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렇다는 것

성당과 맥도날드 사이에서

by 김홍철
성 베드로성당의 마리아 조각상

베네치아 길 위에서 한참을 걷다 보니 허기도 지고, 다리도 아파 적당히 쉴 곳을 찾아다녔다. 골목길 돌아설 때마다 나타나는 작은 성당은 언제나 열려있어 걸음이 무거워질 것만 같으면 들어가서 쉬었다. 작은 성당이지만, 구색은 다 갖추고 있었다. 하늘의 뜻을 받아 꾸역꾸역 채워 넣은 천장 벽화와 그 뜻을 이루려고 땅 위로 내려온 천사들이 인간세상에서 조화를 이루며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길게 뻗은 회랑의 끝엔 마리아를 모셔놓은 재단 위로 빛이 한줄기 폭포처럼 바닥으로 떨어져 오르간 소리와 함께 묵직한 침묵의 공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작은 동네에 위치한 한 소성당이긴 했어도 바실리카 양식과 그 무게감은 온전히 여타 대성당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베네치아 어느 동네에 위치한 작은 성당이 이정도

우리는 삶에서 오는 고단함을 덜어내지 못하고 기쁨을 만들어내지 못할 때, 종종 종교의 힘을 빌리곤 한다. 종교는 마치 부모와 같아서 모든 걸 이해하고 품에 안아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조건 없는 자비심을 보여준다. 그 자비심으로 엉덩이를 겨우 앉힐 수 있을 만큼의 기다랗고 좁아터진 딱딱한 나무의자를 양 옆으로 배치해 사람들을 앉혔다. 이왕 자비를 베풀 거면 좀 푹신하고 넓은 의자에 사람들을 앉혀서 신의 작품을 감상하게 하면 오죽 좋으련만. 무슨 심보로 그런 의자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단 말인가. 이게 다 다리가 아프고 배가 고파서다. 예민한 탓에 자비심까지 들먹이며 애먼 종교를 탓하고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인간 군상 속 쉽게 일희일비하는 한낱 진상이 되어있었다.


선택권은 없었다. 의자 위에서 아픈 발을 살짝 바닥에서 띄우고 앉아 무거운 중력에서 잠시 몸을 해방시켜야만 했다. 하지만, 여행자의 신분을 망각한 채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다시 사람들이 북적이는 길로 나와 거리를 배회할 수 밖에. 그러나 늘 그랬듯 갑자기 들이닥치는 허기짐은 길 위에서 사람을 더욱 당혹시키곤 한다. 그와 동시에 다리는 더욱 아파오고 어디 길바닥에 철퍼덕 앉기도 뭣해 적당한 장소를 찾은 지만 벌써 한 시간째. 먹을 곳과 쉴 곳을 고르는 것조차 결정장애. 그냥 어디 적당한 곳을 찾아 들어가서 앉아도 될 듯한데 굳이 맘이 내키는 곳이 아니라면 두 다리가 부서져도 들어가질 않는 걸 보니 단지 맘이 편한 곳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러다가 동네 귀퉁이에 항상 있던 작은 성당을 쉼터로 삼다가 돌아선 골목길 끝에서 맥도날드를 본 순간, 탄성을 질렀다. 맥도널드는 나의 안식처이자 피난처이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에게 있어 그때만큼은 성당과 맥도날드의 무게는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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