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는 갈팡질팡한다
수습기자 기간은 3개월이었다. 그렇게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였는데. 그렇고 되고 싶었던 기자였는데. 내가 과연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자주 혼났고 정말 많이 울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아침에 사수한테 보고하다가 혼나서 울고 점심에 토론회 취재하며 타이핑 치면서 울고 저녁에 사수 만나러 회사 들어가면서 택시 안에서 또 울고... 진짜 하루 종일 울었다. 저녁에 사수 만나서도 당연히 울었다.
나는 기자를 하고 싶었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자라는 목표 하나만 가지고 달려왔으니까 나는 당연히 잘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경험한 기자의 삶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내가 기자를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런 고민을 하는 내게 사수는 말했다.
“잘 모르겠다고? 그럼 그만둬!”
늘 ‘기자란 모름지기...’라며 기자의 사명감을 말하던 선배에게 나 같은 후배가 도통 이해 안 가는 종족이었을 거다. 대체 이 녀석은 왜 이렇게 나약한 걸까 싶었겠지.
나는 반대로 저 선배는 어쩜 저렇게 확신이 있을까 궁금했다. 내게는 왜 저런 확신이 없을까. 나는 왜 이리 생각이 많은 걸까. 한편으로는 처음 살아보는 인생인데 혼란스러운 게 당연하다고 자위했다.
수습기자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사회팀에 배정됐지만 여전히 나는 확신이 없었다. 이 길이 내 길이 맞는 걸까. 어떤 날은 천직인 것 같다가도 어떤 날은 본성을 거스르는 일 같았다. 어떤 날은 가슴 터질 듯 행복했고 어떤 날은 사라지고 싶을 만큼 불행했다. 그렇게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8년 넘는 시간을 보냈다.
퇴사를 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나는 갈팡질팡한다. 신나고 재밌게 달리다가도 불쑥 내가 깜냥 안 되는 일을 벌인 건 아닐까 회의가 든다. 퇴사만 하면 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퇴사는 또 다른 시작일 뿐이었다. 가끔 이 불안이 억겁의 시간처럼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일도 모레도 이 시간을 버티며 살아가야 한다는 게 두렵다. 자꾸만 도망치고 싶어진다. 마치 육아처럼.
얼마 전, 예전에 사용하다 닫아둔 블로그에 들어갔다. 9년 전 내가 쓴 문장을 보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내게는 ‘의지할만한 일’이 뭘까 생각해본다. 요즘 들어 느끼는 거지만, 되든, 안 되든 기자가 되는 게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why do I need feet when I have wings to fly'라는 긴 노래 제목처럼, 목표를 이룬다고 해도 분명 다른 결핍이 생겨나리라는 걸 아니까. 결국,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건 점점 더 채워지고 있는 내 자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다. 나도 그처럼 더 열심히 써야겠다.”
소설가의 박민규의 수상 소감문을 보고 쓴 글이었다. 나는 이때도 이미 알고 있었다. 목표를 이룬다 해도 분명 다른 결핍이 생겨나리라는 걸. 나는 날개를 가지고서도 두 발을 그리워 할 사람이라는 걸.
언젠가 배우 박정민의 인터뷰를 읽다가 격하게 공감한 대목이 있다.
http://hankookilbo.com/v/9cc60ffaf840475da1d1b77f3ec96e6a
"그러고 보면 사람은 잘 안 변하는 것 같아요. 저는 안심이란 걸 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잘 안 나거든요. 늘 불안에 떨어요. 성격인 것 같아요. 성격이 운명이다, 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이 그러고 보면 맞다 싶어요."
"안심이란 걸 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잘 안 난다"니.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성격이 운명이다'라는 말. 절망스럽기도 하지만 왠지 위로가 된다.
어쩌겠는가. 이게 나인 걸. 이게 운명인 걸. 늘 내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고 살피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