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한 기록을 시작하며
연휴 내내 아이는 시가에 가 있었다. 창고살롱 시즌2 모집 오픈을 앞두고 해야 할 일이 산더미. 남편은 컴퓨터 방에서 나는 거실에서 일을 이어갔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잘 놀고 있는 아이 사진을 보면 감사한 마음과 함께 아이에게 한없이 미안해졌다.
두 번째 모집 오픈인데도 고민할 것, 결정할 것이 끝도 없다. 시즌1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멤버십 구성을 이리 수정하고 저리 시뮬레이션 했다. 물론 프리 시즌 경험이 있기는 했지만 시즌1에서는 ‘이럴 것이다’라는 가설이 많았다면, 시즌2를 앞두고는 멤버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구체적으로 상상됐다.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저렇게 해보면 어떨까. 더 세심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수십 편의 책과 영화를 뒤지며 스토리 살롱에서 함께 나눌 책과 영화를 정하고, 레퍼런서 살롱과 스페셜 살롱 연사를 찾아 여러 번 미팅을 진행했다. 살롱IN살롱, 소모임 살롱 운영 방안,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수많은 회의와 미팅 내용을 바탕으로 시즌2 마케팅 컨셉 방향을 정하고 며칠에 걸쳐 상세페이지 초안을 잡았다. 창고살롱이 어떤 곳인지,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 시즌2에는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등등.
10년 넘게 글쓰는 일을 해도 여전히 글쓰기는 쉽지 않다. 상세페이지 작업은 지난해 산후 헬스케어 소셜벤처 다닐 때 처음 해봤다. 기사와 에세이만 쓰다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팔기 위해’ 쓰는 글도, 전적으로 소비자 입장을 고려해서 쓰는 글도 처음이라 사리가 나올 정도로 울면서 썼던 기억이 난다. 결과적으로는 그때의 경험이 창고살롱을 오픈하면서 큰 밑거름이 됐다. 공적 글쓰기의 본질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이 경험에 대해서는 꼭 정리해 보려 하는데... 초안까지 다 써뒀는데...ㅎㅎㅎ).
단순히 팔고 알리기 위한 글이 아니라 창고살롱의 브랜딩도 함께 고려해야 하니 글쓰기는 더 어려웠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서도 창고살롱만의 정체성과 품격을 잃지 않는, 다른 서비스에 쉽게 등장하지 않는 고유한 말을 고르고 또 고민했다. 기업에서 브랜딩을 했던 혜영님, '마더티브'와 산후 헬스케어 소셜벤처에서 브랜딩 작업을 함께 했던 인성님. 창고살롱지기 3명이 돌아가면서 세부 문구를 몇 번이나 피드백 하고 제안하고 때로는 논쟁하며 문구 최종안을 잡아갔다.
하루는 “더 나은”이라는 표현 하나를 놓고 살롱지기 셋이 한참 논쟁을 하다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문구 하나하나에 이렇게 고민하는 거 알까?”
그래서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ㅎㅎㅎ
상세페이지만 만든다고 끝나지 않는다. 인스타/노션/브런치/홈페이지 등 플랫폼 형식과 성격에 맞게 또 다시 내용을 재구성 해야 한다. 특히 인스타 이미지는 디자이너 태리님의 역량이 빛난다. 담고 있는 내용만큼이나 어떻게 보이느냐도 중요하니까. 마케팅 전략도 고민해야 하고. 아직 갈 길이 멀다.
두 번째 회사를 퇴사한 지 벌써 반 년이 지났다. 지난해 12월 창고살롱을 창업하고 또 운영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좋아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있는 일이 일치한다는 거였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지속하면서 늘 갖고 있던 괴리감이 사라졌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불필요한 감정 소모 없이 일만 하는 것도 좋다. 아이 등하원, 라이딩, 어린이집 모임, 가족 행사... 세 명의 살롱지기가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일을 할 수 없다 보니 서로 시간 차 업무를 한다. 100% 온라인으로. 저는 여기까지 했고, 저는 내일 오전에 돌아올게요. 저는 저녁에 돌아와서 여기까지 할게요. 저는 주말에 좀 볼게요. 소통에 혼선이 생기기는 하지만 그럴 때는 더 자주 소통하는 게 답이라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
그 사이 번아웃은 몇 번이나 왔다. 창고살롱 프리 시즌 기획과 운영을 함께 했던 인성님이 새롭게 살롱지기로 합류하면서 일이 줄어드나 싶었지만, 어째 일이 더 늘어나고 있다. 둘이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을 셋이니 이것저것 벌이고 있다. 수익 구조를 고민하면 일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맞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쉬세요"지만 쉽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번아웃이 올 수 있다는 걸 창고살롱을 하면서 알게 됐다.
며칠 전부터 창고살롱 관련 업무를 할 때면 가슴이 답답해지다가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공황장애 초기 증상일까. 해야 할 일은 너무 많고, 작업 하나하나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이와중에 <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안내서> 펀딩도 시작됐고, 가만히 앉아서 일만 하니 체력은 떨어지고, 아이에게 영상 보여줄 때마다 죄책감과 자괴감이 밀려왔다. 일이 정말 재밌는데, 보람도 있는데,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인데. 이런 상황은 또 처음이라 혼란스럽다.
오늘 오전 온라인 회의에서는 내 상태를 다른 지기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놨다. 쳐내야 할 것을 점검하고 R&R을 나눴다. 결론적으로 일이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나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개인적인 기록을 좀 더 늘리기로 했다. 시즌1에서는 창고살롱을 알리기 위한 것도 있었고, 멤버들의 이야기를 아카이빙 하고 싶은 바람에 각 살롱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콘텐츠를 발행했다. 멤버들과 독자들의 만족도는 높았지만 콘텐츠 만드는 건 품이 정말 많이 드는 일이었다. 스스로 소진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는 지속가능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창고살롱은 지속가능한 일과 삶을 만들어가고 싶은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다. 우리가 일하고 살아가는 방식 역시 지속가능해야 한다.
시즌2부터는 레퍼런서 멤버들이 스스로 자신의 기록을 할 수 있도록 돕고, 그렇게 절약한 시간으로 우리가 일하는 방식에 대해 기록하기로 했다. 창고살롱지기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어떻게 지속가능성을 찾아가고 있는지. '창고살롱이 일하는 법'이라는 노션 페이지와 브런치 매거진도 만들었다.
팀으로서의 기록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기록도 시작하기로 했다. 일단 이 글부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