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원인을 끄집어내다
생애 첫 심리 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받으러 가기 일주일 전부터 가면 할 이야기가 없을까 봐 처음 보는 남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의 문제점을 몇 가지 생각하고 그것을 세분화해서 어디까지 이야기해도 되는지 곰곰이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막상 상담 소파에 앉아서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상담사님께 말하며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상담은 정시에 시작해서 50분이 진행되고 미리 도착한 사람은 로비에서 대기하다가 시간을 맞춰 들어오라는 안내 문자를 여러 번 확인하고 상담실이 있는 건물에 15분 전에 도착해서 주차를 했다.
상담센터가 있는 그 건물은 긴 복도에 오피스텔 형식으로 똑같이 생긴 문이 나열된 모습이어서 내가 들어갈 상담실의 위치를 미리 알아둔 뒤 화장실을 들렀다가 다시 상담실 앞으로 갔다.
상담실 문 옆에는 작은 초인종이 달려 있었고 정시에 들어오라는 문자에 따라 정시에 맞춰 벨을 누르기로 하고 복도 끝 창가에 서서 기다렸다.
창가 풍경은 작은 동산이었는데 동네에 사는 주민들이 가벼운 산책 코스로 오르내릴 수 있게 갈색 멍석과 나무 데크로 오밀조밀 조성이 되어 있었고 데크 주변에는 무덤들이 차곡차곡 있었다.
정시가 되자마자 초인종을 눌렀더니 편안한 인상의 상담사님이 문을 열어 주셨다.
첫 상담은 자기소개와 비슷한 시간이었는데 몇 살이고, 직업이 뭐고, 무슨 학교를 나왔는지의 자기소개는 아니고 마음소개라고 표현하면 맞을 법한 시간이었다.
상담 전 몇 가지 기질 검사와 성격 검사 등을 했는데 사전 질문에 간단히 기재했던 나의 답변에 대해서 짤막하게 이야기하다가 상담사님은 "무슨 고민이 있으신 거예요?"라고 천천히, 그리고 곧바로 물으셨다.
정말 신기하게도 나는 그 한마디에 갑자기 툭 끊어졌다.
상담을 받으러 가기 전 내가 생각했던 나의 문제점, 고민, 이야기 주제 등등은 모두 날아가 버렸고, 누구에게도 진지하게 해 본 적 없던 나의 이야기가 눈물을 타고 줄줄 나왔다.
평범하게 열심히 살고 있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보이지만 나는 사실 평범하지 않은 소수에 속해 있는 사람이고 교회를 다니는 과정에서 청소년기부터 큰 혼란을 겪어 온 이야기.
교회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증오하고 배척하는 곳인데 나는 아닌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모르는 척하면서도 죄책감과 불안함, 혼란스러움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
청소년기 때 나 같은 사람은 교회에 가면 벌 받을 거라는 생각으로 교회 다니기 싫다고 부모님께 반항을 했지만 왜 가기 싫으냐는 질문에 답할 수 없어서 밖으로 나돌았던 이야기.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본인도 어쩔 수 없는 정체성으로 죄책감을 가지고 믿음을 유지해야 하는 과정에서 매우 혼란스러워 보인다고 상담사님은 말씀하셨고 그 말은 내가 살면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임을 깨달았다.
상담을 통해 "앞으로 이렇게 하세요!"라는 식의 명쾌한 해답 같은 것은 얻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첫 상담을 통해 이미 내 마음속에 가장 오래돼서 크게 곪아 있는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너무너무 오랫동안 모른 척하고 나조차도 알고 싶지 않아서 꽁꽁 숨겨 두었던 불안과 혼란이 어떤 것이었는지 깨닫고 끄집어냈기 때문에 오히려 나 자신에 대해 한 걸음 앞으로 명쾌해졌다.
나는 상담이라는 것이 과거 힘든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힘드셨겠어요~", "잘 견뎌내셨네요~" 등의 피드백을 받고 앞으로 새로운 결심을 이끌어내는 시간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의 경험과 과거는 단지 나를 처음 만난 상담사님께서 상담에 참고하실 수 있도록 간략히 하는 자기소개와 같은 것이었다.
상담사님은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고민해 보자고 하셨다.
남들에 비해 불안도가 좀 높은 것 같아서 불안을 주제로 상담을 진행하게 될 줄 알았는데 그 불안은 정말 빙산의 일각처럼 아주 일부만 나의 거스러미 뜯기로 보였던 것이 아닌지 추측해 본다.
적합한 시기에 하게 된 심리 상담으로 나에게 더 떳떳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아갈 수 있기를.
교회는 소수의 우리를 싫어하지만 나는 여전히 하나님께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