유지하고 있던 병이 갑자기 존재를 드러내며 일상을 망가뜨린 것은 우리의 두 번째 집, 인천의 아파트 입주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음식을 삼킬 수도 없는 상황이 지속됐고 심한 구토로 결국 아이 둘을 재워두고 새벽에 응급실까지 찾게 됐다. 빼고 싶을 땐 눈치 없이 들러붙어 있던 살이 순식간에 6킬로나 빠졌고 일상은 곧바로 엉망이 됐다. 길건너에 있는 둘째 유치원도 데려다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남편 얼굴은 심각해졌다.



"도대체 왜 그러지? 크게 스트레스받을 일이 있었나?"



남편의 눈이 걱정으로 가득 찬 걸 보며 마음이 아팠다. 거기다 대고 솔직히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 막대한 스트레스의 원인에 대해서.      



그쯤 추석도 대가족여행도 있어 스트레스의 원인을 찾으려면 한 둘이 아니었지만 나를 가장 불안하게 했던 건 '단기임대'였다. 분양권을 산 아파트는 사전점검을 거쳐 입주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 맞춰 남편은 약속대로 세입자를 들이지 않고 삼삼엠투로 단기임대를 준비했다. 은행에 대출을 알아봤고, 앱에 집을 등록하고 안을 채워나갈 품목을 엑셀파일로 꼼꼼하게 작성해 내게 넘겨줬다. 



남편보다 집 꾸미기에 자신 있는 내가 집안을 채우는 일을 맡았다. 화이트로 집에 들일 모든 가구의 톤을 결정하고 포인트가 될만한 소품들도 찾기 시작했다. 소파라고 써 있는 엑셀의 두 글자를 보며 나는 그 엑셀시트 위아래를 채우고 있는 스탠드와 러그를 함께 생각하고 집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제품을 찾기 위해 온갖 포털사이트와 쇼핑몰, 당근을 뒤졌다. 감각 있게 물건을 고르려는 동시에 천 원이라도 더 싸게 상품을 구입해 보려는 노력은 스스로 생각해도 눈물겨웠다. 머무는 사람들의 편의와 안락함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잠시도 노트북과 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됐다. 



이쯤 집안 꼴은 점점 더 엉망으로 치달았다. 미니멀라이프를 사랑해 깔끔함이 자랑인 우리 집에 살람살이가 끝도 없이 들어차게 되었다. 임대할 집으로 옮길 전자레인지, 밥솥, 삼텐바이미 등 부피도 결코 작지 않은 녀석들이 떡 하고 버티고 서서 생활공간을 침범해 올 때마다 마음 한편이 답답해졌다. 물건들이 쌓일수록 근심은 늘었고, 그렇게 쌓고 쌓아도 쓰레기통, 화장대, 수건, 칫솔꽃이, 발매트 등 들일 품목은 끝도 없다는 게 문제였다.



도대체 누가 머물긴 할까? 하는 마음과 사진 한 장만 봐도 하루쯤 머물다가고 싶게 만들어야지가 머릿속에서 공존하며 한 시간이 멀다 하고 투닥거리다 결국 내 속이 단단히 탈이 나고 말았다. 불확실성이 갖는 스트레스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불안하게 물건을 쌓고 있는 내 모습을 스스로 견디지 못해 잠잠하던 자가면역질환이 폭탄처럼 터져버렸다. 아팠던 새벽, 응급실에 가서 환자복을 입고 화장실로 달려가 토하면서 정말이지 엉엉 울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에게 아무래도 단기임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렇게 된 것 같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결혼생활을 꽤 잘해오고 있었는데, 나는 그 바탕에 '따로 또 같이'가 있다고 믿었다. 남편을 아무리 돕고 싶어도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이 있고, 내게도 남편의 도움 없이 스스로 가꿔나가거나 해결해야 할 분명한 영역이 존재했다. 스스로 감정컨트롤을 잘하고, 나만의 영역을 공고히 다져나갈수록 신기하게 부부관계도 단단해졌다. 적당한 거리, 완전한 믿음과 응원, 내 안에서 얻은 시너지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같이' 나눠왔기에 우리가 건강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단기 임대를 앞두고도 우린 '따로 또 같이'의 힘을 믿었다. 각자가 잘하는 역할을 분담해 열심히 해보기로 마음을 합친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정의 행복, 노년의 여유로움이라는 목표가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엔 내쪽에서 감정컨트롤에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혼자만의 영역을 다스리지 못해 몸은 만신창이가 됐고, 결과적으로 누워만 있던 나 대신 남편이 일당백을 하며 가정도 돌보고 회사에 다니면서 단기임대도 준비하느라 백방으로 뛰었다. 따로 또 같이는 무슨! 책임감이 온통 남편의 어깨에만 쏠려 혼자 동동거리는 걸 지켜보자니 미안함이라는 단어하나로는 설명하지 못할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여기서 더 무리했다간 남편이 다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제야 정신을 좀 차리게 됐다.


은행에 가서 공동으로 대출 서류를 작성하고, 입주 날짜에 맞춰 아파트 열쇠를 받았다. 마음을 달리 먹어서인지 약을 열심히 먹어서인지 그쯤 자가면역질환도 차츰 가라앉았다. 5월에 다주택자가 되었다고 좋아했는데, 어느덧 가을의 한가운데였다. 집안을 빼곡히 채웠던 물건들을 자동차로 두세 번씩 새집으로 나눠서 옮기며 남편과 둘이 이사 아닌 이사를 했다. 날짜에 맞춰서 주문한 큰 가구들도 순차적으로 새 집에 들였다. 머리로 생각만 해왔던 배치가 상상 속에서처럼 착착 이뤄지는걸 눈으로 보고 있자니 신기했다. 화분 하나까지 생각과 꼭 같이 놓고 나자 비로소 공간이 살아 숨 쉬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래, 이거야!"



화려하진 않지만 깔끔하고 감각적인 공간. 포크하나까지 수없이 고민하고 채웠던 공간이 눈앞에 나타나자 나는 그제야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여긴, 아무도 오지 않을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될 거야!" 



아픈 와중에도 손끝으로 골랐던 물건들로 집을 채우고, 그 공간을 마침내 눈앞에 세워둔 스스로가 기특했다. 남편이 아니었다면 결코 할 수 없던 일. 남편 또한 내가 아니었다면 이만큼 채울 수 없었을 집. 새로운 공간을 바라보며 우린 또 '따로 또 같이'의 힘을 실감했다. 


그 밤, 집 사진을 앱에 올리기도 전에 삼삼엠투를 통해 임대 문의가 들어왔다. '경제적 자유'라는 원대한 목표 앞에선 작은 움직임에 불과했지만 우린 매번 함께 도전했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돛을 쥐고 있으면서도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성취감에 취했다. 남편은 도전하길 잘했다고 생각했고, 나는 여전히 도전이라는 단어에는 선뜻 마음을 내어줄 순 없지만, 그래도 남편과 결혼해서 뜻밖의 선택을 하고 있는 지금의 삶이 꽤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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