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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Jun 15. 2024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



오늘의 제목은 초급반 시절 강사님의 수업 마무리 멘트.

“남보다 못하는 것 같아도,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이렇게 네 가지 영법을 모두 초급반에서 배우고 진급하는 우리 센터의 시스템에선, 단연코 초급반 내의 진도 격차가 어마어마하다. 같은 초급반이어도 누군가는 이제 막 킥판을 잡고 어푸어푸하지만, 누군가는 접영을 배우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초급반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앞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언제쯤...’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게 강사님 눈에 보였나 보다. 초급반 시절은 실력이 어마어마하게 느는 때였지만, 동시에 그만큼 당시의 실력이 꽝이란 반증이었다. 나는 초급반 시절 누구보다 느린 진도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나마 내가 핑계를 댈 수 있는 사실은 내가 한 번도 수영을 배워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남들보다 실력이 더디게 발전한다고 해도 ‘난 지금 처음 배우는 건데 못할 수도 있지!’ 하고 쿨하게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쿨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나보다 늦게 등록한 사람들이 벌써 나랑 같거나 혹은 나보다 더 빠르게 진도 나가게 되었다. 이때 내가 느꼈던 소외감과 좌절감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남들이 나보다 빨라야 하는 이유를 찾아내기 바빴다. 저분은 아마 오후에도 수영하러 오실지도 몰라. 물을 애초에 별로 안 무서워했는지도 몰라. 저분은 예전에 수영을 배워본 적이 있을 거야. 나는 30년 동안 수영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고 물도 무서워했어. 그러니까 이 정도도 훌륭한 거 아니야?


하지만 머리 한편엔 다른 사람이 나를 보며 ‘어머 저 사람은 3개월을 다녔는데도 아직도 킥판 잡고 자유형 하네?’라고 안타깝게 생각할까 봐 서러운 마음이 컸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대도 말이다. 스스로를 비난해야만 마음이 풀리던 시기였을까? 사실 나도 다른 이의 수영을 보며 안타까워한 순간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수영을 시작하셨던 아주머니가 계셨다. 나도 무척이나 운동신경이 없고 진도가 느렸지만 아주머니는 정말 더디셨다. 초반에 둘이 같이 킥판 없이 자유형 하는 방법에 대해서 대화 나눴던 때가 있었다. 킥판에서 손 떼기 너무 무섭지 않아요? 맞아요. 너무 무서워요. 호흡하는 것도 모르겠어요. 물을 엄청 먹어요. 그러나 그 이후로 계속해서 격차가 벌어졌다. 내가 초급반 1번 주자가 될 때까지 아주머니는 여전히 킥판 잡고 자유형이었던 만큼.


나는 아주머니를 보며 아주머니가 정말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절망스러우시겠지만 부디 포기하지 말고 센터에 나와주시길 바랐다. 하다 보면 다 된다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으면 노킥판 자유형 그까짓 거 언젠가는 무조건 할 수 있는 거라고 여러 번 텔레파시를 보냈다.


하지만 이렇게 내 딴엔 좋은 마음일지라도 이런 시선을 누군가로부터 내가 받는다고 생각하면 그건 다른 얘기였다. 나는 응원을 받아야 하는 내 처지가 서러웠다. 동정받고 싶지도 않고, 안타깝게 여겨지고 싶지도 않았다. (써놓고 보니 나 혹시 성격파탄자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당시엔 정말 그랬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모나 진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면 여유가 생길 틈도 없다.



아주머니는 그 후로도 몇 개월 강습을 다니셨고, 어느 순간엔 강습에 나오시질 않았다. 본인이 너무 느린 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대신에 개인 강습으로 바꾸셨다. 어느 날 옆레인에서 개인강습을 받고 계신 아주머니를 보았다. 노킥판 자유형은 물론이고, 평영을 배우고 계셨다. 마침내 아주머니는 승리하신 것이다.


아마 아주머니가 남들과 비교해 좌절감에만 젖어계셨다면 지금 평영을 하진 못하셨을 거다. 아주머니는 좌절감을 느낄지언정 계속 정진하셨다. 나는 어떤 분야에서 뒤처진다는 좌절감을 느낄 때 아주머니를 떠올린다. 그리고 아주머니에게 보냈던 내 텔레파시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남들이 내게 보내주는 마음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이 마음이 단지 동정이나 안타까움이 아니라는 걸 안다. 동정과 안타까움이 섞여있을지언정 본질은 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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