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안녕하세요
다시 찾아와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많이 부족한 자이지만, 지금 제가 적는 이 답변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적히기를 바랍니다
저는 ㅇㅇ님과 논쟁하고자 함이 아니라, 베드로전서 3:15에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저도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최선을 다해 제가 믿는 것을 댓글로 적어보고자 합니다
저는 님께서 꼭 예수님의 사랑을 영혼으로 깨닫게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1.교회
일단 저는 현재 건물 교회에는 출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가 물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 된 교회 소속이라고 대답합니다
저는 사람을 믿거나 따르지 않으며, 예수님 외에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자입니다
사도행전 17:24에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거하지 않으신다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두세 사람 모이면 예수님도 거기에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거듭난 성도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저의 아내도 장모님도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성도이기 때문에 저의 가정이 또한 저의 교회이기도 합니다
또 앞서 댓글에 적어드린 링크 중 ‘방주 안의 신부들’ 카페 또한 거듭난 성도들이 옹기종기 모여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커뮤니티로서 이 또한 저의 소중한 교회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4:21-24에서도 우물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고,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 외에는 성소,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그것은 이제는 레위 지파 제사장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모든 성도들이 각자 제사장의 역할을 하면서 어느때고 직접 지성소로 나아가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특정 장소에서 특정한 날만 기도하고 믿는 척 하는 게 아니라, 제 몸을 성전 삼으시고 진실로 지금 바로 이 순간 살아계신 하나님께 24시간 내내 쉬지 않고 기도하며 사랑의 교제를 나눕니다
정말 하나님이 제 안에, 제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느끼고, 믿고 그렇게 매 시간을 삽니다
그것이 바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신약에서 말하는 참된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것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사야서에 예언하기를 처녀가 잉태하여 나온 아들인 예수님이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라 불릴 것이라 하신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부터 건물 교회에 안 나갔던 것은 아닙니다
일단 저는 이 땅에 기독교가 맨 처음 전파되어 들어왔을 때부터 저까지 7대째 기독교 집안입니다
그것은 저에게 자랑이 될 수가 없을만큼 저는 부끄러운 삶을 살아온 죄인이기 때문에, 자랑처럼 들릴까 봐 어디가서 거의 말 하고 다니지를 않습니다
또한 그것이 구원에 영향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대대로 독실한 크리스천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유아 세례를 받은 모태신앙입니다
물론 말만 그렇고 저의 아버지는 평생 직업도 없이 술 담배에 절어 지내셨고 귀신들에게 제사도 지내다가 결국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저 또한 평생을 술독에 빠져서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으로 참으로 오랜 시간 허송세월하며 살았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십 년쯤 전에 돌아가실 때 유언이 예수님 믿어라였는데 저는 당신이나 많이 믿으라고 콧방귀를 뀌었던 사람입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쩌면 조폭이 예수님 믿는다는 것보다도 더 믿기지 않는 비현실적인 일입니다
저에게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바란 적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이 온통 거짓이고 회칠한 무덤임을 제대로 깨달았던 저는 지금이 성경에서 말하는 마지막 때이고 성경과 하나님만 진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한 분에게 제 모든 것을 내어드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때까지 온통 헛된 것에 낭비했던 참으로 쓸모없는 인생, 이제부터라도 그 분을 위해 살고, 그 분을 위해 죽겠다 다짐하였습니다
성경 한 줄도 읽지 않고 믿음부터 생긴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으로 저는 단기간에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절여져 완전히 새 생명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 간증과 제가 영혼으로 깨달은 것들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 아래 글에 적어두었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일단 당장 뭐부터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학생이 공부하러 학교를 가고, 사람이 아프면 병원을 가듯이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건물 교회에 가야 하지 않나 생각하였습니다
또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신학을 제대로 공부해서 목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일단 나가보기로 결심하고 집 앞에 있는 한 교회(장로교 고려 교단, 고신에서 갈라져 나온 극 보수 교단이고 WCC를 확실하게 교단 차원에서 반대함)를 신중하게 골라서 4-5주 정도 일단 출석하였습니다
그때 제가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저는 세상에 푹 빠져 살다가 확 깨어날 때부터 이 세상이 완전히 마지막 때이고 또 지금 대부분의 교회가 WCC, WEA 등 종교통합에 가담해서 하나님을 배반한 상태라는 것을 먼저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뒤에서도 따로 말씀드리겠지만 그 유명한 루터가 말하기를 성경을 짜면 (예수님의) 피가 나온다 하였고, 또 사도행전 4:12에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 말고는 구원의 다른 이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이 과연 누구신가, 더 정확하게는 예수님의 보혈(보배 피) 그것이 도대체 인류에게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것인데, WCC, WEA, NCCK 등 가톨릭을 중심으로 종교를 통합하려는 세력들은 ‘예수 말고도 모든 종교에 나름의 구원이 있다’ 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교인데 예수를 부인한다, 그것은 잘 모르는 사람이 그냥 상식적으로 봐도 뭔가 이상한 것이죠
그러면 굳이 예수님 믿을 필요가 없겠지요
애써서 핍박 받아가며 전도할 필요도 없고 그냥 절간 들어가서 도 닦아도 천국에 갈 수 있겠죠
사도들도 순교할 필요가 없었겠고 아오지 탄광에서도 굳건히 신앙을 지키는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도 그렇게 이생에서 고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사족이 길었습니다만 아무튼 그렇게 출석했던 교회에서 저는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혼자서 이런저런 신앙 서적도 찾아서 읽고 나름의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다만 거듭나는 게 뭔지도 모른 채로 저도 모르게 이미 영혼으로 완전히 거듭나서 성령부터 받았던 저는 학문적으로, 신학적으로, 종교적으로 성경에 접근하는 것이 점차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성경은 제가 몇 번 안 읽어봤어도 아니 아예 읽지 않았어도 학문이 아니라 무조건 생명의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제가 바로 그 생명이라는 것을 생명이 뭔지도 모르면서도 이미 너무나 확실하게 얻은 상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미리 써둔 설교 원고를 보면서 줄줄 읽으시는 목사님의 설교에도 전혀 은혜가 되지 않았고, 헌금할 때마다 분위기를 고조시키려는듯 특정 찬송을 꼭 부르는 것과 은근히 헌금이 강요되는 분위기, 그리고 “이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교통하심이 블라블라” 하고 매번 같은 말로 축도하는 것 등 여러 종교적 의례와 식순에도 저는 전혀 익숙해지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 교회는 예수님 다시 오심에 대해 그다지 적극적으로 설교하지 않았고, 또 코로나 백신같은, 누가 봐도 몸에 확실히 안 좋은 것들을 목사님이 앞장서서 맞으라고 성도들에게 종용하고 있었거든요
그 외 헌금이나 제왕적인 목사의 권위, 종교 제도와 의례에 대한 거부감 등..
거기서 거듭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무것도 모르는 초신자가 와서 마지막 때에 대해 말을 하니 그 교회 직분자들께서는 저를 이단 종말론자 취급을 하였고, 결국 최종적으로 목사님과 단독으로 면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찌보면 믿은지 얼마 되지 않아 신앙적으로 너무 순수하였기 때문이었겠지만 당시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성경에서 예수님이 곧 다시 오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사도 바울도 자신의 때에 예수님 다시 오실 것이라고 확신하여 결혼도 안 하고 복음 전파에만 매진하였는데 왜 마지막 때를 외치고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 손가락질 받아야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천 년 후에 종말이 오든 오늘 종말이 오든 전혀 상관이 없고 천 년이건 만 년이건 예수님이 오늘 오신다는 생각으로 기대하며 살아가는 이 나날이 너무나 흡족하고 만족스럽습니다
어쨌든 계시록은 다 상징이라고 하시면서 무천년주의라는 신학 지식에 갇혀있던 그 분이 말씀하실 때마다 제 안에서 이런저런 반박의 성경 구절들이 계속 생각이 났고, 또 목사님께서 자신이 믿고 있던 종교개혁자 칼빈의 신학 이론을 계속 언급하실 때마다 저는 이 목사님이 지금 예수님을 믿는 건지 그 칼빈이라는 신학자를 믿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종적으로 그 분이 지금이 마지막 때가 아님을 말씀하시기 위해 계시록 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말씀을 하실 때, 아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분의 입을 빌어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정말 쩌렁쩌렁 하면서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 길로 저는 다시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렇게 되니 주님과 매 순간 직접 교제하게 됐고, 정말 기쁨과 평안이 너무나도 심령에 넘쳐 흐르는 나날을 매일같이 보내고 있습니다
2.예수님
님께서 댓글에 구원파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댓글의 요지는 예수님께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없애셨기 때문에 그것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는 저의 말이 구원파에서 말하는 교리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종교 단체에 소속된 것도 아닐뿐더러 구원파든 십원파든 거기서 무어라고 말하였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시며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다고 하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의 다수가 이단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의견에 결코 그대로 동조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셨을 때 기존의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에게 이단으로 정죄 당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하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유일하게 관심있는 것은 성경에서는 과연 무어라 말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로마서10: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셨기 때문에 믿음이 생기려면 일단 말씀에 뭐라고 써있는지를 들어서 알아야 합니다
아 성경 말씀에 이렇게 써 있네, 일단 그걸 먼저 알고 난 뒤에야 써 있는 그걸 믿을지 말지도 선택할 수가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무엇을 믿는지, 그리고 성경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무어라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 제가 아는 것을 간략하게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또한 님께서도 어떤 종교 캠프나 세미나에 참여하거나 혹은 저의 댓글이나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음으로서 누군가의 필터링된 입장을 건너 듣는 것보다도, 본인이 직접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된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받아들이며 이것이 과연 그러한가 하고 스스로 확인하고 묵상해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세상이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부류입니다
그 주장의 연장선상에 진화론과 빅뱅 등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세상 미디어에서 온통 주입되어 온 이 가설을 사실인 양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며 삽니다
둘째로 세상이 어떤 지적 존재에 의해 의도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설계되었다는 주장입니다
후자를 말하는 것은 외계인 설이니 뭐니 하는 여러 조악한 주장들을 제외하면 이 세상에 사실상 성경밖에 없습니다
이는 창조라는 것은 피조물의 두뇌로는 도무지 꾸며낼 엄두조차 나지 않는 거대한 스케일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이 땅을 처음 지으셨을 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잘 아시리라 생각하지만, 에덴동산에서 첫 사람 아담과 그 아내 하와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허용하셨지만 딱 하나, 이것을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던 바로 그 선악과를 먹고 죄 없던 이 땅에 처음으로 죄가 들어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이르면 죄의 대가는 사망이기 때문에 그때부터 한 번 태어난 인간은 반드시 죽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인간은 죄와 사망의 노예로 이 땅에서의 유한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에서 인간을 빚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던 그 태초의 모습에는 사망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 죄에 물든 우리의 머리로는 도무지 상상하기 어렵지만 사망이라는 게 없었던 그 완전했던 태곳적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로마서 6:23에 따르면 죄의 삯, 그러니까 죄의 대가가 곧 사망이기 때문에, 인과관계에 따라 일단 들어온 죄가 먼저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럼 죄는 어떻게 없어질까요?
죄는 부지런히 회개 기도를 하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만 없어집니다
그 대가란 바로 피 흘림, 즉 죽음입니다
히브리서 9:22에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죄를 지을 때마다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 그 당사자인 우리 죄인들이 직접 피를 흘리고 죽어야 한다면 그 누구도, 단 한 명도 살아있을 수조차 없는 것이니, 죄가 없는 누군가 대신 죽어서 피를 흘려주어야만 우리의 죄라는 것이 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희생제사 제도를 내려주셨습니다
이를 ‘대속’, 즉 죄가 없는 존재에게 나의 죄를 전가해서 그 존재를 대신 죽임으로서 내 죄를 용서 받는 ‘대신속죄’ 제도라고 합니다
죄라는 것은 이렇듯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치명적인 대가를 불러오기 때문에 그만큼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물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일단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택하시어 율법을 내려주시고 또한 동물에게 죄를 전가하여 일시적인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동물 제사 제도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나 동물은 인간과 동류가 아니었고 따라서 완전한 피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죄가 완전히 없어지기란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에 따라 제사장 주도 하에 매년 똑같은 동물 제사를 반복해서 지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물론 완전한 죄 사함을 가져올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우리의 죄를 상기시키는 효력이 있었고, 우리 죄를 사하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으며, 또한 장차 올 더 좋은 언약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더 좋은 언약’ 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의 죄가 완전히 제거되어 우리가 사망의 저주로부터 완전하고 영원토록 해방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라고 부릅니다
그 하나님이신 예수님 본인께서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신 분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죄가 없는 인간은 인류 역사상 예수님만이 유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본인께서 직접 하나님의 흠 없는 어린양 제물이 되어 모든 세상 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 받고 피 흘리시고 장사된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면서 그 모든 세상 죄를 일시에 다 제거한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것만이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인류가 이 저주를 끊어내고 구원받을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즉 약 2천년 전 실제로 역사상 벌어졌던 그 유명한 십자가 사건은 전 인류의 죄를 단번에 사하기 위한 아주 위대하고 또 거대한 속죄 제사였던 것입니다
율법에 따라 이미 땅에 구현되어 있던 성소와 지성소는 사실은 하늘에 있는 진짜 성소와 지성소의 그림자이자 모형이었습니다
땅의 성소에는 율법에 따라 레위 지파 출신의 제사장만 출입이 가능하였고 지성소에는 그 중에서도 대제사장만 일 년에 딱 한 번 출입이 가능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는 이 완벽한 속죄제사로, 땅의 지성소가 아니라 하늘의 진짜 지성소에 단번에 들어가셨던 것입니다
11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일어난 좋은 일을 주관하시는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만들지 않은 장막, 다시 말하면,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더 완전한 장막을 통과하여
12 단 한 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써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13 염소나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려도, 그 육체가 깨끗하여져서, 그들이 거룩하게 되거든,
14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더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죽은 행실에서 떠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
15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재자이십니다. 그는 첫 번째 언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에서 사람들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약속된 영원한 유업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히브리서9:11-15]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친 그리스도의 피”, 인류 모든 죄를 사하고도 남을 그 귀중한 피를 우리는 보배 피, ‘보혈’이라고 부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피로 인해 죄사함 받았다는 사실을 믿으면 우리 또한 그 효력을 입어 죄와 사망의 저주로부터 벗어나 태초에서와 같이 다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서 죄 없다 여김을 받게 된 구원 받은 자들은, 구원 받은 이후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하고 저절로 예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계시록7:10에 구원받고 휴거받은 성도들이 하늘 보좌 앞에 모여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외치며 찬양하는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말씀하셨고,
또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하고 물으신 이유이기도 한 것입니다
또한 이사야 1:18에서 “우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말씀하신 이유이고,
골로새서2:14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조문들이 들어 있는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으셔서, 우리 가운데서 제거해버리셨다”고 말씀하신 이유인 것입니다
그것이 ‘주의 영이 있는 곳에 참 자유가 있다’는 말씀의 의미이며,
‘주님 안에서 노예로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주님께 속한 자유인이고,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고린도전서 7:22 말씀의 의미인 것입니다
또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 말씀에서 말하는 진리와 자유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구원 받은 자들의 영적 상태를 정확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이방인들을 향한 구원의 방법을 서술한 바울 서신서의 첫 번째 책인 로마서에도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래 발췌한 로마서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한 번 직접 읽어보세요
쉬운 어투인 새번역 버전으로 가져왔으니 그냥 넘기지 마시고 어려우시더라도 꼭 한 번 직접 읽어보세요
분명히 말씀에 써있기를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받지 않는다’ 하였고, 또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른다’ 하였습니다
분명히 우리의 행위나 어떠함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통해 우리가 값없이 의롭다 함을 받는다’ 하였습니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한 것입니다.
22 그런데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오는 것인데, 모든 믿는 사람에게 미칩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못 미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24 그러나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는 선고를 받습니다.
25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속죄제물로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피를 믿을 때에 유효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너그럽게 보아주심으로써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6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다가 지금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신 것은,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라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롭다고 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27 그렇다면 사람이 자랑할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무슨 법으로 의롭게 됩니까? 행위의 법으로 됩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법으로 됩니다.
28 사람이 율법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로마서3:21-28]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4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로마서8:1-4]
9 당신이 만일 예수는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10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11 성경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12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로마서10:9-12]
또한 히브리서 10장 전체를 보더라도 이 내용이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중 일부만 발췌하여 가져오니, 정말 님의 영혼의 영원한 거처에 대한 일이라는 아주 시급하고 중대한 절박함을 가지고 아래 내용을 직접 차분하게 한번 꼭 읽어보세요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 ‘영원히 유효한 제사’를 드리셨다고 분명히 기록 돼 있습니다
거룩하게 되는 이들을 ‘단 한 번의 희생제사로 영원히 완전하게 하셨다’고 하였고요
‘죄와 불법이 사하여졌으니 죄를 사하는 제사가 더는 필요 없다’고도 하였습니다
9 그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첫 번째 것을 폐하셨습니다.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써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11 모든 제사장은 날마다 제단에 서서 직무를 수행하면서 똑같은 제사를 거듭 드리지만, 그러한 제사가 죄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의 영원히 유효한 제사를 드리신 뒤에 하나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13 그리고서 그는 그의 원수들이 그의 발 아래에 굴복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14 그는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을 단 한 번의 희생제사로 영원히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15 그리고 성령도 우리에게 증언하여 주십니다.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날 이후에, 내가 그들에게 세워 줄 언약은 이것이다. 나는 내 율법을 그들의 마음에 박아주고, 그들의 생각에 새겨주겠다.
17 또 나는 그들의 죄와 불법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18 죄와 불법이 용서되었으니, 죄를 사하는 제사가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19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20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은 곧 그의 육체입니다.
21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제사장이 계십니다.
22 그러니 우리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우리는 마음에다 예수의 피를 뿌려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맑은 물로 몸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23 또 우리에게 약속하신 분은 신실하시니, 우리는 흔들리지 말고, 우리가 고백하는 그 소망을 굳게 지킵시다.
24 그리고 서로 마음을 써서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합시다.
25 어떤 사람들의 습관처럼, 우리는 모이기를 그만하지 말고, 서로 격려하여 그 날이 가까워 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입시다.
[히브리서10:9-25]
물론 이 히브리서 구절의 바로 다음에는 진리를 아는 지식을 얻은 후에도 계속 죄를 지으면 맹렬한 진노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고, 그것을 행위구원을 주장하는 분들이 단골로 인용합니다만, 그것은 구원 받은 이후에도 구원 받은 자답게 똑바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죠
그렇지 않고 마음대로 죄 짓고 산다면 아버지의 매서운 징계가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겠죠
이토록 성경에 쓰여진 구원의 길은 너무나 쉽고 간단 명료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구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이라 함에는 우리가 교회에 출석해서 주일 성수를 하거나, 매일 밤 눈물 콧물 빼면서 회개 기도에 열심을 내거나, 우리가 교회에 헌금을 하거나 어떤 직분자로 봉사를 하거나 하는 그 모든 우리의 어떠함을 모조리 포함합니다
그것들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행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록에 말씀하시기를 속히 와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고 하였고, 사도 바울도 불에 타는 듯한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으며, 다 달음질하더라도 상을 받는 자는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하였고, 본인은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하였습니다
또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거나 생명책에서 지워진다는 말씀도 있지요
심지어 히브리서 11:35에는 더 좋은 부활을 위해 심한 고문 받아도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치 않는 자들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서에 달란트나 므나의 비유도 우리의 행위를 강조하는 내용으로 유명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 받은 성도라면 당연히 회개도 열심히 하고 착한 일에 열심을 내야겠죠
그러나 성도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가지고 내가 회개 기도도 열심히 하고 선행을 했으니 천국 가기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선후 관계, 인과 관계가 완전히 뒤틀리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더라도 그것이 천국을 가지 못할까 봐 포인트 적립하듯 마지못해 하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원의 확고한 반석 그 위에서 내게 주어진 삶 내내 기쁜 마음으로 당연하게 행해야 하는 것이죠
우리의 구원 받은 이후의 모든 행위는 생명책에 빠짐없이 기록되어 훗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우리의 상급과 칭찬, 혹은 책망으로 돌아올 것이지, 그것으로 인해 구원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에베소서2:8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 구절 뒤에 2:9절은 이렇게 나옵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만일 우리가 착한 일을 해야만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우리는 천국 가서 반드시 그것을 자랑할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보혈만이 아니라, 나의 선행과 회개기도와 헌금과 주일성수를 통해 내 열심을 보태서 천국에 오는데 ‘성공’했다고,
천국에 오지 못한 사람들은 나처럼 선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못 온 것이라고 말이죠
그런데 이토록 중차대한 구원의 문제에 대해 건물 교회에서는 각 교단마다 다 다르게 가르칩니다
그것이 어떻게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이시고 우리가 진리이신 참 하나님에 대해 논하고 있는 것이 맞다면 그 모든 주장들 중에 답은 딱 한 가지일 것입니다
그러한 주장은 크게 세 가지 정도의 부류로 나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칼빈주의입니다
다른 말로 예정설이라고도 합니다
일종의 운명론과 같이 구원받을 사람은 태초에 다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주류 교단인 장로교에서 보통 이것을 믿습니다
종교개혁 할 때 그 개혁 이라는 단어를 따서 개혁주의 신학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맹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디모데전서2:4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칼빈주의자들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실제로는 구원 받을 몇몇 성도들을 애초에 다 정해두셨고, 그 외에는 구원받지 못하게 정해두셨으면서, 정작 말씀에는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한다’고 하실 리가 있을까요?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한다 하고 말씀하셨으면 진짜로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칼빈주의는 성경 말씀과 다른 주장임이 증명됩니다
둘째로 자유의지의 문제가 있습니다
애초에 모든 자들의 운명이 정해져 있었으면 지옥 갈 사람들도 다 정해두셨다는 말씀이신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백보좌 심판대에서 본인이 손수 그렇게 정해두신 그 사람들을 정죄하고 심판하실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를 못 이기는 연약한 존재로 만드셨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죄를 짓도록 종용하신 것은 아니죠
또한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우리 중 누가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 받게 될지의 여부를 미리 다 알고 계실테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 자의 운명을 그렇게 되도록 정해두신 것은 아니죠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자기 몸을 찢어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두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숨이 끊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 그 기쁜 소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값없이 믿기만 하면 되는데 우리는 썩어 없어질 것들에 대한 정욕에 눈이 멀어 그 귀한 복음을 자기 발로 걷어차버립니다
우리가 이번주 일요일에 마트에 가서 장을 보기로 결정하는 것처럼, 우리가 짬뽕을 먹을지 짜장면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의지를 사용해서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할 수 있죠
그러나 우리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행위구원의 문제가 있습니다
칼빈주의는 행위구원을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내가 예정된 자가 맞다면 내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값없이 구원 받은 것이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로 한 번 받은 구원은 애초에 정해져 있던 것이니까 취소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렇다면 과연 내가 예정된 자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마태복음 7:20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하셨기 때문에 내가 예정된 자라면 나에게서 반드시 선한 열매가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칼빈주의를 믿는 사람들은 저절로 선한 일에 열심을 내고, 그 선한 열매를 보면서 아 내가 택함 받은 자로구나 그래서 선한 열매가 나오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위안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에 대해 확신할 수도 없고 내가 택함 받은 자인지 여부를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칼빈주의는 행위구원의 문제로 흘러가게 됩니다
다음으로, 알미니안 주의가 있습니다
보통 감리교의 교리가 그러하고 카톨릭에서도 비슷하게 개인의 공로와 선행과 거룩한 행실을 강조합니다
요지는 내가 자유의지로 선택해서 하나님을 믿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의 어떠함에 의해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다보니 거룩한 행실과 열매와 공로를 통해 받은 구원을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따라서 구원 여부는 죽어봐야 아는 것이고, 죽기 직전까지도 내가 구원 받은 사람인지 여부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정말 이 알미니안 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우리의 거룩한 행실이 없으면 구원이 취소되는지 한번 님께서도 성경을 직접 읽으시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그 말은 얼핏 보기에는 거룩을 추구하는 듯해서 맞는 말 같지만, 곱씹어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는 구원 받기 충분하지 않고, 거기에 우리의 어떠함을 반드시 더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거든요
또한 그런 식으로 믿는 사람이 오늘까지는 잘 했는데 내일 삐끗해서 지옥 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과연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라고 찬양할 수 있을까요?
영이 죽었던 내가 살아서 새 생명을 얻었는지, 새 생명을 얻었지만 내일 다시 잃게 될지 확신할 수도 당연히 없는데요
또 그렇다면 죄의 범주는 어디까지인가요?
꼭 실제로 살인 강도 강간을 행해야 죄인이 아니라, 그저 생각으로만 누구를 미워해도 우리는 살인자와 다를 바 없는 죄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였습니다
우리가 평생 거룩한 행실을 갖추려고 애쓰다가 죽기 직전의 순간에 화가 나서 딱 한 번 욕을 하고 죽었다고 가정해보면 그 사람은 과연 지옥에 가야 하는 걸까요?
행위를 더해 구원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께 저는 과연 본인의 행실이 아무리 거룩하려 노력한들 하나님의 기준을 통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하다면, 예수님이 고난 받지 않으셔도 우리가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서 거룩한 행실을 하면 천국 갈 수 있는 것인데 예수님은 왜 굳이 이 땅에 왜 오셔야 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시편 49:7-8에 이르기를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행위로는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생명에 대한 그 엄청난 값을 결코 지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믿는 사람이 과연 ‘구원 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가사대로 찬양하며 공로를 돌릴 수 있을까요?
아니, ‘구원하심은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에 내가 스스로 애써온 나의 거룩한 행실에게 있도다’ 라고 해야 맞겠죠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 하네’, 하고 찬양할 수는 있을까요?
아, 하나님은 우리의 잘잘못을 계산기 두드리고 저울질 해서 하나하나 다 따져서 천국 보낼지 아닐지 여부를 따져 묻는 무섭고 잔인하고 징벌하시는 하나님이시구나.
그 크신 사랑을 찬양하기는커녕, 이게 이 사람들의 진짜 속마음이지 않을까요?
그러다보니 마음에 기쁨과 평온이라고는 없고, 언제 구원이 취소될지 몰라 늘 두렵고 불안하며, 종교적 행위와 나의 열심으로 그 불안을 감춰보려 애쓰지만 그럴 수록 본인처럼 행위에 열심 내지 못하는 다른 성도들을 정죄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걸 우리는 ‘나의 의‘라고 합니다
근데 성경에서는 이사야 64:6에 우리의 의가 더러운 옷 즉 걸레짝과 같다고까지 말합니다
또 로마서 3:10에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행실에 열심을 내어도 그 정도 의로움으로는 천국에 전혀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칼빈주의는 내가 택함 받은 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선행을 하게 됩니다
알미니안 주의는 내 구원이 취소되지 않기 위해 선행을 하게 됩니다
이 두 가지 주장은 어쨌든 당장 겉보기에 거룩한 행실의 모양을 만들어 냅니다
이를 어떤 사람은 ‘신학이 잘 작동한다’고 표현했는데 정말 기가 차고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의 중심이 여전히 썩은 죄인인데 신학 이론의 작동을 통해 어떻게든 겉모습만 경건하게 만들어내면 되는 걸까요?
이게 바로 디모데후서3:5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 인 것입니다
그 두 주장의 가운데, 예수님께서 이미 다 이루셨으니 그 사실을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는, 너무나 쉬운 구원, 님께서 구원파 교리가 아니냐 하고 말씀하신 바로 그 주장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이 신약 성경 서신서에서 사도들이 주장하는 새 언약의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장로교, 감리교, 순복음, 침례교, 루터교, 성공회.. 그 어디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내 죄가 다 용서됐음을 믿는 바로 그 정금보다 귀한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는 하나님이신데 구원의 방식을 절대 어렵게 해두지 않으셨겠죠
가난하고 배움이 없어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없거나, 몸이 아파 교회에 출석해서 설교를 들을 수 없는 자들도, 구원 받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해 놓으신 것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성품 상 너무 당연하죠
이토록 구원 받기 쉽게 해두셨지만 모두가 죄에 눈이 멀어서 그 믿음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아무리 말해줘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이처럼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실제로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서 겉으로 지식적으로만 동의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고, 또 속으로 구원받지 못했을까 봐 불안해 하면서도 그것이 구원받은 것이라 착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요한일서 4:18에 이르기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하였습니다
따라서 저 또한 이렇게 믿기만 하면 우리 죄가 다 용서됐다고 주장하지만 속으로는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이 거듭난 성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거기에 행위를 더해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출애굽기14:13-14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하셨습니다
믿기만 하라고 했으면 진짜 믿기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되 정말 전심으로, 온 존재를 걸고 똑바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모두 용서해주셨다는 것이 영혼에서 사실로 믿어질 때 우리는 진실로 그 십자가에 담긴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절절히 깨닫게 됩니다
정말로 주홍빛 보다 더 큰 내 죄가 눈보다 더 희게 됐다는 것을 영으로 확실히 알게 됩니다
죄와는 함께 거하실 수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 그래서 우리의 죄와 죄성 때문에 하나님과 단절되어 우리의 영은 오랜 시간 죽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보혈의 공로로 값없이 의인이라 여김을 받는 순간, 우리는 성령을 받고 다시 하나님과 하나가 됩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가 이제 죽어도 다시 사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였음을 바로 깨닫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시편 144:3에서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하는 다윗의 고백이 절절하게 흘러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은 어디서 지식으로 주워듣는다고 아는 게 아니라 영으로 단번에 깨닫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 존재 자체가 완전히 다른 존재로 거듭,남, born-again, 즉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거듭나면서 비정상적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거나 누군가는 방언을 하거나 누군가는 성경 말씀이 확고히 믿어지거나 누군가는 양심이 몹시 예민해지는 등, 사람마다 그 모양은 다르지만 거듭날 때는 반드시 그 사람의 내면에 크고 작은 변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비로소 거듭났음을 확실히 알게 되죠
하나님은 절대 미지근한 분이 아니십니다
믿고 거듭나서 약속한 성령을 받는 것이 일종의 접신인 것인데 그 거룩하고 위대한 존재와 다시 연결되는 대 사건이 과연 나에게 아무런 생채기를 남기지 않을 수 있을까요?
거듭난 이후로 우리는 갈라디아서 6:14 말씀대로 '세상에서 보면 내가 죽었고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은' 그 상태가 됩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사신 예수님 십자가 보혈의 공로 덕분에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는 그야말로 죽음도 불사하게 되면서, 고작해야 죄와 사망으로 옭아매는 것이 전부인 이 세상이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에 성령이 들어온 순간 아래 히브리서 말씀과 같은 일이 정말로 나에게 실제로 일어납니다
'그 날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나는 내 율법을 그들의 생각에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다가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그것은, 로마서 8:4와 같이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돌 비석에 새겨진 율법이 아니라 심비, 우리 마음 비석에 영원히 새겨지는 정말 살아있는 율법,
오직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는 보혜사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 이뤄지는 놀라운 거듭남의 역사.
그것이 십자가를 통해 성취된 새로운 언약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통해 내 죄가 모두 사해졌음을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죄가 십자가에서 이미 다 용서 됐다는 이 한 줄에 담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채로 겉핥기 식으로 팔짱끼고 들여다보는 사람들, 그러니까 아직 제대로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이 바깥에서 들여다 볼 때는 이건 너무 쉽고 값싼 구원, 오뚜기 3분카레 구원처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이렇게 단순하게 믿으면 죄를 막 짓고 다닐 것 같거든요
그런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유다서 1:10에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하였습니다
내 육의 아버지가 나 살리려고 나 대신 죽었다는데 그렇게 가까스로 살아난 아들이 돌아가신 아버지께 감사하기는커녕 막 살 수 있을까요? 너무 감격해서 아버지 몫까지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살려고 애쓰겠죠
하물며 모든 인류의 죄를 떠안은 채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 짊어지고 올라가야만 했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가만히 한번 묵상해보세요
전지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피조물을 살리기 위해서 피조물에게 따귀 맞고 침뱉음 당하면서 고난 받고 죽으셨다니, 그게 어디 소설 속 이야기면 모르겠는데 진짜 역사적 사실임을 생각해보면 말도 안될만큼 너무 가슴이 벅차고 감격스럽지 않나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삶이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가슴이 굳어져있는 것이거나, 혹은 썩어 없어질 것들에 대한 욕심 때문에, 혹은 교만 때문에 눈이 가려진 것이겠죠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던 순간 그 분의 머릿속에는 지금 저와 말씀 나누시는 님 또한 분명히 들어있었을 것입니다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간단한 것이 영으로 확 믿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여기에 어떤 행위를 약간이라도 더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님께서는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거듭날 수 없을 것입니다
오직 믿어야 합니다
만일 믿어지지 않는다면 주님께 반드시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9:24에 어떤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너무나 간절한 나머지 예수님께 "내가 믿습니다.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어떤 건물에만 머물러 계시지 않습니다
그 분의 영은 지금도 온 천지에 충만합니다
님께서도 지금 이 순간 계신 바로 그곳에서 무릎 꿇고, 그저 진실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해보십시오
주여 내가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나를 도와주소서.. 하고요
그리 멋지게 꾸며낸 언어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주님께서는 겸손히 통회하는 자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탕자인 둘째 아들이 방탕했던 지난 삶을 회개하고 아버지께 돌아가야겠다 결심하였을 때,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아버지께서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셨습니다
그러고는 기뻐서 제일 좋은 송아지를 잡으라 하시고 제일 좋은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양 백마리가 있는데 한 마리를 잃으면 99마리를 그대로 두고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하시며 작은 자 중에 하나도 잃지 않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바로 그런 분입니다
반드시 지금 이 순간 결단하시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바로 그 믿음을 선물로 주시기를 간구해보시기 바랍니다
3.마지막 때
또한 님께서는 지금은 마지막 때는 맞지만 마지막 때의 정보를 찾아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취지로 댓글에 말씀 하셨습니다
그 말이 저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손꼽아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말로 느껴지는 것 같아 조금은 서글퍼집니다
원래 성도라면 누구나 예수님 다시 오실 날을 손꼽아 기다려야 맞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면 그 분을 사랑하고, 영원히 같이 있고 싶고, 빨리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해서 하늘로 올라가면서, 너희 거처를 마련하러 가니까 금방 다시 온다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는 사도 바울을 비롯한 모든 사도들이 정말 예수님께서 오늘 이 순간 다시 오실 것처럼 그렇게 하늘만 쳐다보며, 그 분의 다시 오심과 십자가 복음 전파에만 매진하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릴 때 만나기 몇 시간 전부터 설렘으로 가득차게 되듯이, 정말로 예수님을 기다리는 자라면 이렇게 성경에서 약속하신 마지막 때의 징조가 이 땅에 실시간으로 벌어질 때 설렘으로 가득찬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시계도 계속 쳐다보고 달력도 계속 넘겨봐야 정상일 것입니다
누가복음12:36-37에는 “마치 주인이 혼인 잔치에서 돌아와서 문을 두드릴 때에, 곧 열어 주려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되어라. 주인이 와서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이 허리를 동이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들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주님 오시면 문 열어드리려고 문고리에 손 얹어놓고 깨어 기다리는 종들의 모습은, 그 주인께서 ‘손수 허리를 동이고 곁에서 시중을 들 것이다‘ 라고까지 말씀하실만큼 너무나 기뻐하실 모습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경책 옆구리 끼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아무도 예수님 오심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성경에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 하셨고 돈을 사랑하는 게 만악의 근원이라 하셨는데 사람들은 썩어 없어질 이 땅이 너무 좋아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지금 오지 마시고, 나 죽고 내 아들딸 손주 다 죽으면 그때 오시라고.
저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슬픕니다
그건 지금 이 땅의 교회가 썩어서 그렇습니다
말씀대로 안 살고 이생의 자랑하려고, 육신과 안목의 정욕 채우려고, 그리고 돈에 눈 멀어서 구세주이자 신랑이신 예수님 버리고 세상이랑 완전히 바람이 난 것입니다
이 땅에 주님 다시 오심의 징조가 너무나 차고 넘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16:2-3에서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하고 일갈하셨습니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아래 포스팅에 정리해두었기에 추가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지금은 안 믿는 사람들도 이러다 진짜 세상 망하는 것 아냐?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직도 코로나가 쑈였던 것을 모르시나요
코로나 백신 찾아보세요
음모론이니 뭐니 다 떠나서, 동물 실험도 안 하고 단기간에 급조한 백신이 몸에 좋을 리가 있을까요
사람들 너무 죽고 수천가지 질병 걸리고 심근염 심근경색 각종 암 원인인 거 증명 돼서 지금 시장에서 실제로 퇴출됐습니다
젊고 건강했던 사람들이 백혈병 심장마비 급성 말기암 걸려서 급사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한데 다들 쉬쉬하면서 아무도 그게 백신 때문이라고 의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이미 자기가 맞았기 때문에, 자기 엄마 아빠 친척 지인들 심지어 갓난 아기들까지 백신 예약 손수 직접 다 해줬기 때문에 애써 외면하는 것입니다
사실이라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너무나도 큰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인지 직접 찾아보세요
이제는 검열이 다 풀려서 조금만 찾아도 그냥 다 나옵니다
그리고 티비 한번 틀어보세요 지금 세상이 과연 정상인지
계엄이니 부정선거니 왜 시끄러운지
러시아에 이스라엘에 전쟁은 왜 나는지
온갖 전염병 난리나고 지진이니 화산 폭발이니 뭐니 자연 재해 온갖 이상기후 그런 건 왜 자꾸 벌어지는지
성경에 마지막 때 예언 그대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으면 세상이 오늘 끝나든 천 년 뒤에 끝나든 상관 없습니다
빨리 끝나면 오히려 더 좋습니다
그건 죄로 물든 세상이 끝나고 정말 공의로 다스려질 그 분의 영원한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믿는 자들은 썩지 않는 영화로운 몸을 덧입고,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영원히 그 분과 함께 새 땅을 배분받아 다스리게 됩니다
그러나 안 믿는데 오늘 예수님 오시면, 혹은 오늘 갑자기 죽으면 그냥 바로 지옥 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마지막 때는 노아의 때와 같다고 했습니다
노아는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100년 가까운 오랜 시간을 자재들을 싣고 날라서 그 큰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다 비웃었죠
이렇게 맑은데 홍수가 난다면서 노아가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니냐고
그러고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도 사람들은 그냥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그러면서 무려 100년이나 노아를 비웃었습니다
비는 언제 오냐고
하늘이 이렇게 맑다고..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지 7일 동안도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멸망한다고, 회개하라고 경고하는 노아를 비웃으면서 아무 의미 없는 것들에 목숨 걸고 끝까지 그러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7일 후, 방주의 문이 닫히고 40일 동안 쉬지도 않고 비가 내려서 노아의 가족 8명을 제외하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한 순간에 멸망했습니다
마지막 때는 바로 이 노아의 때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 날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뜻밖에 덫과 같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의 소식은 재앙의 소식이 아닙니다
예레미야29:11에는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말씀 하셨습니다
또한 데살로니가전서5:9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마지막 때의 소식은 우리의 원수 마귀를 심판하여 죄악된 세상이 드디어 멸해지고, 우리의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위대한 나라가 비로소 이 땅에 세워진다는 유일한 소망의 소식입니다
그것을 전하지 않으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전해야 합니까?
그것을 전하지 않으면 사회 운동하는 사람들과 믿는 성도들의 다른 점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시대 정신의 대변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향기이자, 그리스도의 사절이자,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고,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쁜 마음으로 전합니다
우리는 바로 그러한 일에 열심을 내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쓰다보니 생각지도 못 하게 길어졌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세상은 주를 보네” 라는 찬양의 가사가 생각납니다
저의 부족한 답변이 님을 비판하려거나 가르치려 하거나 논쟁하기 위함이 아닌, 주님 주시는 사랑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한 영혼을 대하고자 애쓴 갸륵한 마음으로 님에게 조금이라도 와닿았다면 기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4:6에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하셨습니다
그 동일한 빛이 님의 마음에도 비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거듭나는 역사가 오늘 지금 바로 이 순간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님께도 예수님 다시 오심의 소식이 두려움을 주는 재앙의 소식이 아닌, 큰 소망과 기쁨의 소식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베드로후서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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