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의 개성있는 노인들

단출하고도 우아한 골목길의 점심식사

by 김홍철
베네치아의 개성노인들.jpeg 베네치아 어느 골목 귀퉁이에서 와인을 즐기는 노인들


피렌체에서 베네치아로 들어왔다. 베네치아는 좁은 골목과 수로만으로 이루어진 작은 도시라서 골목마다 무엇이 새롭게 튀어나올지 모를 호기심이 생겨나 이곳에 있는 내내 무조건 걷기로 마음먹었다. 여행 잡지에 항상 단골로 실려왔던 형형색색의 베네치아는 날씨가 흐렸던 탓에 생각만큼 그렇게 수려해 보이진 않았고, 베네치아의 시그니처인 곤돌라 맨의 노래 '오 솔레미오'는 전혀 들을 수 없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곤돌라 맨의 노래는 이제 추가 요금을 내야만 들을 수 있다고 하니 내가 머물러 있었던 동안에는 아무도 그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아니면 운이 없었던 거겠지. 스위스에 가면 요들송이, 오스트리아 빈에 가면 피아노 연주곡이 항상 흘러나오지는 않듯이 여기도 다를 것 없었다.


어디를 가든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여행객들과 각종 상점들이 빼곡한 베네치아의 골목길을 피해 사람들이 가지 않을 듯해 보이는 후미진 곳으로 깊이 들어가다 보니 수다에 매진하고 있는 동네 어르신들을 발견했다. 좁은 골목은 그들만의 거실이 되어 시시콜콜 자기 얘기하느라 서로 바빠 보였다. 노인 네 명이서 테이블 사이에 빙 둘러앉아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 있었던 걸까? 테이블 위에서는 한 노인이 유독 대화를 이끌어가고 있었고, 나머지 세 노인들이 한 마디씩 거드는 모습이었다. 테이블 옆에서 엎드려 있던 레트리버 한 마리는 기다리기 심심했는지 꼬리만 내내 땅바닥을 치고 있었다. 이 광경은 무언가 낯설지 않았고, 내가 사는 그곳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잠시 생각이 드는 건,


시간이 많이 흘러 내가 그들의 시간이 되었을 때, 이들처럼 골목길 한 귀퉁이에 앉아 친구들(혹은 somebody)과 와인 한잔 앞에 두고 시답잖게 수다를 떨다가 헤어져도, 내일 다시 그들을 만날 수 있다는 안도감과 기대감만 하루하루 있다면, 내일에 대한 걱정이 조금도 없겠다. 잠시 앉아 와인 한 잔과 수다 떨어주는 친구가 뭐가 그리 대수겠냐마는, 작은 선술집의 테이블이 있는 후미진 골목길이 무슨 대수겠냐마는, 나는 이렇게 촌스런 식탁보 위에 싸구려 와인이 올려져 있는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격식이 매우 사랑스럽다. 마치 나와 같아 보여서 일까. 그래서 시간이 많이 흘러 내 지나온 평생의 교감과 애착이 소복이 쌓여있을 그곳은 아마도 이런 곳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그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