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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Dec 31. 2023

평온에서 모험으로

2023년 연말결산

-올해 초만 해도 진지하게 취업을 고민했다. 일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조직 안에서 충실한 부품처럼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꼭 콘텐츠 만드는 일이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1년의 안식년이 끝났지만 뚜렷하게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도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도 두려웠다. 무기력했고 도망치고 싶었다.


-그럼에도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야 했다. 주섬주섬 나를 챙기고 달래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살다 보면 목표가 없을 때도 있는 거야', ‘꼭 엄청난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가지 않아도 괜찮은 거야'.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만나서 힘든 사람은 굳이 만나지 않았고 알아서 피곤한 것은 모른 척했다. 새로운 일을 할 때는 의미를 찾기보다는 ‘그냥' 하려고 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너무 멀리 보지 않고, 일단 지금만 생각하는 연습을 했다. 힘을 빼려고 애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선생님의 B면 이민정


-다행히 프리랜서 에디터로서 1년간 꾸준히 일할 수 있었다. 작업물에 대한 좋은 평가를 받아 과업이 늘어나기도 하고, 해오던 일이 갑자기 없어지기도 하고, 물리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를 맡아 어제의 나를 매우 원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한숨을 푹푹 쉬기보다는 울 시간에 일을 했다. 그게 어른이니까! 일이 많을 때는 너무 많아서 힘들었는데 막상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니까 헛헛하고 불안하다. 이게 프리랜서의 삶인가. 일 제안 주세요. 잘해드립니다… 콘텐츠 기획, 취재, 편집, 감수 다 합니다. 다 해요 ㅎㅎㅎ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주된 업무는 글쓰기였다. 인터뷰를 하고, 콘텐츠 감수 작업을 하고, 칼럼을 썼다.

세어 보니 올해 35건의 인터뷰를 했다. 원고 당 8000자 이상을 썼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 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인터뷰가 처음인 보통 사람을 인터뷰했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인터뷰이의 삶의 태도를 배웠다. 인터뷰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남편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인터뷰를 한다는 게 내게는 덕을 쌓는 일인 것 같다고. 좋은 이야기를 꼭꼭 씹어서 풍요로워진 사람은 나인데 인터뷰이에게 과분한 감사 인사를 들을 때마다 덕을 쌓는 기분이 든다. 작업 방식과 내용을 존중해 주는 프로젝트 담당자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아래는 인터뷰이에게 받았던 피드백.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심이 차오를 때마다 읽어야지. 고맙다는 표현에 인색한 인간으로서 이렇게 다정한 피드백을 받을 때면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덕을 더 많이 쌓아야겠다.



-1월에 <나를 키운 여자들>이 나오고 한동안 글쓰기를 멀리 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꺼내 놓은 느낌이랄까. 내가 하는 생각이, 내가 쓰는 글이 내가 지겨웠다. ‘좀 더 차오르면 써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손 놓고 있으니 안 쓰게 되더라 ㅎㅎㅎ 마감과 원고료의 힘을 빌려서 오마이뉴스에 ‘문제적 여자들'을, 엘르 코리아 온라인판에 ‘여자 읽는 여자'를 연재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를 키운 여자들>은 내게 현실 인식을 하게 해 준 책이었다. ‘아 에세이 작가로서 나는 이 정도구나.’ 그런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니 왜 계속 글을 써야 하는지 알겠다. 글을 써야 깨어있을 수 있겠구나. 고여 있다 썩지 않겠구나. 내년부터는 좀 더 밖으로 시선을 돌려보고 싶다.


아이 친구들과 함께 다녀온 설악산 @홍밀밀


-올해 날날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긴장을 많이 했는데 아이는 생각보다 너무 잘 적응했고 나와 남편이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 부모됨에 대해 많이 고민했던 한 해였다. 이 이야기는 차차 정리해 봐야지.


해찬이 보러간 날 @홍밀밀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을 때마다 NCT를 보면서 버텼다ㅎㅎㅎ NCT 해찬에 빠져서 H.O.T 이후 처음으로 아이돌 팬덤의 세계에 발을 담갔고 NCT 127 콘서트에도 다녀왔다. 해찬이가 1년 내내 활동해서 나도 덩달아 바빴다. 내년에는 NCT 드림 콘서트 가는 게 목표! 해찬아 건강하게 오래오래 노래하고 춤춰주렴. 


-종교는 없지만 지난해와 올해는 기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평온'을 바랐다. 얼마 전 설악산에 갔을 때 내년에는 ‘모험'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했다.


-아래는 올해 작업했던 인터뷰 작업물 목록. '인터뷰의 뒷면' 연재도 차근차근 해야지.



[지학사-나의 엄빠일지]



[지학사-선생님의 B면]



[평생학습e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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