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대차게 말아먹은 발표가 하나 있다. 다른 연구실에게 내가 무슨 연구를 하는지 소개하고 피드백을 받는 발표자리였다. 내 생각에 그 발표의 가장 큰 잘못은 우리 교수님이 말을 너무 많이 했다는 점이다. 교수님의 의도는 "우리 학생이 의미있는 걸 하고 있는데 어우 이걸 왜 땋땋 설명을 못하지... 내가 끼어서 도와줘야겠다." 였던 것 같다. 하지만 교수님이 도와줬기 때문에 발표는 망했다. (대학원생이 교수님을 컨트롤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튼 대학원생 잘못이다.)
교수님은 이런 식으로 끼어들었다. 내 생각에는 X 데이터의 생물학적 의미까지 설명하면 너무 시간을 많이 할애할 것 같아서 살짝만 언급하고 넘어가려고 했었다.
나 : 다음 Y 데이터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교수님 : 잠깐 X 데이터는 실제 세포와 얼마나 유사한가요?
나 : 이렇고 저렇기 때문에 X는 실제 생명현상을 굉장히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고 저렇고를 설명하는데 5분은 더 소요했다. 교수님은 나 대신 데이터의 의의를 다 짚어 내려고 했다.
물론 연구의 중요성과 의의를 다 말하면 좋기는 하다. 그런데 시간도 부족하고 사람들 관심도 떨어지니까 얼른 발표 결론까지 가려고 했는데 자꾸 제동이 걸렸다. 그래서 교수님의 질문에 답하느라고 쓸데없는 말을 엄청 많이 하게 되어버렸다. 결국 원래 하려던 말은 다 못하고 결론까지 도달하지 못한 채 발표가 끝나버렸다.
교수님은 제한 시간 내에 이거저거 다 땋땋땋 설명하는데에 무리가 없다. 근데 나는 아니다. 나는 주어진 시간 내에 청중에게 메시지 하나만 제대로 전달하면 성공이다. 교수님의 페이스대로 발표를 진행하지 않는 내가 답답해서 교수님은 내 발표에 끼어들었다. 그래서 이도저도 아닌 발표가 되어버렸다.내 능력에 맞는 발표를 내 플로우대로 잘 준비했는데, 교수님이 다 헤집어놓았다.
그리고 누군가 옆에서 계속 첨언을 하면 발표자가 준비를 덜 한 것같고 전문적이지 않아보인다. 내 나름대로의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첨언한 부분을 넣지 않았기 때문에 준비를 안 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발표의 부족한 사항을 찝어내니까 공부를 덜하고 전문성이 없다고 느껴진다.운전자가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조수석에서 같이 핸들을 잡고 운전하고 있으면 당연히 운전석에 있는 사람은 초보운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운전을 잘 하는 사람이더라도 옆에서 핸들을 잡으면 밖에서 보기에는 운전연습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내가 예전에 했던 것처럼 다음주에 우리 연구실 학생이 다른 연구실에 본인 연구를 소개하는 발표를 한다. 교수님이 그 학생의 페이스를 흐트러뜨리지 말도록 내가 교수님을 제동해야겠다. 나는 발표를 조졌지만 다른 사람은 조지면 안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