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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재 Nov 11. 2024

5. 나는 당신을 영원히 보고 싶습니다 (완결)

[말세 5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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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hhhongjj/223613275303










우리의 인생은 꽃병에 꽂힌 꽃과 같다. 생기있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죽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 베드로전서 1:2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 야고보서 4:14








우리는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와중에 때로는 허망함을 느끼며, 삶의 본질적인 물음과 맞닥뜨리게 된다.



-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

- 우리는 왜 살아야 할까?

-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향해가는 것일까?

- 이 길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것일까?



그러나 이러한 마음의 소리들은 세상의 불필요한 가십거리와 소음에 파묻혀 마음속 저 깊은 곳으로 금세 다시 사라진다. 우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피곤한 몸뚱어리를 이끌고 다시 출근길에 나선다.


(우리는 난무하는 불필요한 소식들 속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인간은 오직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섹스하고 재테크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그것만이 인생의 전부라면 인간의 존엄성은 짐승의 수준으로 전락한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요한일서2:16]")





공부해야지. 대학 가야지. 유학 가야지. 취직해야지. 돈 벌고 결혼하고 자식 낳아야지.

저축해야지. 집 사야지. 술 마셔야지. 맛집 가야지. 콘서트 가야지. 재테크 해야지. 주식 투자해야지. 게임 해야지. 여행 가야지...



우린 그렇게 고만고만한 일들 속에 파묻혀 고만고만한 인생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간다.



그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우리 모두는 반드시 지나간 삶에 대한 심판을 마주해야만 한다.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죽기 전에 신에 대한 24가지 물음을 남겼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잘나가는 대기업 회장일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반드시 삶의 본질적인 물음 앞에 직면한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죽음 이후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가?)


https://blog.naver.com/akusa1214/221387973961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 시편90:10






오늘의 마지막 포스팅에서는 내가 만난 하나님에 대한 짤막한 간증과, 그리고 복음이란 무엇인지,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간략히 논의하고자 한다.





나는 당신이 꼭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원한다.









5-1. 내가 예수님을 전하며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삶의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오열했고 가슴 깊숙한 곳이 분명 아렸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외면할 수 없었던 건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 자체가 아니라, 그들을 바라볼 때마다 내 안에서 분명히 느껴지는 이 진실된 연민의 감정이었다. 도무지 도망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헤쳐나가야 했다. 분명 헤쳐나갈 길은 있다고 믿었다.

- <THE FUNERAL CODE: 내가 유디티가 된 이유> 중에서




...결국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사람일 뿐이다. 내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은, 단순히 말하자면 죽어가는 사람을 다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일이다. 사람다움이란 무엇인지, 어떠한 방식으로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여전히 막연하다. ...

그러나 그 어떤 길일지라도 그것이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되면,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것을 향해 과감히 투신할 것이다. 선택한 그 길 위에서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탐구하고 최선을 다해 스스로 행복해지려 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를 구원하는 그 방식 그대로 타인을 구원할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타인을 구원하는 것만이 자신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기도 한 까닭이다.

- <THE FUNERAL CODE: 내가 유디티가 된 이유> 중에서








1) 지옥주(Hell Week)


우리 어머니는 내가 스물네 살이던 2014년, 4년여의 말기 암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상을 마친 후 나흘 뒤, 아버지 또한 어머니가 드시던 항암 약을 소주에 가득 타 마시고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셨다.



나는 UDT라는 해군 특수부대 출신이다. 그 훈련 중 가장 혹독한 훈련으로 악명 높은 '지옥주'라는 훈련이 있다. 전체 훈련 기간 중 이 지옥주 기간에 가장 많은 훈련생들이 견디지 못하고 퇴교한다.



지옥주는 120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는 훈련이다.




공교롭게도 나의 지옥주 기간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일 정확히 그 사이였다. 어머니의 기일은 그 해의 일요일, 지옥주는 월~금요일, 아버지의 기일은 토요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아무리 혹독한 훈련 일지라도 두 번의 상을 같은 빈소에서 연달아 치러야만 했던 2014년, 그 인생 최악의 일주일보다 더 지옥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그 마음으로 고된 훈련을 견뎌낼 수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의 기일,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있는 지옥주 날짜. 이 기묘한 우연의 일치로 인해 나는 힘과 용기를 얻어 UDT를 수료했고, 전역해서 관련한 책을 썼고, 여러 방랑의 시간을 거쳐 갑자기 예수님을 만나고 거듭나서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영원 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섭리하심이리라는 사실은 나중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거듭난 후 비로소 모든 퍼즐이 맞춰지면서 깨달았다.






2)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못난 아버지로 인해 평생토록 몸 고생, 마음 고생을 많이 하셨다. 아버지는 폭력적인 술꾼에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백수였고 나중에는 다른 여자와 바람까지 피우셨다. 어머니는 '우리 남편이 오늘은 집에 들어올까요?' 하시며 점쟁이도 자주 찾아다니셨다. 나중에는 마음이 조금 아픈 나의 형과 함께 사이비 종교인 신천지에도 다니셨다.



그때 난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으며, 모든 종교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을 믿어도 자기가 좋으면 상관없는 것 아니냐고, 독실한 크리스천이셨던 나의 은사님께 여쭈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단은 다를 이에 끝 단 자를 쓴단다. 아무리 열심히 믿어도 끝에 가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이단인 거야."






은사님의 말을 듣고 나는 평생 개처럼 고생만 했던 어머니가 나중에 천국에 못 가게 될까 봐 몹시 슬펐다. 하나님도 천국도 지옥도 다 존재하지 않는 헛소리라면 이 땅에서 뭘 믿어도 상관없겠지만, 만일 그게 다 사실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어머니는 그대로 지옥행이기 때문이었다. 그 길로 서점에 들러 신천지 비판 서적을 사서 읽고는 어머니께 던져주며 가슴 찢어지게 울부짖었던 그때는 내가 스무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그 순간 기적적으로 세뇌에서 깨어나셔서 신천지를 나와 예수님을 제대로 믿게 됐고, 교회에서 찬양단 활동도 하시며 여생을 하나님만 섬기다 소천하셨다.



그러한 어머니가 암 투병 끝에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남긴 유언이 "지재야, 예수님 믿어야 된다."였다.



그 무렵 나는 그 나이대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버거운 삶의 무게로 지쳐있었다. 병든 어머니 곁을 떠날 수 없어 스물다섯이 다 되도록 남들 다 가는 군대도 못 가고 있었다. 학교는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군 입대 자동 연기를 위해 간신히 학적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일단 돈을 벌어야 했다. 학생들을 가르쳤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다. 스트레스는 술담배로 풀었다. 그때 내 인생은 모든 것이 멈춰있었다. 미래는 보이지 않아 암담했고 삶은 지긋지긋했다. 신이 정말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이 모양 이 꼴인지 정말 따져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 앞에서 '예수는 당신이나 많이 믿으라' 하고 코웃음칠 수밖에 없었던 내가, 지금 이렇게 예수님을 전하고 있는 것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3) 두 번의 장례식

어머니가 투병하던 그 시절, 나는 고난의 가시밭길만 걸어오셨던 어머니가 저세상 가시는 길만은 누구보다 화려하게 가셨으면 하는 마음을 오랫동안 품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거나 친절하게 대했던 것은, 물론 대부분 진심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훗날 나의 이 사람들이 어머니의 빈소에서 그분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진심으로 배웅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겠다. 그것이 당시 내가 할 수 있던 유일한 자식 된 도리였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2014년, 암 말기로 4년여를 투병하신 후 연명치료 끝에 임종하셨을 때 주제넘게도 그 병원 장례식장의 가장 큰 특실로 빈소를 잡았다. 그리고 SNS에 부고장을 올렸다. 부조는 필요 없으니 나와 티끌만 한 인연이라도 맺었던 사람은 모두 와서 마음껏 먹고 마시며, 다만 진심으로 한 여인의 죽음을 슬퍼해달라고.



당시 아무도 없는 빈소는 광활한 우주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곳을 과연 채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됐을까?

저 광활한 빈소는 말 그대로 발 디딜 틈도 없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때 내 인생은 영원히 바뀌었다.



당시 정말 잊지 못할 장면 중 하나는 부조금을 셀 때였다. 경황없는 와중에도 유족들은 빈소의 뒷방에서 매일 그날의 부조금을 정산하고 장부에 기록한다. 그때 이름도 적히지 않은 채로,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몇 장 달랑 들어있던 봉투를 열었을 때 나는 정말이지 눈물이 앞을 가려 무너져내릴 지경이었다. 차라리 그 사람이 빳빳한 새 돈으로 한 천만 원쯤 넣었다면 어떻게든 벌어서 갚겠다고 다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 꼬깃꼬깃한 지폐에 담긴 마음만큼은 내가 갚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그때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어느 학생이, 혹은 가난한 누군가가 가진 몇 푼의 돈을 다 털어 넣은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빈소 바깥에 오와 열을 맞추어 서 있었고, 그중 누군가 한 명이 앞에 나와서 장례식장에서 지켜야 할 예절들을 아이들에게 교육하고 있던 장면도 생각난다. 나는 학생회장 출신이었기에, 문상객들 중 상당수는 아직 교복도 벗지 못한 나의 까까머리 후배들이었다. 이러한 장례식장에서의 장면들은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할 만큼 내 마음속에 영원히 각인됐다. 그래서 나는 훗날 입대 전에 머무를 집이 없어 고시원을 전전했을 때도, 입대해서 세상과 단절된 채 UDT 훈련을 받을 때도, 그날 장례식장에 방문했던 사람들의 방명록만큼은 사과박스에 담아서 항상 간직하고 다녔다.



(나는 아래 성경 말씀을 알지도 못했던 그때, 이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먼저 삶으로 배웠다.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21:2-4])




어머니의 장례식 기간에도 정신 못 차리고 술에 잔뜩 취해 온 방안에 똥칠을 하시던 아버지를 보며, 나는 아버지가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생각만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며칠 뒤 정말로 음독자살하셨다. 어머니의 상을 마친 나흘 뒤에 그 똑같은 특실 빈소에서 한 번의 상을 더 치러야만 했다. 그때도 똑같은 얼굴들이 똑같이 찾아와서 똑같이 울어주었다.



사실 나는 그때 죽었어야 했는데, 사람들이 보내준 마음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아났다. 그때부터 내 인생은 거저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온 세상에 빚진 자라고 생각했다. 왜 나만 이렇게 많은 것을 받으며 자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반드시 사는가 싶게 되살아나서 내가 받은 것들을 어떻게든 보답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만 마음에 가득했다.






4) 자기 구원

그 마음으로 나는 삼천리를 걸어서 특수부대에 입대했고, 전역해서 책을 출간했고, 피아노를 배우고 영화도 공부했다. 읽고 쓰고 사람을 만나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그 모든 행위의 이면에는 그것을 통해서 일단 죽어가던 나부터 스스로 살아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나는 어떤 식으로든 이 아픔을 스스로 떨치고 일어서고 싶었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내가 생명을 얻고 살아나면, 그 방식 그대로 나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녀석을 살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 마루타가 되어 죽어가던 나를 살릴 수 있을 만한 것들을 나 자신에게 닥치는 대로 실험했다. 마음이 가난한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구원할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이 내가 오래도록 품고 있던 물음이자 숙제였다.


(▲ 배낭 메고 삼천리(1,200km)를 걸어서 특수부대에 입대했던 당시의 모습들.

이것은 단지 고행을 위한 고행을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 위함이었다.

그것을 통해 내가 살아날 수 있었다면 나는 힘들어하는 모두에게 삼천리를 걸으라며 '삼천리 전도사'가 됐을 것이다. 특수부대를 통해 내가 살아났다면 나는 모두에게 '특수부대 전도사'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경험해보고 나니 그런 육체적 행함으로는 결코 생명을 얻을 수 없음을 알았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로마서8:8]

"이런 것들은, 꾸며낸 경건과 겸손과 몸을 학대하는 데는 지혜를 나타내 보이지만,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는 데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골로새서2:23])





그러나 나는 어떤 방법으로도 나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는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계획이 다 틀어지면서 영화를 배우거나 사업을 시도하는 등 여러 방황과 시행착오를 거쳤고, 경제적으로도 궁지에 몰렸다. 중증의 알코올 의존증과 밤마다 찾아오는 정신적 패닉은 날이 갈수록 정도가 심해졌다. 나는 내 안에 가지고 있던 물음에 대해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전에 내가 먼저 물음에 파묻혀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 답을 구하고자 세상을 향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써내려갔던 책이 <내가 유디티가 된 이유>라는 책이었다.

(<THE FUNERAL CODE: 내가 유디티가 된 이유> 책의 마지막 문장. 내가 평생을 가슴에 품어왔던 단 하나의 문장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5:3] 성경을 처음 읽으며 이 말씀을 발견했을 때 놀라 자빠질 뻔했다. 기도하듯 써내려간 책에 대한 명확한 응답을 성경에서 실제로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





출판사업자를 등록해서 책을 출간했지만 이미 카드 돌려막기까지 하며 무너져버린 경제적 상황은 어떻게 해도 쉽게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었다. 나는 모든 마음을 내려놓고, 차압 딱지가 붙을 각오를 하며 무작정 강원도 동해바다로 떠났다. 약 100일 정도의 시간을 바닷가에서 노숙하거나 혹은 고시원, 다이빙샵 등 여기저기 전전하면서 미래를 구상하고 나름의 재기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구상한 모든 계획을 실행하기에 앞서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가장 먼저 그 강원도 설악산의 한 내과 병원에서 코로나 백신부터 맞았던 것이었다. 그때가 2022년도 1월 경으로, 백신패스의 가장 끝물이었다.



그러고 서울로 돌아와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나는 우연히 #백신부작용 해시태그를 누르게 됐고, 그 순간부터 생각지도 못하게 순식간에 오늘 여기 이 순간까지 흘러오게 됐던 것이다. 아래 내용은 그때 단 열흘 정도 만에 깨닫게 된 것이었다.



https://blog.naver.com/hhhongjj/223609421901

https://blog.naver.com/hhhongjj/222654218023





그렇게 나는 백신 뿐만 아니라, 의미 없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줄 알았던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한통속으로 하나님과 성경을 가리기 위해 존재함을 단번에 깨달았다. 진리가 아니면 이렇게 철저히 가리려고 합심해서 애쓸 필요가 있을까? 내가 그간 믿어왔던 모든 가치관이 완전히 박살나고 폐허가 된 그 지점에서 결국 성경만이 유일한 진리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성경 한 구절 펼치기도 전에 그 안에 적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믿고 따르겠다는 진실된 고백부터 흘러나왔다.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도 모르면서도 일단 그 앞에 마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나는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



(빨간약을 먹고 진짜 세상의 진실을 목격한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는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참혹한 현실 앞에서 구토하고 실신했다.

그런데 그 매트릭스마저도 영화가 아니라 다큐라는 것을 발견한 나는 어땠을까?

내가 살던 세계의 껍질이 완전히 깨지던 충격으로 몸서리치던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5) 거듭남

온 세상이 거짓임을 막 깨닫기는 했으나 막상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나는

'이 세상에 옳은 것은 하나님뿐이다. 하나님에게서 시선을 떼면 난 즉시 죽는다.' 이 마음 하나로 일단 길을 더듬어 나서기 시작했다.





누구는 이래야 구원을 받고 누구는 저래야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 진리는 하나인데 그 진리를 인정한다는 사람들조차 말이 제각각이라 혼란스러웠다. 난 누구의 말도 아닌 진리 그 자체를 따르고 싶을 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에게 단기간에 꼭 필요한 사람들을 놀라울 정도로 절묘하게 만나게 하셨고, 꼭 필요한 책을 읽게 하셨고, 나중에는 귀한 모임에서 귀한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때에 맞게 동역자로 붙여주셨다.



언젠가 내 안에 나도 모르는 새에 들어와 있던 이것이 바로 생명이라는 것임을 알게 됐던 순간, 십자가에 못 박히던 그분의 머릿속에 다른 많은 이들의 이름과 더불어 나의 이름도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던 순간, 그리고 나의 시민권은 이 땅이 아닌 천국에 있으며 나는 그분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게 됐던 바로 그 순간, 나는 나의 작고 어두운 골방에 엎어져서 밤을 지새워 애곡했다. 용암 같은 뜨거운 눈물이 몇 날 며칠을 쉬지도 않고 터져나왔다.



내 삶을 다녀갔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쉴 새 없는 눈물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를 부조함에 넣어야만 했던 사람도, 교복 입고 도열했던 까까머리 학생들도 떠올랐다. 받은 것을 갚기 위해 여태껏 살았는데, 너무 귀해 갚지 못할 것을 다시금 받아버린 나는 하나님께 ‘왜 나입니까?’ 하고 물었다. 나 대신 그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살려달라고 절규하듯 처절하게 중보했다.



상처를 주고받던 사람들의 얼굴도 스쳐갔다. 그 얼굴 하나하나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으면 다음 얼굴로 넘어갈 수 없었다. 어떤 얼굴 앞에서는 유독 오래 머물렀다. 그들을 위해서도 용서와 진심 어린 중보의 기도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작은 골방에서 한 생명이 새롭게 태어나던 바로 그 순간, 나는 세상의 쓰레기이자 만물의 찌꺼기처럼 되었고, 사형수처럼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 되었으며, 세계와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됐다.



거듭나서 구원의 기쁨에 사로잡혀야 할 때, 오히려 왜 나입니까? 하고 반문하며 쓰러져 애곡하지 않을 수 없던 이 기구한 인생. 그런데 2천년 전 죽은 나사로를 향해 비통하게 눈물 흘리며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시던 그 분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나의 이 모든 전후사정을 이미 처음부터 다 알고 계셨다. 모든 것을 아시기에 내가 존재하기도 전에 나의 모든 죄를 이미 다 용서해놓으셨고, 내가 그 분의 때에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계셨다.



그렇게 그분의 때가 비로소 도래했던 그 작은 골방에서 그분이 찾으시던 한 영혼이 애통하게 부르짖던 바로 그 순간, 만왕의 왕께서는 친히 그 공간으로 찾아와주셨다. 그리고 나사로를 살리시던 그때와 동일한 마음으로 나라는 인생을 긍휼히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겠느냐?" 그분의 임재를 깨닫고 완전히 엎드러진 나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는 베드로의 고백이 절로 나오면서, 나의 모든 진심을 그분께 온전히 내어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2:20]

이 말씀은 그 작은 골방에서 엎드려 애곡하던 바로 그 순간 내 안에서 생생하게 성취됐다.

이것은 머리가 아닌 영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가장 신적이고 위대한 방법으로 나라는 아무것도 아닌 한 인생의 진심을 받아내셨다. 그 순간, 한 영혼을 이토록 완벽하게 다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는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널리 널리 울려 퍼졌으리라.



이것이 내가 그분의 백성이 되고, 그분은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셨던 어느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그날부터 완전히 다른 피조물이 되어 새 생명을 얻은 나는 이제는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에 누워서 세상이 알 수 없는 평안 속에서 이 글을 적고 있다.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 요한계시록21:4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평안과 기쁨 속에서 오늘의 나는 살아가고 있다. 이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그 분은 2천 년 전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던 것이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서 새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해주었던 결정적인 글들을 아래 소개한다.



하나하나 꼭 집중해서 읽어보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그러자 아그립바 왕이 바울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짧은 말로 나를 설복해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고 하는가!" /
바울이 대답하였다. "짧거나 길거나 간에, 나는 임금님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결박을 당한 것 외에는, 꼭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빕니다."

-사도행전26:29







거듭남 시리즈


1. 위대한 프로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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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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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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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잠 못 이루는 신부에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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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잠 못 이루는 신부에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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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잠 못 이루는 신부에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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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잠 못 이루는 신부에게 4부 (하나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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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우리의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을 할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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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모두 필독!! 인류 역사의 가장 위대하고 신비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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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휴거 신부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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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사도 바울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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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종교와 진리, 그리고 복음


믿지 않던 시절, 어머니가 다니시던 교회의 목사님이 심방(일종의 가정방문)을 오신 적이 있었다.

나는 목사님께 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신이 정말 있으면 왜 나의 어머니는 고통 속에 사나요? 왜 세상은 이 모양 이 꼴인가요?"



'존재하지도 않는 신을 너는 어떻게 그렇게 증오할 수 있니?' 라고 말씀하셨다면 내 입을 보란듯이 닫게 할 수 있으셨을텐데, 목사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그저 여유롭게 내 반발을 듣고만 계셨다.



거듭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분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때가 있으리란 것을 알고 겸손하게 그 때를 기다리셨던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 <신은 죽지 않았다> 중에서



그 당시 나는 인생의 답을 찾으려 많은 것을 시도해봤지만 왠지 모르게 단 하나, 성경만큼은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다. 성경은 어려운 것, 하나님은 잔인한 존재, 신앙은 나약함의 증거, 교회는 위선적인 집단, 이렇게 세상 마귀가 진리의 주변에 잔뜩 뿌려둔 연막으로 완전히 속아서 살았던 것이다.



또한 한 번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이뤄놓으셨는지 자세히 들어보거나 스스로 탐구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들었는데 나 스스로 튕겨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예전의 나처럼 믿음 믿음 하고 많이 들어는 봤지만 구체적으로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를 것 같아서, 이것을 아주 간략하게 적어보고자 한다.



나는 오늘 이 글을 읽는 당신과 싸워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을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 마음이 당신에게 꼭 가닿았으면 좋겠다.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 고린도전서9:22



나는, 육신으로 내 동족인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 로마서9:3








1) 종교와 진리

              세상 모든 종교 : Do. (해라.)            

              진리 : Done. (그 분이 우리를 위해 이미 다 해놓으신 것을 믿어라.)            



(BC, AD. 우리가 쓰는 년도는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준으로 한다.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한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안 믿을 뿐이다.

그런데 왜 우리 죄 때문일까? 그 분이 뭐가 아쉬우셔서?)




우리가 성경과 하나님에 대해서 무언가 오해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바로 이 단 하나의 진리를 가리기 위해 사탄이 뿌려놓은 ‘종교’라는 것에 속았기 때문이다.



성경은 구원을 얻기 위해 우리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이미 구원 받은 사람이 감사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선행을 하는 것과, 구원 받기 위해 포인트 적립하듯이 선행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교회 출석, 헌금, 주일성수, 새벽기도, 회개 기도와 거룩한 행실, 교회 직분, 봉사활동… 성경은 결코 우리가 이것들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건져내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 디도서2:14




성경은 우리의 의는 걸레짝과 같다고 말한다. 그 말이 무슨 말인가? 나름 의롭다며 행하는 너의 행실은 내 기준에는 전혀 도움이 안되니까 그냥 저쪽에 빠져 있으라는 뜻이다. 오히려 그 분은 내 양들을 누워있게 하리라 하시며 나의 멍에는 쉽고 가벼우니 와서 쉼을 얻으라고 하신다. 주의 영이 있는 곳에 참 자유가 있다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신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이사야55:1)




즉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미 다 해놓으신 것을 그저 사실로 받아들이고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믿되, 정말 진심으로 믿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분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놓으신 것이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을 오늘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11:28-30






2) 창조자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 로마서1:20






              위의 스마트폰을 놓고 두 개미가 싸우고 있다.            


- 개미 A : "나 이거 뭔지 알어. 이건 휴대폰이라는 건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생기는 그런 물건이야~"

- 개미 B : "무슨 소리야. 이 휴대폰은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인간이란 존재가 만든 거야. 저절로 생긴 게 아니라고!"




너무 말도 안되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이다.



그런데 개미 A의 본명은 빅뱅을 믿는 진화론자이고, 개미 B의 이름은 창조론자이다.






자동차 부품을 아무리 여러 번 던져도 지성이 개입하지 않는 한 자동차는 절대로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동차 = 필요한 모든 부품 + 설계자인 인간의 지성






 해와 달과 별과 자연 만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한 질서 속에서 운행된다.             

천문의 주기나 궤도가 하나라도 틀어지면 세상은 즉시 멸망한다.






인간의 몸은 스마트폰과는 비교도 안되게 훨씬 복잡하다.            






만물은 저절로 질서를 가질 수 없다. 질서는 지성이 개입한 증거이다.             

진화론과 빅뱅이론은 무질서에서 질서가 됐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법칙)에 위배된다.

(군대 가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오와 열은 절대로 저절로 맞춰지지 않는다.

지성(=교관)이 반드시 강력하게 개입해야 조금씩 질서가 생긴다.

그래서 군인들은 훈련소에 들어가자마자 교관의 강력한 통제 하에 제식부터 배우는 것이다. 무질서에서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






이런저런 반론과 각종 가설을 다 집어치우고 정말 이 세상이 과연 저절로 생겨났는지를 당신의 상식과 양심에 비춰서 한 번 가만히 생각해보라. 누군가 창조하지 않고서는 질서 정연한 이 세상은 절대로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누군가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말하는 책은 이 세상에 성경이 유일하다. 창조는 실제 창조한 존재가 아니면 아무도 구라로 꾸며낼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스케일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의 가장 첫 구절이다.
요약 : 우연발생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창조주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과학자니까 창조주를 믿지 않을 것이다.(?)


        





3) 첫 사람 아담과 원죄

태초에 에덴동산에는 죄가 없었다. 모든 것이 다 허용됐으나 딱 한 가지, 동산 중앙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것을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 하셨다.            

성경의 인류 구속사는 태초에 죄가 없고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던 이 에덴동산 같은 시절로 회복되는 과정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사탄이 들어간 뱀이 하와를 유혹했다. "이걸 먹어도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져서 선악을 알게 된다." 그 말에 속아서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었다. 죄가 없던 이 세상에 처음으로 죄가 들어온 순간이었다. 그 대가로 이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단절됐다. 하나님은 거룩하셔서 죄와 함께 있으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웨딩드레스에 김치국물이 튀면 다 버리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죄의 대가는 사망이다. 원래 죄가 없을 땐 죽지 않았다. 죄로 인해 생명이신 하나님이랑 단절돼서 죽는 것이다. 이 세상이 낡고 늙고 죽어가는 이유는 하나님과 단절되면서 땅이 저주받았기 때문인 것이다. 사망하게 되는 원인이 죄 때문이라는 이 사실을 가장 먼저 똑바로 이해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로마서3:23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 로마서5:12






과연 ‘나는 한 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는데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 안에는 이미 죄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우리는 절대로 죄 없이 하얘질 수 없다. 생각으로만 죄를 지어도 죄인이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도 죄인이다. 율법을 계속 지키지 않고 단 하나라도 어기면 다 죄인이다. 완전히 하얗지 않으면 까만색이나 회색이나 똑같이 죄인인 것이다.             

(죄가 단 한 개도 없는 하얀색이 아니면 모두가 똑같은 죄인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그래서 태어난 모두는 결국 죽는다.

우리는 결코 우리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죄와 사망이라는 저주 속에 갇힌 채로 이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죽음의 독침은 죄요, 죄의 권세는 율법입니다." [고린도전서 15:56])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 로마서3:10-12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

- 로마서3:20




율법의 행위에 근거하여 살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저주 아래에 있습니다. 기록된 바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계속하여 행하지 않는 사람은 다 저주 아래에 있다" 하였습니다.

- 갈라디아서3:10







4) 피흘림을 통한 속죄

그렇다면 사망이 없던 태초의 에덴으로 돌아갈 방법은 무엇일까? 들어온 죄를 없애는 것이다. 그 죄는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죄는 선행으로 없앨 수 없다. 죄는 노력으로 없앨 수 없다. 죄는 돈으로 없앨 수 없다. 죄는 반드시 죄가 없는 누군가 대신 ‘피를 흘려 대가를 지불해야만' 없앨 수 있다. 그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룰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동물의 피로 죄를 씻어낼 수 있는 제사 제도를 이스라엘에게 내려주셨다. 죄는 사람이 지었는데 동물은 사람과 동족이 아니었다. 즉 동물의 피는 완전하지 않았고 과거의 죄만 일시적으로 씻어줄 수 있었다. 이것이 매년 속죄 제사를 반복해서 지내야 했던 이유이다.            






5) 예수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라고 부른다.   

전지전능한 창조주 하나님은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말 구유에서 태어나셨다.가장 높은 자가 가장 낮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빌립보서2:6-7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 요한복음1:1-3






우리 죄를 다 씻을 수 있는 완전한 피는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서 신이면서도 동시에 완전한 한 인간으로서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의 피. 인류 역사 상 딱 그것 하나뿐이다. 죄가 없는 분은 오직 그 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 유명한 십자가 사건은 바로 예수님의 완전한 피를 통해 우리의 모든 죄값을 대신 지불하시고 우리를 영원히 깨끗하게 씻어주시기 위한 속죄 제사였던 것이다.             

구약 성경의 동물 제사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그림자였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요한복음1:29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 요한일서2:2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 요한복음19:30




그러니 한 사람의 범죄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 로마서5: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 이사야1:18






즉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행도 아니오, 헌금도 아니오, 새벽기도도 아니오, 회개기도도 아니오, 단지 예수님의 완전한 피로 인해 내 죄값이 이미 다 지불됐음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 외에 구원의 다른 길이 없다고 말한다. 이것을 양보하면 죄 사함이 불가하기 때문에 논리 상 어떤 경우에도 이것만은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독단적이냐고 할 정도로 오직 예수를 외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들이 독단적이라서가 아니라 이것이 바로 단 하나의 진리이기 때문인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8:32)




이 예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을 얻어야 할 이름은, 하늘 아래에 이 이름 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 사도행전4:12






그 전지전능하신 분이 대체 무엇이 아쉬워서 이 땅에 내려와서 모욕 받고 매 맞고 십자가에 못까지 박히셔야 했을까?            

(다름 아닌 영원히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 위해 본인이 직접 만든 자기 자식들이 죄와 사망의 노예로 사는 게 불쌍해서였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을 포함해서.."

그것이 우리가 길거리를 지나다니면서 교회 표어로 너무나 흔하게 봤던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의 뜻인 것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죄 짓고 죽게된 내 새끼들이 너무 불쌍하다)과 공의(=그래도 죄를 지었으면 대가를 치러야지)를 동시에 충족(=그냥 내 몸을 찢어서 죗값을 대신 치르자)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전서1:18])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거하기를 원하신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1:23])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요한복음3:16



이 자녀들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도 역시 피와 살을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겪으시고서,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멸하시고, /
또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 히브리서2:14-1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 이사야53:5-7






그래서 구원은 내가 노력해서 얻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목숨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인 것이다. 선물은 그냥 감사히 받으면 된다. 대가를 지불하려고 하면 그때부터 거래가 된다.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시편49:7-9)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로마서6:23]

하나님의 선물은 영생이다 = 영원히 너랑 함께 살고 싶어서 네 죗값은 내가 미리 다 치러놨어. 죄가 없어져야 네가 다시 영원히 살 수 있으니까. 그러니 넌 그저 돌아와서 내 사랑의 마음을 받아줄 수 있을까?)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에베소서2:8




그러나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의롭다고 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비록 아무 공로가 없어도, 그의 믿음이 의롭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 로마서4:5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내려오셔서, 우리 죄인들의 누더기와 자신의 고귀한 옷을 바꿔입으신 사건.

그래서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저주를 그 분이 대신 받고, 우리는 그 분이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값없이 영화롭게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사건.

그게 바로 십자가 사건이다. 그게 우리를 자유케 한다는 바로 그 진리다. 그것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6) 안 믿기는데요?

보이지 않아서 안 믿긴다는 사람이 있다. 안 보이는 세종대왕은 어떻게 믿나? 믿을 만한 기록이 있기 때문에 믿는다.






성경은 사본의 오차, 사본 수, 원본 기록, 최초 사본 등 모든 지표에서 그 텍스트의 신뢰성이 압도적이다. 그 중 신약 성경은 사본의 개수가 무려 24,633개이다. 사본 개수가 두 번째로 많은 일리아드는 고작 643개의 사본만 존재한다. 그 2만 여 개의 신약 성경 사본들의 내용은 0.5프로를 제외하고는 전부 일치한다.






성경은 약 40명의 저자가 1,600년 가까운 시간에 걸쳐 66권으로 나누어 적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몹시 정확하고 일관성이 있다.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며 저술하기도 어려운데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사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면 그때부터 이해가 된다. 성경은 하나님이 쓰신 책이기 때문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디모데후서3:16






성경은 지금까지 대략 50억 권 이상 판매된 압도적 베스트셀러다. 2~10위까지 모든 책의 판매 부수를 다 합쳐도 못 따라간다.            

쉽게 말해 당신만 빼고 다 읽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지금 바로 성경 앱을 받아서 세상에서 가장 믿을만한 이 책을 직접 읽어보자. 반드시 말씀을 직접 읽어야 믿음이 생긴다.   

(북한의 성도들은 살려고 탈북했다가 중국에서 복음을 전해듣는다. 이때 요한복음 로마서 두 개만 달달 외워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다시 북한으로 들어간다. 그러고는 아무리 핍박해도 기꺼이 순교에 이르는 강한 믿음을 갖는다.

그만큼 이 두 권은 신약 성경의 핵심이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행적과 십자가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로마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받는 은혜의 복음에 대해 사도 바울이 쓴 편지이다.

이 두 책을 가장 먼저 읽어보자.)






죽음은 삶의 대척점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코로나 백신 이후로는 심장마비 기사가 너무 자주 나온다. 가는데는 정말 순서가 없다. 세상의 종말보다 먼저 나 개인의 종말이 오늘 지금 당장에도 바로 올 수 있는 것이다. 숨이 멎으면 회개할 자유의지도 없기에 구원의 기회는 없다. 죽은 뒤에는 심판이 있다. 그 심판을 벗어날 길은 숨 쉬며 살아있는 동안에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 받아서 거듭나는 것뿐이다. 당신이 지금 이 순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기로 바로 결단하기를 소망한다.             

(사람은 언젠가 한 번은 낮아진다. 사는 동안 스스로 낮아지지 않으면 죽어서 흙이 되어서라도 반드시 낮아진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고린도후서10:5])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 누가복음12:19-20




전도자가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 사람이 세상에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는가? /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대로다.

- 전도서1:2-4





https://youtu.be/Z0ufS7SHyTc







7) 영접기도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나? 지금 결단해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신앙을 고백하면 된다. 그 고백을 어떻게 해야할까?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 로마서10:10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만한 귀한 내용이 있어 그대로 첨부한다. 아래 내용대로 진실되게 기도해보자.      








(아래 포스팅에서 발췌)

https://blog.naver.com/retelcom/223603923272









5-3. 마무리하며


사실 이 다섯 편의 [말세 5부작]은 아래 영상으로 인해 시작됐다.



영화 <타이타닉>의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인데, 아주 짧고 정말 감동적이니까 잠시 플레이 버튼을 눌러서 직접 감상해보자.



https://youtu.be/JTZYqODo7o0






침몰하는 여객선에서 살려고 발버둥치는, 혹은 그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여러 인간 군상들 가운데서 악사들은 갑판에 모여서 어떤 곡을 현악 4중주로 담담히 연주한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그냥 감동적인 장면이구나 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 노래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이라는 찬송가였다.

그래서 거듭나고 나서 이 장면을 봤을 때는 정말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동이 있었다.



왜냐하면 저 영화 속 장면이 지금 현재 마지막 때의 이 세상 모습과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전혀 흔들리지도 않고 담담히 찬송을 연주하며 온 세상을 위로하다니!

저 악사들이 초연하게 연주하는 모습은 내가 이 마지막의 마지막 때를 어떤 모습으로 살아내야 할지 알려주는 것 같았다.



쓰러져 침몰해가는 세상에 여전히 소망을 두며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쉽게 낙심한다. 그리고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른다. 나를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그 길이 멸망의 길이라는 것을 모르는 그 사람이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것을 모르나이다’ 하셨는지 알 것 같다.



그러나 믿는 자로서 해야할 것은 좌절과 낙담이 아니었다. 좌절과 낙담을 하라는 말이 성경에 한 구절도 없기 때문이다. 믿는다는 것은 모든 일을 자신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선하게 이루실 하나님만 잠잠히 바라보며, 침몰하는 배 위에서도 그저 초연하게 그 분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다.



그 믿음으로 나는 이 모든 글을 써내려갔다. 그 뒤는 하나님이 마무리 하실 것이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시편42:5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 욥기1:21




나는 언젠가 온 열방이 잊었던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분 앞에 다시 돌아와 함께 경배하는 그 날을 진심으로 소망한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 창조된 이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만왕의 왕께서 다시 오실 그 위대한 영광의 날을 당신 또한 기쁨으로 소망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마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호세아6:1)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끝>







0. 내가 갑자기 예수님을 믿게 된 이유, 직장과 결혼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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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이 성경에서 말하는 마지막 때인 이유 (아래 포스팅 참조)

https://blog.naver.com/retelcom/223480255629





2.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믿고, 오늘, 지금 바로 거듭나세요. (아래 포스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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