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낭비

by 홍화

또 투자, 투자, 투자. 또 돈, 돈

이런 시대에 '낭비'만큼 참 죄책감이 따라붙는 말이 없다.

쓸데없이 돈을 썼거나, 시간을 흘려보냈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탓한다.

조금만 더 아꼈더라면, 조금만 더 효율적이었더라면.

그런 후회가 입안에 남아 오래 맴돌 때가 있다.


꼭 필요한 일만 하며 사는 하루는 효율적이지만, 숨이 막힌다.

계획에 없는 커피 한 잔, 충동적으로 사버린 아기자기한 스티커 한 묶음.

모든 쓸모없는 지출 속에서 오히려 나는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일들이, 하루를 지탱하는 작은 숨결이 된다.


낭비는 여유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완벽히 합리적으로 소비만을 하고 살 수는 없다.

약간의 낭비는 삶을 부드럽게 만드는 틈이다.

그 틈이 있어야 바람이 통하고, 그 바람이 불어야 마음이 마르지 않는다.


어쩌면 낭비는 '현재'를 느끼게 해주는 가장 확실한 방식이다.

미래를 위해 모든 걸 미루며 사는 사람은, 결국 오늘을 잃는다.

조금의 낭비는 지금을 붙잡는 일이다.

오늘의 나에게 커피 한잔을, 시간을, 웃음을 건네는 일.


사랑도, 웃음도, 여행도 다 따지고 보면 낭비다.

그래서 기계들에게는 사랑도, 여행도 필요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런 낭비들이 쌓여 오늘을 버티게 만든다.

낭비가 없으면 삶은 단단하지만, 건조해진다.


물론 무절제한 낭비가 좋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흘러나오는 사소한 낭비들.

그 따뜻한 허점이 우리가 인간으로 남는 지점이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무의미하게 보낸 시간이나 이미 사버린 커피 한 잔을

굳이 미워하지 않아보려 한다.

그게 나를 조금은 살아 있게 만드는 여백이라면

완벽히 계산된 기계 같은 하루보다는, 조금 비효율적인 하루가 더 인간답다.


나에게 낭비란, 인간으로 남는 증거다.

낭비는 우리가 아직도 느끼고 흔들릴 줄 안다는 증거이다.


낭비하지 말라, 대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잘 낭비하라.


약간의 틈,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도.

조금은 의미 있게. 조금 더 잘 낭비하게.

한잔의 커피도, 흘러가는 시간도,

조금 더 맛있게, 조금 더 따뜻하게 낭비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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