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나라 탐험기 0
새로운 섬나라에 둥지를 틀고 장기체류 중이다. 이곳에서 처음 맞이한 계절은 겨울이었다. 분명 기온은 한국보다 높았는데 문제는 바람이었다. 이곳에서의 겨울 내내 나는 양볼을 후벼 파는 칼바람과 함께였다. 이 섬은 가로 폭이 좁고 세로로 기다란 지형인데 양 옆으로 큰 강이 흐르고 있다. 시내에 나가면 고층빌딩이 제법 모여있는데 그 사이로 윙윙 불어대는 칼바람은 북극에서 맞던 빙하바람을 생각나게 했다.
겨울을 보내고 봄이 왔다. 한겨울 헐벗었던 나무와 잔디는 초록으로 옷을 입고 사람들은 보란 듯이 옷을 벗고 돌아다닌다. 아직 쌀쌀한데도 공원에서 뛰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 한여름 같았다. 속옷만 입고 뛰는 할머니와 웃통 벗고 자전거를 타는 청년, 수영복 차림으로 선텐하는 사람들. 각자 입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볼일을 보는 곳, 이곳은 이 도시의 가장 큰 쉼터, 중앙공원이다. 내가 이곳에 사는 동안 가장 자주 갔던 곳, 앞으로도 가장 자주 찾을 곳.
봄과 여름 사이에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지난 몇 달 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습기가 집안 가득 찼고, 지하철과 버스에선 에어컨이 나온다. 초록은 더욱 무성해지고 사람들은 더 헐벗었다. 동네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이벤트가 끊이지 않는다. 평소엔 깐깐하게 가방 검사하고 주민증을 보여줘야 만 출입가능하던 경건함과 위엄을 뽐내던 중앙 도서관은 순식간에 드랙쇼의 무대가 되고, 비싼 입장료를 지불해야만 볼 수 있는 온갖 공연들은 무료로 시민들을 찾아온다. 평소에 내던 비싼 세금을 돌려받는 계절이랄까. 더 잘 노는 사람이 이 계절의 승자가 된다.
1년 가까이 장기여행을 떠나본 적은 있어도, 한국이 아닌 외국의 마을에 터를 잡고 이렇게 길게 장기체류하는 경험은 처음이다. 아직 1년은 되지 않았지만, 그때그때 생각나는 이 마을에서의 장기체류기를 여기에 써보려고 한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새로운 글을 써보자니 설렌다. 이곳이 어디인지는 나중에 공개하려고 한다.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즐겁게 상상해 주시면서 나와 함께 이 섬나라를 탐험해 보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