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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Jul 12. 2024

당신의 처음을 응원합니다

키오스크 도전하기

     

이슬아는 그의 책 '끝내주는 인생'에서 계속해서 새 사람이 되고 싶다고, 잊을만하면 신인의 광채를 내뿜으며 할머니를 향해 가고 싶다고 썼다. 신인이란 어제의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시도를 오늘 하는 사람이라고, 이슬아는 책에서 말한다. 나는 무인 아이스크림할인점을 운영하면서 신인의 광채를 내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핸드폰 속 작은 화면에서 자주 만나곤 한다.      


우리 가게에 자주 오시는 할머니 중에 지팡이를 짚고 들어오시는 분이 있다. 젊게 봐야 80대 후반이신 그분은 지팡이와 함께일지언정 위풍당당한 걸음걸이를 가졌다. 위세 좋게 문을 열고 들어와서 할머니가 꺼내는 아이스크림은 비비빅이다. 할머니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키오스크 바코드에 아이스크림을 찍고 신용카드 결제까지 깔끔하게 해낸다. 할머니가 기계를 마구 주무르는 모습을 지켜볼 때면 쾌감이 느껴진다. 사가신 아이스크림이 이도 잘 안 들어가는 비비빅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분이 시대를 따라가는 용기를 가진 것도 모자라 건치까지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분 뒷모습에도 광채가 나는 것 같다.     



할머니의 키오스크 데뷔는 언제였을까? 나는 둘째를 낳고 휴직을 하면서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유아차를 밀고 산책 겸 멀리 걸어간 샌드위치 전문점에서 처음으로 키오스크 기계를 만났다. 계산대에 서서 주문하려고 입을 뗀 순간 '뒤쪽 키오스크에서 주문해 주세요'란 점원의 말을 듣고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때 고백을 거절당한 사람처럼 낯 뜨거워진 채로 나만 빼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약간의 배신감을 느꼈다. 육아로 지쳐있는 신세에 조금의 좌절감까지 보태며 낯선 기계 앞에 섰다. 쓰여있는 건 한글이 분명하고 누르기만 하면 되는 쉬운 작동법에도 불구하고 뒤에 사람이 두 명이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급해졌다. 결국 신용카드를 현금 투입구에 꽂는 무리수를 거쳐 진땀 나는 주문을 마쳤다. 첫 번째 주문은 얼굴이 홧홧했지만 두 번째는 쉬웠고 세 번째부터는 당연해졌다.      


당시 30대였던 나에게도 처음이 쉽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어르신들의 처음이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다. 얼마 전엔 콧노래를 부르며 가게에 들어오신 할아버지가 키오스크와 원만한 협의를 보지 못하고 장바구니를 집어던지며 나가는 순간을 보고 말았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랬을까! 나의 처음을 생각하면 그 마음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래도 나는 무인아이스크림점에 문을 밀고 들어오는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들 중에는 우리 집에서 멋지게 키오스크 데뷔를 해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앵무새처럼 '상품의 바코드를 읽혀주세요!"라는 말만 반복하는 키오스크가 밉지도 않은지 인내심 있게 바코드 스캔하는 곳을 찾는다. 가나초콜릿을 영수증 나오는 곳에 쓱 밀어 넣어 보기도 하고 얼토당토않게 기계 옆에 척 붙여보기도 한다. 그렇게 앞, 뒤, 위아래에 상품을 다 갖다 대 보다가 우연히 바코드를 스캔하게 된다. 물론 바코드를 찍은 뒤에도 난관은 기다리고 있다. 깨알같이 작은 글씨와 빠른 질문으로 키오스크는 계속해서 인내심을 테스트한다. 현금으로 결제할 건지, 신용카드를 쓸 건지, 영수증은 필요한지 봉투는 돈을 내야 되는데 살건지 말건지 물어댄다. 아이스크림 하나, 초콜릿 하나 사 먹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소리는 잘 안 들리고 글자는 안 보이는 어르신들은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쓰기도 하고 대충 그림을 보고 때려 맞추기도 하면서 마침내 키오스크로 계산에 성공한다. 그 화면을 지켜보고 있을 때면 달려가 하이파이브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들의 처음을 지켜볼 수 있어 영광이다.      




의외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80대 어르신이 많다는 것이 내가 아이스크림할인점을 하면서 가장 놀란 부분이었다. 어르신 중 절반은 물건을 다시 놓고 돌아가지만, 나머지 절반은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기계에 적응한다. 그분들은 사람이 있으면 도움 청하고, 잘 모르겠으면 처음으로 돌아가 시도를 반복한다. 새로움을 낯설게 여기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해보는 어르신들에게 나는 광채를 본다. 벌써부터 깨알 같은 글씨, 어쩌다 해야 하는 암산, 긴 설명서에 고개를 젓고 있는 모습을 반성하게 만든다.     



최근 송파구에서는 키오스크 주문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느린 키오스크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한다. 나이 든 사람들도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히 키오스크를 쓸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배려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게 캠페인의 취지라고. 여기엔 바코드 스캔법 같은 현장실습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도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은 인생,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나 또한 더 많은 어르신들이 시행착오를 거쳐 마침내 빛나는 성공의 경험을 맛보기를 바라게 된다. 의외의 장소에 머물고, 어제와 다른 선택을 하는 어르신들을 응원한다. 어르신들뿐일까, 그 마음은 나를 향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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