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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Sep 29. 2019

그 거대한 남자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이해와 용서가 아닌 사랑에 대해, <애드 아스트라>

*이 글에는 영화 <애드 아스트라>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있습니다.



우주비행사 로이는 한 발짝 떨어져 관조하는 사람이다. 얼굴에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는 심장 박동 역시 어떠한 비상 상황에서도 좀처럼 빨라지지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건 우주를 항해하고 탐험하는 것 이외에는 없어 보인다. 가족도 친구도 지구에서의 생활도 그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밖에서 볼 때는.  

로이는 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지 의식하기에 분노도 슬픔도 기쁨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다. 항해를 떠날 때마다 수시로 자가 심리 진단을 받아야 하는 삶. 아마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을 그렇게 훈련시켰을 것이다. 우주복으로 갈아입고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며 그는 출구만 바라본다. 혼자가 될 수 있는 출구.

로이에게 우주는 두렵고 알 수 없는 세계가 아니라 지구를 벗어나 숨을 수 있는 거대한 탈출구다. 강인한 엘리트 우주인 로이는 오직 혼자 있을 때만 자신의 뒷면을 돌아본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 걸까. 자책하고 자학한다.

영화 초반부를 보고 있으면 귀가 먹먹해지면서 마치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는 것 같다. 우주 해적과 격렬한 추격전을 벌이는데도 로이의 침착한 표정 때문인지 긴박한 느낌이 크게 들지 않는다.

심지어 오래전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우주 어디선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도 로이는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건조하게 반응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로이는 관찰자의 시선에서 다른 사람을 바라본다. 30년 넘게 달을 항해한 프루이트가 왜 여전히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건지 궁금해하고, 다른 우주 비행사의 긴장한 표정을 재빠르게 포착한다.


자신의 영웅이자 우주였던 아버지의 상상 못 했던 비밀을 알게 된 후에도 그는 크게 실망하거나 충격받기보다는 홀로 질문한다.  

“무엇이 그를 망가뜨렸을까, 아니 그는 이미 망가져 있었을까.”



무엇이 그를 망가뜨렸을까



미션 수행을 위해 아버지를 찾아 지구에서 달로, 달에서 화성으로, 화성에서 해왕성으로 이동하면서 로이는 굳게 끼고 있던 팔짱을 푼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알지 못했던 혹은 외면했던 진짜 삶, 진짜 우주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궁금했다. 로이는 아버지가 원망스럽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우주 비행사가 된 것을 보면 분명 로이에게 아버지는 자랑스러운 영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 자식 관계가 그렇듯 로이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고 동시에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와 다르게 살기 위해 가슴속에 있는 분노를 숨기며 살았고, 자신의 껍데기가 아닌 내면을 보여줄 가족도 친구도 만들지 않았다. 만들지 못했다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해왕성을 향해 70일 넘는 시간을 홀로 무중력 상태로 항해하는 로이. 현실과 비현실, 기억과 환상이 뒤섞이고 로이는 지치고 피폐해져 간다. 속으로만 말을 삼키던 로이는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한다.

“난 혼자야, 난 혼자야.”
 
늘 혼자라 외로움도 모를 것 같던 로이는 생명체라고는 자신밖에 없는 우주선에서 극한의 고독을 경험한다.

그렇게 해왕성에 있는 리마 프로젝트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미 생명을 잃어버린 시체들이 무중력 상태에서 둥둥 떠다닌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사람, 로이의 아버지 클리포드뿐.



 그게 가능한 일일까



수십 년 만에 우주에서 만났지만 부자의 상봉은 그리 감격스럽지 않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는 로이에게 아버지는 자신의 집은 이곳이며, 지구로 돌아갈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고 말한다. 아내도 로이도 로이의 알량한 꿈도 자신에게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

아버지의 날 선 말을 들으며 로이는 말한다. 안다고. 그래도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클리포드 역시 홀로 우주를 떠돌면서 로이처럼 수없이 자책하고 자학했을 것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 걸까. 그렇게 혼자인 시간을 견디고 견디다 끝내 손 쓸 수 없이 망가져버렸을 것이다.

너무나 아름답지만 아무것도 없는 우주. 손에 잡히지 않는 것만 좇다가 정작 곁에 있는 사람을 모두 떠나보낸 그에게 남은 건 아집밖에 없다. 자신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는 신념. 하지만 그 말을 하는 클리포드의 얼굴은 이미 너무나 지쳐있다.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던 로이는 아버지처럼 혼자가 되었고, 끝없이 외로워졌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어쩌면 두 사람에게는 두 사람만이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두 사람은 손잡고 집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았...

잠깐. 그게 가능한 일일까.

지구를 위협하는 이상 전류를 내보내는 리마 프로젝트를 폭파하고, 아버지를 지구로 데려가려는 로이.

전혀 다른 궤도를 돌던 아버지와 로이는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갑자기 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벗어진 머리, 마른 몸, 작아진 키



위악을 부리는 아버지를 바라보던 로이의 표정이 자꾸만 떠오른다. 흐르던 눈물이 마른 뒤 체념한 듯한 얼굴. 해왕성에 도착하기까지 그 험난하고 기나긴 시간 동안 로이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걸까.


꽤 오랜 시간, 내게도 아빠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권위적인 아빠가 무섭고 싫으면서도, 아빠의 마음에 드는 딸이 되고 싶었다.


언젠가는 내가 힘을 키워 아빠를 꼭 이겨야지, 다짐하곤 했다. 보기 좋게 복수를 할 거라고. 그런데 내가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고 더 이상 아빠 앞에서 떨지 않으며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됐을 때, 아빠는 너무나 작고 약해져 있었다.


곧 칠순이 되는 아빠는 30년 넘게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온화하고 다정한 얼굴로 손자와 놀아주다가도 금세 지쳐 방에 누워있다. 아빠는 더는 내게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럴 기운조차 없어 보인다.


벗어진 머리, 마른 몸, 나보다 작아진 키. 그 크고 무섭던 남자는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리고 나는 불쑥불쑥 내게서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아빠의 모습을 발견한다.


“하지만 뭔가를 이해한다면 그것을 용서할 수는 없다. 용서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해 하는 것이다.”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


"알아요"라는 로이의 말은 이해였을까, 용서였을까. 나는 로이가 이해와 용서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말을 해서 좋았다.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고 용서하지는 못해도 사랑은 할 수 있으니까. 연민의 빛깔이 더 진한 사랑.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내가 아이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고 믿는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클 거라고. 그 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이런 영화를 볼 때면, 가족이라는 존재는 왜 이리도 징글징글한지, 한 사람의 인생에 왜 이렇게 깊은 영향을 미치는 건지 원망스러워진다. 부모가 된다는 건 원죄를 짓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로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식들은 또 나름의 답을 찾아가겠지만 말이다.


로이 역을 맡은 브래드 피트의 연기는 놀라웠다.

어린 시절 <조 블랙의 사랑>에서 본 해사한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그가 얼마나 멋지고 깊게 나이 들어가고 있는지 감탄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한참이나 다리에 힘이 들어오지 않았다. 힘겹고 아름다운 우주 여행을 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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