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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Mar 06. 2024

집, 어디까지 빌려줘봤니?

호구와 못된 애의 단기임대



남편은 철저한 시장조사의 결과라고 생각했고, 나는 여전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이유가 뭐가 됐든 우리는 단기임대  오픈과 동시에 단 하루의 여유도 없이 손님을 받았다. 주변에 이렇다 할 관광지도 없고 오피스타운도 이니었지만 놀랍게도 그건 별로 문제가 안된다는 듯 연이은 문의가 들어왔고 덕분에 길게는 한 달 반, 짧게는 이주에 이르며 타인에게 집을 빌려주는 단기임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단기임대 집에 머물렀던 손님은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였다. 집을 구하기에 앞서 어떤 동네가 좋을지 살아보면서 동네의 분위기를 직접 느끼고 출퇴근의 피로를 체감해 볼 예정이라고 했다. 집 구하는데 한두 푼이 드는 것도 아니고 한번 살 동네를 정하면 떠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 살아보며 미리 동네를 경험해 보는 일이 합리적으로 느껴졌다.(오 역시 MZ!!) 다만 단기임대로 집을 빌려주기 전까지는 이런 수요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생각도 하지 못했을 뿐.



두 번째엔 호주에 사는 가족이 한국에 들른다며 머물렀다. 7개월 아기와 일곱 살 어린이가 있는 4인 가족이 한 달간 머무르며 지냈다. 이후엔 누수 때문에 공사하는 동안 거주지가 필요한 분들도, 주재원 생활을 하며 한국에 다녀가느라 우리 집에 머물렀던 분들도 계셨다. 수술이나 물리치료를 받으며 병원을 오가느라 거쳐를 구하셨던 분들도 있었다.



단기임대 집에 머무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을 깊이 알게 될 때마다 그들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우리 집에 있는 동안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4인 가족을 받았을 때는 고민 끝에 의자를 추가로 주문했고, 아기 손님을 위해 뭘 해줄 게 없나 생각해보기도 했다. 아픈 분이 계실 땐 침구를 추가해 드리기도 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의 상황을 생각해 보고 뭘 해주고 싶어 하다니! 사람을 들이고 머물게 하면서 나처럼 차가운 사람이 이토록 다정한 마음을 먹게 되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다정함은 찰나에 불과했던가,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 반에 한 번씩 청소를 하러 갈 때마다 나는 내 안에 뜨겁게 존재하고 있던 인류애가 사라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침대옆에 벽지가 죄다 뜯겨나갔을 때나, 디자인과 모양을 끝없이 고민하며 골라놓은 스카이블루 색 철제 쓰레기통이 움푹 파여 찌그러져 있었을 때 받았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발... 발로 찬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도대체 왜!!!



우리가 손님을 받았던 어플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보증금을 걸어두었지만, 남편은 쿨하게 넘기며 모든 손님에게 보증금을 돌려줬다. 호구야 뭐야 즌짜.. 그들이 우리 집에 머물며 냈던 200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생각해 본다면 철제 쓰레기통이나 찢긴 벽지쯤은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후에도 여러 번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 충격과 배신감을 느꼈다. 그건 돈을 떠나서 내가 생각한 상식과 기준을 넘어선 행동에서 오는 의아함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넉넉하게 미리 채워둔 휴지와 비누, 여분의 주방세제를 퇴실하며 들고 갔다. 청소에 서툰 우리가 조금이라도 시간을 절약해 보려는 마음에 미리 채워둔 팬트리가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비어버린 것을 보며 당황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걸.. 가져갈 수도 있구나.." 내가 충격을 받아 말했을 때 남편은 별일도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까. 누구나 우리 같지 않아.'




정말 그랬다. 단기임대를 운영하며 세상엔 별별 사람이 다 있다는 사실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알게 됐다. 3개월을 머물러야 하는데 오래 지내는 만큼 집을 미리 보고 싶다는 요청을 해온 여자분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입주문의를 해온 분이 있어서 손님을 가려 받고 싶었지만 남편은 나중에 연락 주신 분께 협의 중인 분이 있다고 양해를 구하고 집을 보여주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단기임대를 주는 집까지의 거리는 한 시간 반. 왕복 세 시간이나 걸리기 때문에 시간과 돈 모두 아까지만 최대한 손님들의 니즈를 반영해 보려고 애썼다. 우린 처음이라 서툴 테고, 그들에게 한 달에 200에 가까운 금액은 결코 적은 이 아닐 테니까.



그러나 기임대 특성상 집을 보고 싶어 하는 시점엔 누군가 살고 있었고, 그분이 퇴실 후에 뒤에 날짜를 일부 예약불가 형태로 비워 집을 보여줘야 했다. 이 번거로움을 알리 없을 테니 가볍게 여겼던 걸까? 그분은 여가 있던 시간 동안 이미 거처를 구했는지 약속된 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사전에 연락했을 때 답장이 없던 게 싸했지만 약속장소에 나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단기임대집에 가서 약속시간이 지나도록 기다렸다. 남편이 못 오면 못 온다고 연락이라도 부탁드린다는 문자를 보냈지만, 여러 번의 읍소에도 얼굴은커녕 답장한 줄 받지 못했다. 세상에 해도 너무 하네! 내가 거의 용의 불을 뿜어대고 있을 때 남편은 어플을 통해 '못 봬서 아쉽지만 행복을 빌어드린다' 내용을 쓰고 있었다. 못 온다는 문자 한 줄이 그렇게 어렵나! 생각하던 나는 새삼 남편을 보며 내가 못돼 먹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러나 호구도, 못돼 쳐 먹은 애도 사람을 상대하며 번번이 대책 없이 당했다.



이후에도 집을 직접 보고 계약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었고 우리는 미리 전화번호를 받고, 사전 연락을 하는 등 나름의 조치를 취해봤지만 그들 또한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당일에 연락이 두절됐고, 전화와 문자를 씹었다. 호구는 늘 그들을 향해 행복을 빌어줬고 돼먹은 애는 어떻게 타인의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적개심을 키워봤지만 사는 일이 그렇듯 별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어플에 명시한 대로 심플하게 사진을 보고 결제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손님이 가장 상식적으로 집을 사용하고 퇴실했다.



청소에 서툰 우리 또한 얼마나 좋은 거주환경을 제공했는지 모를 일이긴 했다. 못 돼먹은 애한테 CS를 맡기기 불안했던지 어느 순간 호구는 혼자 사람들을 상대하며 커피쿠폰도 선물하고 자잘한 요구사항들을 수용해주고 있었다. 단기임대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못된 애는 그나마 청소에는 진심과 소질, 호구는 절대로 보지 못하는 영역까지 훑고 지나가는 매의 눈을 가져서 유용한 편이었다.



세탁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세탁하고 교체하고, 쓸고 닦았으며 싱크대와 화장실에 특히 신경을 썼다. 머리카락!! 머리카락도 놓칠 수 없었다. 집을 빌려주며 청소의 모든 분야를 허투루 생각할 수 없었지만 가장 신경 쓰인 것은 머리카락이었다. 머리카락은 완벽한 청소를 모두 망칠 수도 있는 대단히 심각한 존재기 때문에 최고의 흡입력을 자랑하는 다이슨 유선청소기로 온갖 것들을 다 빨아들이고 물걸레로 청소한 후에도 안심할 수 없었다.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돌돌이로 거의 모든 공간을 밀고 다녀야 음이 놓였다.




여기에 골칫거리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건 바로 너무 예쁜 우리 집 소파였다. 하필이면 우리가 산 소파는 머리카락이 잘 달라붙는 페브릭재질이었는데 심지어 그 페브릭사이에 머리카락이 끼기도 했다.  호구의 눈에는 절대로 안 보이지만 못돼먹는 애 눈에는 너무너무 잘 보이던 소파에 낀 머리카락들. 그걸 손톱으로 긁어 떼어내며, 그 머리카락의 길이가 짧으면 짧을수록 찝찝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쩌겠나 돈은 그냥 벌리는 게 아닌 것을. 이걸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냐고 생각하며 청소하러 갈 때마다 적어도 20분쯤은 소파에 붙어 손님들이 머리를 대고 누웠던 방향을 따라 머리카락을 떼며 '버킷리스트에 있던 에이버앤비 운영하기 그냥 지울까?' 하는 생각을 백번쯤 했다.



그래도 뭐랄까, 남편과 새로 개척한 미지의 세계는 묘한 재미 있었다. 청소가 서툴러 둘이 하루종일 붙어서 집을 쓸고 닦으면서도 그 일이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주로 정수기 광고가 뜨곤 했던 아미의 유튜브에는 어느 날부터 여행가방을 밀고 가는 단기임대 광고 뜨기 시작했다. 뭐여, 검색도 안 했는데!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세계에 뜨끔하며 나는 그렇게 단기 임대 주인에 못돼먹었지만 책임감 있게 적응해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남편은 레드오션이라고 생각했, 나는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 전전긍긍했던 단기임대는 꽤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우리는 매달 2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벌며 매일 노동하지 않아도 통장에 돈이 꽂히는 새로운 돈벌이의 형태를 맛봤고, 덕분에 다주택자가 되어보려고 무리해서 샀던 아파트에 이자 관리비를 감당할 수 있었다.


단기임대를 위해 집을 꾸미며 쓴 돈과 시간, 번거로움까지 다 환산한다면 정말 성공적인 운영이 맞나 다시 생각해 보게 되지만 그래도 분명, 성공적인 도전이었다. 긴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있었고, 남편의 예상대로 입주장을 맞았던 아파트는 단기임대를 주는 네 달 동안 전세가가 1억이나 올랐다. 전세가뿐일까, 최근거래내역을 눌러볼 때마다 아파트 매매 가격은 서운하지 않은 폭으로 꾸준히 상승했다.



남편은 처음부터 오래 단기임대를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었다. 전세가가 상승하자 바로 그는 단기임대를 정리하고 전세로 임대형태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제 머리카락을 손톱으로 안 긁어내도 된단 말인가! 싱크대와 냉장고장을 사이에 머리카락을 더 이상 찾지 않아도 되나! 하는 시원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어쩐지 서운함도 조금 밀려왔다.  



그렇게 네 달도 채 안 되는 짧은 여정의 집 빌려주기가 막을 내렸다. 못 돼먹은 나는 짧은 시간 호구인 남편에게 많이 배웠다. 그가 세상을 긍정하는 힘, 그러면서도 현실적이고 이성적이게 적기에 내리는 판단을 보며 '감정'적인 것이 과연 인생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지 고민될 정도였다. 나도 이제 호구로 살아볼까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호르몬과 감정의 노예인 나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영원히 호구는 될 수 없겠지만 짧게나마 운영해 본 단기임대로 얻은 것은 많다.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무너뜨계기가 됐고, 확신과 믿음이 있다면 하나씩 해내가면 된다는 용기도 얻었다. 게다가 호구와 못된 애가 함께라면 못할 것도 없다는 단단함까지 선물 받았다. 사실 이게 가장 큰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마흔이 넘은 부부가 단단해지기가 어디 쉬운가? 골프로도 탁구로도 등산으로도 하나 되지 못한 우리가 단기임대로 뭉칠 수 있다니. 게다가 마흔 줄에 안 어울리는 용기라는 반짝이는 단어를 곁에 둘 수 있게 되었다니 든든했다.


다음은 또 어떤 용기를 내볼까, 늘 그렇듯 호구는 또 궁리를 시작했고 못된 애는 언제나 단단히 반대할 준비가 되어있다. 다만 이제는 마음속 깊이 호구를 지지한다. 명분이나 대안 없는 감정적인 반대는 하지 않는다는 다짐을 혼자 조용히 해보며 어딘가에 존재할 신기루 같은 경제적 자유를 찾아 또 한 발짝 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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