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여자들] <로스트 도터> 속 레다
제주로 가는 비행기 안, 40대 남성이 아기 울음소리가 시끄럽다며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입건됐다. 보도에 따르면 이 남성은 술에 취한 상태였으며 갓난 아이와 부모에게 "누가 애 낳으래?""애XX가 교육 안 되면 다니지마, 자신 없으면 애 낳지마"라며 욕설과 폭언을 했다고 한다. 같은 날, 서울로 가는 KTX 열차 안에서는 30대 남성이 아이들이 떠든다는 이유로 아이와 엄마에게 폭언을 쏟아냈고, 이를 제지하는 승객에게 발차기를 했다.
뉴스를 보면서 돌도 채 되지 않은 아이와 둘이 KTX를 탔던 기억이 소환됐다. 서울에서 친정이 있는 부산까지 가는 길이었다. 편히 가려고 일부러 두 자리를 예약해 뒀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3시간 내내 좌석에 앉아 보지 못했다. 아이는 낯선 환경이 불편한지 칭얼대다 울다를 반복했다. 조용한 열차 칸에 아이 소리가 퍼지자 승객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아기띠를 하고 열차칸을 나와 복도로 갔다. 복도에도 승객들이 있었다. '쉬, 쉬' 소리를 내며 아이를 재우려 했지만 아이는 좀처럼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폭언이나 욕설을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미 마음은 가시밭이었다. 대전역, 동대구역… 열차가 설 때마다 진심으로 아이를 열차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사라지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에게 놀랐다. 나는 나쁜 엄마인가.
'나는 나쁜 엄마인가'라는 죄의식은 아이를 키우는 내내 반복됐다. 아이가 이앓이 때문에 밤새 수십 번 깨던 날,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아이가 전염병에 걸렸던 날,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는데 아이가 계속 놀아달라고 하던 날, 공공장소에서 떼를 쓰고 장난을 치는 아이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던 날, 엄마로 사는 게 버거웠다. 계속 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때마다 생각했다. 나는 엄마가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 대학에서 이탈리아 비교문학을 가르치는 40대 교수 레다(올리비아 콜맨)는 여름 휴가를 맞아 그리스로 혼자 휴가를 떠난다. ⓒ ㈜영화특별시 SMC
<로스트 도터>는 육아의 미칠 것 같은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한 영화다. 대학에서 이탈리아 비교문학을 가르치는 40대 교수 레다(올리비아 콜맨)는 여름 휴가를 맞아 그리스로 혼자 휴가를 떠난다. 안락한 숙소, 평온한 바다. 완벽한 휴가지의 평화는 시끄럽고 무례한 대가족의 등장과 함께 무너진다.
가족끼리 뭉칠 수 있도록 선베드 자리를 옮겨달라는 대가족의 요청을 레다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거절한다. 분위기가 험악해 지지만 레다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레다는 자신만의 선이 분명한 사람처럼 보인다.
장면이 바뀌고, 레다에게 자리를 옮겨달라고 했던 대가족의 여자가 레다에게 아까는 미안했다며 케이크를 내민다. 나이가 몇 살인지, 아이는 있는지 호구 조사가 이어진다. 배가 많이 불러 있는 여자는 곧 출산을 앞두고 있다. 레다는 스물다섯, 스물셋 두 딸이 있다고 말한다.
레다는 자신도 아까는 미안했다며 좀 불안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출산을 앞둔 여자는 레다에게 "딸들과 떨어져 있어서 그럴지도요"라고 말한다. 그러자 레다는 또다시 부드럽지만 단호한 표정으로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네, 뭐. 곧 아시겠죠. 자식들이란 끔찍한 부담이에요.
만삭의 임신부에게 "자식들이란 끔찍한 부담"이라니. 이 여자 대체 뭐지. 매일 해변에서 수영하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는 레다는 대가족 무리 사이에서 육아에 지쳐 있는 젊은 여자 니나(다코타 존슨)에게 자꾸만 눈이 간다.
니나의 어린 딸 엘레나는 한시도 엄마를 가만두지 않는다. 니나는 사랑스러운 눈길로 딸을 돌보지만 온몸에 묻어나는 피로를 숨길 수 없다. 선베드에 누워 있는 니나와 애착 인형에게 장난감 물주전자로 번갈아가며 물을 뿌리는 엘레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다는 울컥 눈물을 삼킨다. 레다는 어린 두 딸을 키우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레다(제시 버클리)와 남편은 연구자 부부다. 둘 다 공부를 하지만 육아의 부담은 엄마인 레다에게 훨씬 많이 쏠려 있다. 푸석한 얼굴로 "엄마 잠깐만 눈 좀 감고 있을게"라며 바닥에 누워 있는 레다에게 두 딸은 끊임없이 말을 걸고 반응을 요구한다.
레다의 남편이 아이를 돌보기로 한 일요일, 거실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남편은 대학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바쁘고 레다는 헤드셋을 쓰고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나 일하잖아"라며 레다에게 아이 돌보기를 미루는 남편에게 레다는 지친 얼굴로 말한다. "난 질식하겠어."
끊기지 않게 과일 껍질을 깎는 것에 집착하는 레다를 꼭 닮은 첫째 딸은 엄마처럼 뱀을 만들고 싶어서 과일을 깎다 손을 다쳤다고 말한다. 엄마에게 혼나는 것이 두려운 아이는 울먹이면서 "뽀뽀해줘, 엄마. 너무 아파"라고 말한다. 상처를 확인한 레다는 아이를 달래지도 뽀뽀를 해주지도 않는다. 우는 아이에게 등을 돌리고 한숨을 쉬며 레다는 차갑게 말한다. "1분을 혼자 둘 수가 없어."
▲ 영화는 타오르는 욕구를 가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레다(제시 버클리)를 보여준다. ⓒ ㈜영화특별시 SMC
아이에게 끝내 뽀뽀를 해주지 않는 레다의 마음이 뭔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았다. 그래선 안 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아이에게 못되게 굴고 싶을 때가 있다. "엄마 나 안아줘"라며 간절하게 손을 뻗는 아이를 뿌리치고 싶을 때가 있다. 왜 이 관계에서는 나만 모든 걸 포기해야 하는 건지 억울했다. 비뚤어지고 싶었다. 그러다가도 밤에 잠든 아이를 볼 때면 죄책감을 느꼈다.
커리어에 대한 욕망, 성적인 욕망, 엄마라는 이름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은 욕망. 영화는 타오르는 욕구를 가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레다를 보여준다. 특히 이탈리아어는 레다가 온전히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매개체다. 두 아이를 돌보는 와중에도 레다는 이탈리아어를 읊조리며 공부를 한다. 이탈리아어로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를 때 레다는 비로소 살아 있는 것 같은 얼굴이 된다.
남편이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레다의 육아 부담은 더욱 커진다. 지도 교수의 초청으로 학회에 가게 된 레다는 시터에게 두 아이를 맡기며 꼼꼼하게 당부를 전한다. 그동안 레다가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아이들을 돌봤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레다는 학회에서 자신의 학문적 능력을 알아봐 준 젊은 교수와 사랑에 빠진다. 레다와 젊은 교수는 이탈리아어로 밀어를 속삭인다.
엄마와 학자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레다처럼 나도 지난 몇 년간 육아와 일 사이에서 지독히 방황했다. 한 회사에 오랫동안 다녔던 나는 엄마가 된 후 세 번의 퇴사를 했다. 이직과 창업을 했고 글쓰기, 모임 등 사이드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남들은 애 엄마가 뭘 그리 일을 벌이냐 했지만 애 엄마이기에 더욱 절박했다. 어느 순간 '나'는 사라지고 엄마라는 이름만 남게 될까 두려웠다. 동시에 엄마로서의 역할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젊은 레다처럼, 지금의 니나처럼 나는 종종 질식할 것 같은 얼굴이 됐다. 도망치고 싶었다. 사라지고 싶었다.
지나가긴 하나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우울증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지나가는 거죠?
니나는 40대 레다에게 묻는다. 레다는 답변을 피한다. 첫째가 7살, 둘째가 5살일 때 레다는 두 아이를 버리고 집을 나왔다. '애들이 없으니 어떻던가요?'라는 니나의 질문에 레다는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복잡한 얼굴로 말한다.
너무 좋았어요. 폭발하려는 걸 참다가 결국 터져버린 것처럼.
레다의 얼굴을 보며 니나는 말한다.
좋았던 것 같진 않네요.
영화의 제목 '로스트 도터'의 '로스트(lost)'는 '잃어버린', '되찾을 수 없는'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영화 전개상 첫 번째로 잃어버리는 것은 인형이다. 니나의 딸 엘레나는 해변에서 애착 인형을 잃어버리는데 인형을 훔친 사람은 다름 아닌 레다다.
인형이 없어지자 엘레나는 엄마인 니나에게 더욱 집착한다. 레다는 그런 니나를 위로하면서도 인형을 돌려주지 않는다. 관객들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레다는 대체 왜 저 인형을 훔친 걸까. 그리고 왜 인형을 안 돌려주는 걸까.
40대 레다는 훔친 인형을 깨끗하게 씻기고 예쁜 옷을 입혀서 꼭 끌어안고 잠을 잔다. 내게는 그 인형이 레다가 잃어버린 유년 시절의 딸들처럼 보였다. 이미 잃어버렸고 되찾을 수 없는 어린 딸들.
▲ 40대 레다는 젊은 니나(다코타 존슨)에게 동질감과 연민을 느낀다. ⓒ ㈜영화특별시 SMC
작별 인사조차 없이 집을 나왔던 레다는 3년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엄청 좋았다면서 딸들한테 왜 돌아갔어요?'라는 니나의 질문에 레다는 답한다.
엄마니까. 애들이 보고 싶어서. 난 아주 이기적이거든요.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집을 떠났고, 니나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니나 딸의 인형을 훔치고, 아이들이 없는 게 너무 좋았지만 아이들이 보고 싶어 다시 돌아갔고. 레다는 이상하고 모순적인 사람처럼 보인다. 자신을 "뒤틀린 엄마"라고 부르는 레다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욕망을 변명하지 않는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영화를 보면서 <분노와 애정>이라는 책에 수록된 에세이 <나쁜 엄마 모임>이 떠올랐다. 제인 라자르가 쓴 <나쁜 엄마 모임>에서 작가의 친구 애나는 말한다. "애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애들이 진짜 미워." 그러자 작가가 말한다. "영화에서 엄마들이 애를 살리려고 트럭과 총알을 막아서는 거, 그거 다 진짜야. 애를 잃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아마 이게 사랑이 아닐까." 이어서 작가는 말한다. "하지만 애는 내 삶을 망가뜨려. 오로지 망가진 삶을 되찾기 위해 산다니까."
다음 구절은 내가 두고두고 찾아 읽는 구절이다.
나는 천천히 말을 마쳤다. 두 번째 문장이 없다면 첫 번째 문장은 기만적인 거짓말일 뿐이다…중략…우리는 언제나 말이 두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배웠다. 두 번째 문장은 첫 번째 문장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일관성이 있었다. 우리가 양가성을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양가성을 받아들이는 능력, 그것이 바로 모성애가 아닐까.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아이가 미운 마음, 아이와 함께 있고 싶으면서도 아이와 멀어지고 싶은 마음, 혼자 있는 게 행복하면서도 아이 사진을 자꾸 들여다보는 마음. 모든 사람의 마음이 그렇듯 모성에도 두 가지 마음이 늘 함께 한다. 엄마의 마음은 늘 모순적인 것 같은 두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모성 이데올로기는 욕망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의 엄마를 인정하지 않는다. 좋은 엄마는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다면 나쁜 엄마라고 낙인을 찍는다.
<로스트 도터>는 겉으로 보기에 그저 귀엽고 예뻐 보이는 인형 안에 있는 구정물과 벌레를 굳이 끄집어 내서 관객들 눈앞에 보여 준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기적인 뒤틀린 모성(motherhood)도 모성이라고. 정말로 나쁜 것은 엄마에게 오직 한 가지 마음만 갖기를 강요하는 사회라고. 이런 영화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얼마 전, 4살 아이를 둔 엄마와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4살 아이는 당연히 잠시도 가만있지 못했고, 아이 엄마는 KTX를 탔을 때 나처럼 초조하고 불안한 얼굴이 됐다. 4살 아이 엄마는 혼자 의젓하게 밥을 먹는 우리 집 7살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체 언제 이렇게 키우냐고. "3년만 기다리면 돼요"라고 말하며 나의 3년 전을 떠올렸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나는 레다와 니나처럼 이 상황이 언젠가 지나가리라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아이는 영영 자라지 않을 것 같았고 이 미칠 것 같은 상황이 무한 반복될 것 같았다. 아이가 자라기를 기다리는 사이 내가 사라져 버릴까 두려웠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처럼 나를 몰아붙였다. 그래야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아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또 다시 지나치게 애를 쓰고 있을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는 알 수 없으며 사람은 직접 겪은 것만을 믿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한다. 공공장소에서 다른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결코 고개를 돌려 쳐다보지 않는다. 안 그래도 숨이 넘어가고 있을 엄마에게 시선 하나를 더 보태고 싶지 않아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연대다. 비행기와 KTX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다짐했다. 다음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소리 내서 다른 엄마를 도와야겠다고.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나를 키운 여자들
취업하고 결혼하고 엄마가 되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여전히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어지러울 때,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워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면 뿌옇던 세상이 조금은 선명해졌습니다. 나를 키운 여자들을 소개합니다.
덧1)
- <나를 키운 여자들>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추진하는 ‘2022년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어요. 출간 계약 이후에도 이 글이 과연 책으로 낼 만한 가치가 있을까 괜스레 작아지기도 했는데 제 글을 조금은 더 믿어주고 싶어졌어요. 모두 구독자 분들 덕분입니다.
덧2)
‘나’와 ‘엄마’라는 이름 사이에서 방황할 때마다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마포구 합정동 또바기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신입 원아(2021년생~2017년생)를 모집합니다. 저희 가족은 아이가 3살일 때부터 5년째 또바기에 다니고 있는데요. 육아를 하면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선택한 거라고 자부합니다. 2023년 입학 설명회가 곧 열리니 관심 있는 분들 참고해 주세요.
덧3)
제가 지난해까지 운영진으로 있었던 '창고살롱'에서 시즌4 멤버십을 모집한다고 해요. 창고살롱은 지속가능한 일과 삶을 만들고 싶은 여성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입니다. 비슷하지만 다양한 결을 가진 여성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창고살롱 인스타그램을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