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가수 김수영 (2)
더 나은 사람
너에게 해줄 말이 있었는데 전해주질 못했어
이제는 너의 뒷모습만이 내게 가까워지나 봐
우리라는 말 이제는 점점 더 써 볼 일이 없는 것 같아
한때 사랑했던 그대에게 나 이제야 말해본다
나는 너를 사랑했었고 너는 내게 정말 좋은 사람
우리 사랑했던 것만큼 서로 잊고 살아가자
이제는 우리 아니지만 남이 되어 서로 잊혀지길 바랄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돼보자
언제부턴가 달라져가는 우리 마지막 모습일 것 같아
한때 사랑했던 우리의 모습을 잠시 동안만이라도 되돌아볼 수 있을까
우리 처음 만난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조금 더 달라졌을까
다른 사랑한다면 지금보다 천천히 다시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나는 너를 사랑했었고 너는 내게 정말 좋은 사람
우리 사랑했던 것만큼 서로 잊고 살아가자
이제는 우리 아니지만 남이 되어 서로 잊혀지길 바랄게
이게 네게 전해주는 마지막
나는 너를 사랑했었고 너는 내게 정말 좋은 사람
우리 사랑했던 것만큼 서로 잊고 살아가자
이제는 우리 아니지만 남이 되어 서로 잊혀지길 바랄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돼보자
<더 나은 사람>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김수영의 노래다. 물론, 김수영의 모든 노래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더 나은 사람>은 나에게 아직까지 올타임 넘버원이다. 이 노래는 헤어진 연인에게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말하며, 너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빈다. 둘은 서로에게 좋은 기억이었고, 그 좋은 기억을 서서히 잊고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헤어져서 너무 슬프다고 오열하지도 않고, 나와 헤어진 너를 저주하지도 않고, 다시 보고 싶다고 애원하지도 않는다. 잘 지내겠다는 말을 담담한 김수영의 목소리로 네게 전해준다.
이 노래를 가장 사랑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습지만, 그 첫번째 이유는 <더 나은 사람>이라는 제목때문이다. 가을방학의 <이름이 맘에 든다는 이유만으로>에서 이름만으로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제목만으로도 노래가 좋아질 수도 있다. 제목이 주는 깊은 공감때문에 이 노래를 좋아한다.
언제부턴가 나는 <더 나은 사람>이라는 문구를 계속 되뇌었다. 나는 항상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앞으로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입 안에서 맴도는 <더 나은 사람> 이라는 문구를 글감으로 작성했던 글도 메모장 한 켠에 쳐박혀있다. 그 글에 적어둔 문장과, 그리고 내가 끊임없이 되뇌이는 생각은 아래와 같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과연 좋은 사람이 나를 과연 좋아할 수 있을까? 게으르고, 과소비하고, 대책없고, 인성이 나쁘고, 집착하는, 등등의 항목들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사람을 만날 확률이 더 높아지리라 생각했다. 좋은 사람이 나를 좋아하기 위해서는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반면, 이 노래는 '너는 내게 정말 좋은 사람'이라던 상대와 헤어지고 난 후에 더 나은 사람이 되자고 말한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서, 좋은 사람과 사랑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의 순서로, 좋은 사람과 사랑을 마무리한 이후에, 더 나은 사람이 된다. 화자는 어떻게 이런 반대 순서의 마음이 들게 되었을까. 노래의 화자에 이입하여, 화자가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지 한 번 상상해봤다.
슬픔에 빠져 폐인처럼 지내지 말고 잘 지내면 좋겠어. 그렇게 잘 지내면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더 나은 사랑을 하면 지금 이 헤어짐을 성숙의 기회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사랑을 통해서 많이 배웠어. 너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맞는 사람은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널 미워하고 싶지는 않아. 너가 잘 되면 좋겠고, 너도 더 나은 사람이 되면 좋겠어. 나에게 이런 사랑을 알려줘서 고마워. 앞으로 우리, 아 이제 우리도 아니네. 서로를 기억하는 대신에 추억으로 보내주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보자.
두 번째 이유는 이 이별이 아무렇지 않은 듯이 표현하는 담담한 목소리 레이어 아래에 깔리는 감정 때문이다. 김수영이 이 노래를 작사작곡하거나, 가창할 때에 어떤 마음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내가 추측하기로, 그녀는 슬픔을 억누르는 게 아닌, 상대를 향한 정리를 한 이후에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감정을 담았을 것 같다. 나는 이 감정과는 정반대로 이 노래를 듣는다. 나는 담담한 목소리 아래에 새어나오지도 못하게 슬픔을 눌러 담았다고 느껴진다.
카운트는 해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가장 많이 들은 김수영 노래는 <더 나은 사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이 노래를 가장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를 많이 듣지는 않았다. 왜냐면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듣다보면 금방 감정적으로 슬픔에 젖어버리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아서, 서너번 정도 듣다가 다른 노래로 갈아탄다. 슬픔에 빠져 침잠해 있을 때에나 이 노래를 반복재생하고 펑펑 울었다.
감사하게도 콘서트에서 <더 나은 사람> 라이브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노래의 전주가 흘러나올 때,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 노래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어서 기쁜 마음 때문도 있었다. 그렇지만, 노래를 들으며 항상 느꼈던 그 벅찬 슬픈 감정이 올라왔다. 전에는 대중교통, 방 안, 오피스같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나 혼자만 작은 이어폰으로 이 노래를 들었다. 하지만 콘서트 장에서는 5미터 앞에 그토록 바라던 가수가 보이고. 악기와 목소리의 진동이 고막 뿐 아니라 몸 전체로 느껴지고. 나는 음절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화자의 감정을 떠올린다. 감정에 이입하게 만드는 공연장의 분위기 때문에 <더 나은 사람>의 슬픔이 더 와닿았다. 콘서트 중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었다.
이 노래를 들으며 떠오른 생각이 많은데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지 않아서 그냥 토막토막 적어야겠다.
<더 나은 사람>의 최근 라이브 영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워낙에 데뷔 초반에 발표했던 곡이기도 하고, 노래가 잔잔한 이별곡이라서 페스티벌에서도 잘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6년 전 음원과 라이브에 있는, 과거의 김수영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현재의 내가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25년에 이 노래를 듣는 나는 24년에 이 노래를 들었던 나와, 23년, 22년의 나를 모두 회상한다. 그 때의 나와, 그 때의 김수영은 어떤 마음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미래의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다면 나에게 또 다른, 좋은 사람과 사랑할 기회가 오겠지. 미래의 너도 언젠가 <더 나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렇다면 현재보다 <더 나은 사람> 두 명이 다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글에 적어두었듯이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 <오렌지와 빵칼> 에서는 이 문장을 완전히 뒤집는 스토리를 선보인다. '좋은 사람'과 '나은 사람'은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층위의 개념이라고 이야기한다.
구름 - <더 나은 사람> 도 좋아한다. 이 노래는 좋은 사람과 사랑을 하는 동안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좋은 사람과의 사랑을 마무리한 후에,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김수영과는 약간 핀트가 다르다. 헤어지기 전에 더 나은 사람이 된다니, 이 편이 더 바람직하긴 하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문구를 얼마나 많이 되뇌였으면, 심지어 이 글을 업로드하는 폴더 이름도 더 나은 홍성랩노트 되기 이다. 이 폴더 이름은 이 글을 작성하기 한참 전부터 만들어놓은 폴더인데 말이다.
덧.
<더 나은 사람> 은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가 아니다. 내 생각에 가장 많이 들은 노래는 <비틀비틀> 일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