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를 읽고
—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를 읽고
1월 초,
국어 선생님이 시 한 편을 건네주셨다.
겨울 햇살이 맑고 차가웠던 어느 날,
내 마음은 흐릿하고 막막했다.
백석.
어디선가 들었던 이름이다.
교과서에서,
혹은 오래전 누군가의 입에서.
그 이름을 새삼 다시 마주하게 된 건
한 장의 종이 위에 적힌 시 때문이었다.
『흰 바람벽이 있어』 — 제목만으로도 마음에 바람이 스쳤다.
좁고 고요한 방,
흰 벽 하나를 바라보며 시작된 이 시는
기억의 조각들을 따라 천천히 깊어간다.
희미한 불빛 아래
달디단 감주 한 잔을 떠올리는 시인의 마음.
그 안에는 그리움도, 허기진 위로도 있다.
시인은 그 벽에
가난한 늙은 어머니를 그려 넣고,
사랑했던 여인을 떠올리고,
결국에는 자신을 비춘다.
쓸쓸한 얼굴을 바라보며
흰 벽 위에 스며드는 문장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어쩌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마음이
조용히 새어 나오는 밤의 속삭임 같았다.
이 시는 단지 고백이 아니다.
삶의 고단함을 견디는 사람들 모두에게
흰 벽을 통해 건네는 조용한 위로다.
그리고 시는 말한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애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쓸쓸함조차 사랑이라는 것을
마음이 먼저 알아차렸다.
시인 백석(1912~1996)은 평안도 방언을 시어로 삼아
고향 사람들의 삶과 자연을 깊이 있게 담아냈다.
대표작으로는 『여우난골족』, 『고향』,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등이 있다.
하지만 그 이름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은 건,
이 ‘흰 바람벽’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다.
그날 이후,
나 역시 내 방의 흰 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혹시, 나의 이 조용한 외로움도
언젠가 누군가를 위로하게 될까?
‘바람벽’은 방의 옆면을 막은 벽을 뜻한다.
우리가 무심코 바라보던 그 벽에
어쩌면 인생의 가장 깊은 문장들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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