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마저도 카카오톡이나 DM에 밀려 잘 쓰지 않는 세상이지만 가끔 손글씨로 편지를 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요즘 우편함은 각종 고지서, 광고물 따위로 가득하여 더 이상 주인의 기다림 또는 기대를 상징하지 못하기에, 이왕이면 예전 우편함에서 기다리던 누군가의 손편지를 꺼내보던 시절로 보내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에게도 보내보고 싶고 당시 지금의 제 나이 즈음이었을 부모님께도 보내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어디서 무언가를 하고 있을지 궁금한 고향 친구들에게도요. 시간은 제가 딱 지금 아들의 나이였던 때로 하겠습니다.
예전에는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많았으나, 요즘은 삶이 만족스러워서인지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드뭅니다. 그러나 제가 과거로 편지를 쓰고 싶은 것은 두 아이를 키우며 자연스레 그즈음의 나는 어땠었나 떠올리기 때문인 듯합니다.
아이들의 삶과 저의 삶은 제가 아이들을 세상에서 만난 시간만큼의 시차를 두고 나란히 이동해 갈 것입니다. 아이들은 저를 보며 어른되기 연습을 하고, 저는 아이들을 보며 생각이 늙지 않는 연습을 하겠지요. TV에서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을 보면 저리 늙고 싶지 않다는 어머니를 보며, 나도 어머니와의 시차만큼 더 나이 들면 저런 생각을 하겠지 싶습니다.
사람은 그런가 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누군가를 따라가고 누군가의 길잡이가 되는. 그래서 생이 다할 때까지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것이겠지요. 직장에서는 은퇴가 있어도 인생에서는 은퇴가 없잖아요.
부모님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울 때가 있지만, 부모님의 뒤를 이어 제가 따라가고, 또 아이들이 따라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려니 생각해야겠습니다.
부모님께,
부모님의 따스한 보살핌으로 꿈에 바라던 대학에도 합격했고, 군생활도 좋아하는 악기 연주를 하며 즐겁게 마쳤습니다. 좋은 직장에 취업도 하고 아내와 결혼하여 사랑스러운 두 아이도 태어나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올해 칠순이니 부모님이 지금 나이일 때의 모습을 당시에는 상상하셨을까 궁금해집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제가 아이의 나이였을 때의 추억이 떠오르곤 합니다. 부모님이 저희들에게는 최선을 다하셨었기에 저는 추억이 많지만, 되돌아보면 부모님이 너무 고생스러운 삶을 사셨나 싶습니다. 당시 제 또래였던 부모님은 집에서 술을 드시곤 했었죠. 어머니의 요리 솜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일품이잖아요. 술을 마시며 인생계획도 세우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다가 취기가 오르면 저희를 불러다 놓고 자랑스레 쳐다보셨던 게 기억납니다.
어쩌면 자라면서 본 그대로 지금의 제가 따라 하고 있는 건지 모릅니다. 아내와 저도 요즘 재테크, 자녀교육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거든요. 세상 속 유행하는 부자나 파이어족이 되자는 것은 아니고 우리 부부 노후에 우리 부모님들처럼 스스로를 돌 볼 정도의 준비를 하고, 아이들 교육, 결혼 등등 앞날을 준비할 정도의 재테크를 하기로 합니다. 너무 미래에만 치우치지 않고 너무 현재에만 치우치지 않게 쓰면서 살면 될 거라고도 했습니다.
자녀교육은 아이들이 스스로 하게끔 하자는 저의 의견과 학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자는 아내의 의견이 늘 팽팽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일이 아닌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합니다. 아내와 제가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고 있어서일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님의 뒤를 따르고 있지만 저는 저의 삶을 스스로 일구어나가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삶의 가치관이나 방향을 되돌아보고 저만의 삶을 살아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어머니의 칠순 자리에서 술자리 중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머니가 제가 한 이야기에 놀란 적이 있지요.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서도 각자 삶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 깨닫는 것이 다르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 더 건강했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
이번 여름휴가 때는 열심히 농사지은 채소로 고기 구워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를 기대합니다.
아들 올림
봉투에 주소를 적습니다. 울산시 동구 화정동 00-00번지. 오늘 적은 편지를 과거의 저에게, 부모님께 보내며, 저는 오늘 하루 속으로 힘차게 달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