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급 완료
“이제 (올라) 가야지~ 아이 다음 달엔 넘어갑시다아~^^”
꽉 끼는 빨간 수모에 눈꼬리가 올라가 매서운 인상이 된 중급반 선생님이 나긋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중급반 머리에 있는 5인의 회원들은 그에 반해 최대한 눈썹과 눈꼬리를 내려 불쌍함 내지는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도리도리 “아녜요”라고 말한다. 이 ‘아니요’의 답은 우리 유교 사회의 미덕이라 불리는 겸손함이 결코 아니다. 이전에도 썼지만 우리 센터의 최종반인 상급반의 운동량이 두렵기 때문이다. 중급반에서 슬쩍슬쩍 옆반을 엿보노라면 ‘도대체 저 사람들은 왜 계속 수영중이야?’ 생각만 떠오른다. 도대체가 쉬는 시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초급반에서 중급반으로 대거 진급을 하며, 중급반은 과포화 상태가 되었다. 더 이상 도리도리하기엔 염치가 없고 눈치가 보인다. 그리하여 중급반 머리 5인은 그 바로 다음 달 진급하여 상급반 꼬리가 되었다. 23년 1월에 수영을 시작하여 24년 7월부터 상급반이 되었으니, 내가 수영을 시작한 지 딱 1년 6개월을 채운 때이다. 1년 6개월 동안 거의 빠짐없이 주 5~6회 수영을 했다. 스스로 느끼기엔 조금 늦은 진급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거의 빠짐없이 매일 10~15분을 지각을 했고, 물을 무서워했었고, 운동신경이 부족하고, 게다가 중급반 머리로 살고 싶어 진급하란 소리에도 계속 도리도리를 했으니 이만하면 딱 적당한 때인 것도 같다.
상급반에 도달하니 정말 봐왔던 대로 운동량이 어마어마했다. 중급반의 운동량과는 가히 비교불가였다. 내내 돌고, 돌고, 돌고, 또 돌았다. 꼬리로 돌게 되면 뒤에서 쫓아오지 않아 훨씬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50m를 왕복하는 n바퀴를 다녀오라는 미션을 부여받을 때가 있다. 이런 때에는 머리가 엄청난 속도로 쫓아와 자칫하면 꼬리가 잡혀버린다. 꼼짝없이 다시 꼬리순서가 돌아올 때까지 구석에 붙어 기다린다. 그리고 다시 만난 꼬리들과 눈이 마주치면 “뭐예요 뭐예요?” 하고 같이 헛웃음을 지어 보인다. 푸핫.
상급반에 진급한 이후엔 한동안 수영이 재미없었다. 강습날에는 수영장에 가는 발걸음이 침울하기까지 했다. 어마어마한 운동량에 압도되고, 뒤쳐지는 느낌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역시 약. 뭐든지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제껏 수영을 해온 경험상 이런 쭈구리 시절 뒤엔 반드시 도약의 시기가 온다. 초급반 시절을 돌이켜본다. 당시엔 눈물을 훔쳤지만 그때가 제일 다이내믹하고 재밌는 시기였다. 그래서 침울함도 즐겨보기로 한다.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므로 그냥 한껏 침울해본다.
상급반으로 진급해서 좋은 점은 무수히 많았다. 일단 자랑거리가 하나 또 생겼다는 것. 가족들에게 말하면 다들 우와~해준다. 엄마 아빠는 심지어 진급 축하금도 줬다. 새 수영복을 사라고 하셨다. 야호. 그리고, 상급반 언니들과 인사를 할 수 있는 점이 좋다. 수영장 고인 물이 되면 아무래도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생긴다. 내적 친밀감은 가득인데 같은 반도 아니고 접점이 없어 인사할 명분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명분이 생긴 것이다. 이제 공식적으로 아는 체 할 수 있다. 아, 그렇다고 대화를 걸거나 그렇진 않다. 그냥 내적 친밀감을 더 이상 맘속으로만 간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기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