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할 때 동승했으니까 실전은 혼자할게요.
과학자의 말하기. (3)
(22년 5월에 작성한 글을 기반으로 합니다.)
저번 이야기에 이어서.. 아무튼 톡은 내가 하려던 계획대로 밀어붙여야 한다. 교수님 또는 선배가 꼽사리를 끼더라도. 나는 나의 멘탈을 꽉 잡고 톡을 해야 한다. 톡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전문적이지 않아보이고. 내 페이스를 잃은 채 톡이 망해버린다. 그럼 교수님이 내 톡에 끼어들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다른 연구실은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우리 연구실의 랩미팅에서는 교수님이 가장 말을 많이 한다. 그니까 대부분의 경우 발표자가 60%. 교수님이 30% 정도 얘기한다. 발표자가 핸들을 잡고 랩미팅을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조수석에 있는 교수님이 중간중간에 끼어서 핸들을 같이 잡고 운전을 자주 하고 있다. 저번에도 겪은 일이지만 그렇게 되면 이 발표가 내 발표인지 교수님 발표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일 이후에는 랩미팅에서 발표하기 전에 교수님과 개별 디스커션을 꽤 오래한다.
개별 디스커션이라는 이름으로 미리 교수님께 발표를 미리 연습해본다. 그러면 내 발표에 더 추가하고 제거 해야할 내용이 잡히고.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는 게 좋을지 감이 잡힌다. 교수님의 피드백을 수용하면서 교수님의 입맛에 맞춰진 발표를 준비할 수 있다. 그리고 교수님의 조언에 따라/조언에도 불구하고 내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뭔지 확실히 가닥이 잡힌다. 개별 디스커션에서 미리 까이면 실제 미팅에서 똑같이 까여도 멘탈이 탄탄해진다. 미리 백신 맞은 것처럼 덜 아프다.상대방이 어느 시점에서 내 발표에 끼어들어올지 미리 공략법을 알고 있으면 자신감있게 대처가 가능하다. 무방비하게 공격받고 꼽사리 끼어드는 것보다 훨씬 안심이 된다.
교수님 입장에서도 개별 디스커션은 괜찮은 방식이다. 교수님이 개별 디스커션에서 학생한테 수정사항을 알려주면 랩미팅 때는 수정된 버전이 올라올 것이다. 그럼 개별 디스커션 때 보다는 덜 답답한 학생의 발표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교수님은 랩미팅에서 그 데이터를 두번째로 보게 된다. 그러면 처음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생각나지 않았던 피드백들도 생각난다.
따라서 개별 디스커션을 하고나면 다음 같은 상황이 생긴다.
교 : 이 부분은 이런 접근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나 : 다른 방식에 대한 내용은 뒤에 준비해두었으니까 제가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교 : 오케이 그럼 계속 진행하세요.
나 : 이 부분부터 말씀 드린 이유는 처음 접근할 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개별 디스커션을 통해서 이뤄야 하는 것은 2가지이다. 1) 교수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척한다. 2)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한다. 교수님의 "다른 방식"이 무엇인지 개별 디스커션을 통해 알고 있고. 그걸 발표에 넣었으니 1)은 만족한다. 그리고 내가 원래 말하려고 했던 "이런 접근"은 아무튼 넣었으니까 2)도 만족한다. 결론적으로는 이 두 가지를 통해서 교수님이 발표에 들어오려고 해도 쳐내야 한다.
이 글을 작성한지 2년이 지났는데도, 도대체 어떻게 해야 교수님이 발표에 덜 끼어들게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물론 다 맞는 말씀이고, 피와 살이 되는 말씀이긴 한데... 교수님과 같은 의견이면, 같은 의견이라서 격하게 동의하면서 말씀이 많아지시고, 교수님과 다른 의견이면, 그게 말이 되냐면서 격하게 분노하면서 말씀이 많아지신다. 교수님은 항상 랩미팅 때 왜 본인만 말하고, 다른 학생들은 왜 디스커션을 하지 않는지 불만섞인 질문을 토로한다. 교수님이 그렇게 말씀을 많이 하시니까 다른 학생들이 끼어들 틈이 없어서 디스커션을 못하고 있다... 라는 것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시는 것 같다. 교수님(들)은 말씀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