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그래도 돼

by 홍주빛

한 번은 그래도 돼

홍주빛


새벽 미명
노모는 선잠에서 깨어
전기밥솥 취사 버튼을 누른다


아직도 부엌은
몸이 먼저 기억한다


문틈으로 옅은 빛이 스며들 즈음
딸이 살며시 부엌으로 들어선다


수술한 자리가 아직 쑤신다
냄비를 들다 흠칫
손을 바꾼다


문득, 밥솥
벌써 보온 1H


하루를 살려고
입에 무언가를 넣는다는 어머니
구부러진 손가락으로
설거지를 자처하는 아버지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가스레인지에 불을 켠다


달걀을 깨려다
또 불편해지는 손
조금만 참자 달래며
기어이 세 개를 깬다


프라이팬에서
계란말이를 굴린다
한 손의 한계는 분명하지만
멈추지는 않는다


간이 맞는지는 알 수 없고
어설픈 계란말이가
접시에 놓인다


바지락 미역국을
식성대로 덜어드린다
입 벌린 바지락 살조차
쉽게 내 것이 되지 않는다


한 숟가락 크기의
달큼한 조갯살이
오늘따라
그렇게 도도하다


그래
한 번쯤은


조용히
바닥에 내려놓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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