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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Sep 07. 2019

<벌새>, 엄마는 몰랐던 전쟁

은희를 보며 열네 살의 나를 만났다

*영화 <벌새>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벌새> 스틸컷


영화의 첫 장면.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 심부름을 다녀온 것 같은 은희는 문을 두드리며 애타게 엄마를 부른다.


“엄마! 엄마!!!”


은희의 목소리는 점점 절규에 가까워진다. 작은 주먹으로 문을 부술 기세로 현관문을 두드리며 몇 번이고 다시 초인종을 누른다.


대체 저 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혹시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그럼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거지. 엄마를 찾는 은희를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그러자 카메라는 무심하게 902호 숫자를 비춘다.


이어 장면이 바뀌고 은희는 터덜터덜 계단을 올라간다. 1002호. 초인종을 누르자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문을 열어준다. 은희는 멋쩍은 표현을 지으며 집으로 들어간다. 엄마는 은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리 불러도 엄마가 나를 봐주지 않을 것 같은 때가 있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때. 내게 무한한 사랑을 주지 않는 엄마가 야속했다. 나도 엄마를 싫어해야지 마음먹었다가 이내 또 엄마의 사랑을 갈구했다.


집안의 공기는 아빠의 기분에 따라 바뀌었다. 밥상 위에서 아빠의 심기를 살피며 이 말할까 저 말할까 말을 굴렸다. 아빠에게 호되게 혼나 눈물을 쏟는 날이면 언젠가 힘을 키워 아빠에게 복수할 날을 꿈꿨다. 3살 터울 남동생은 도무지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존재였다.


은희처럼 나도 집에서 찾을 수 없는 애정을 밖에서 찾았다. 중학생 시절, ‘오빠들’과 친구들은 내 모든 것이었다. 매일매일 강타 오빠에게 편지를 쓰고, 친구들과 우정인지 사랑인지 모를 관계를 쌓았다. 수많은 쪽지와 편지를 주고받고 라디오 DJ라도 된 것처럼 내 목소리와 좋아하는 음악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선물했다.


그 시절 여자 아이들은 늘 운명의 단짝을 꿈꿨다. 빨간 머리 앤에 나오는 앤과 다이애나 같은 소울메이트를. 하지만 친구관계, 특히 여자 아이들의 관계는 결코 쉽지 않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우정도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마음이 상하고 멀어졌다. 영화에서 은희와 지숙이 그랬던 것처럼 매섭게 절교를 했다가 엉엉 울면서 다시 친구가 됐다. 모든 관계가 무겁고 투명했다. 그래서 힘겨웠다.



은희는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바란다. 내 눈이 사슴 같다고 할 때는 언제고 다른 여자애 머리를 만지던 남자 친구를 다시 받아주고, 아무 맥락도 없이 내가 좋다고 하는 여자 후배와 어떻게 잘해볼 수 있을까 고민한다. 선생님이 너무 좋다며 영지에게 와락 안긴다.


꿀을 찾아 1초에 80번 날갯짓하는 벌새처럼 14살 은희의 마음속에는 늘 전쟁이 일어난다. 관계에 상처 받고 좌절하면서도 은희는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은희를 낳은 엄마와 아빠는 은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아니,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은희가 목 뒤에 혹이 생겨 안면마비가 올 수도 있는 큰 수술을 한다고 하자 그제야 은희를 잠시나마 쳐다봐 준다.


아마 여유가 없어서 그랬을 거다. 먹고 사느라 힘들어서. 은희의 엄마 아빠는 대치동에서 방앗간을 하며 삼 남매를 키운다. 엄마는 매일 손이 벌겋게 익도록 떡을 만지고 손님에게 늘 웃어야 한다. 함께 방앗간을 운영하는 아빠는 자꾸 겉으로 나돈다.


피로와 근심이 가득한 얼굴, 굽은 등, 덕지덕지 붙은 파스, 구멍 난 스타킹, 영화에 계속 등장하는 식탁 위를 가득 채운 반찬... 엄마는 몇 번이나 저 상을 차리고 또 치웠을까.


그 시절에는 엄마가 미웠고 아빠가 싫었다.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이 우스웠다. 엄마가 되고 나서 영화를 보니 엄마의 지친 뒷모습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허겁지겁 감자전을 밀어 넣는 은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얼굴도.


단단한 얼굴



동시에 그때의 나도 다시 떠올랐다. 단발머리에 교복을 입고 커다란 책가방 줄을 꼭 쥐고 다니던 소녀가. 나도 그때 참 외로웠겠구나, 막막했겠구나.


생각은 10년 후 지금의 아이가 중학생이 됐을 때로 뻗어 나간다. 세 돌이 지난 아이에게도 내가 모르는 시간,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겠지. 엄마가 채워줄 수 없는 시간을 아이는 어떻게 보내게 될까. 그 시간이 아이를 성장시키리라는걸 안다. 그런데도 아직은 엄두가 안 난다.


다행히 은희에게는 영지가 있었다. 대학 휴학생이자 한문학원 선생님인 영지. 나는 영지가 ‘내가 해봤는데’가 아니라 ‘나도 잘 모르겠지만’이라고 말하는 어른이어서 좋았다. 영지는 은희의 마음을 들여다 봐준 유일한 어른이었다.


어른이 되어보니 확신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난다. 엄마가 되고 나서는 더욱 그렇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세상이 더 많고, 사람은 모두 다르며, 어른이 된다고 해서 그 모든 걸 한순간에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아이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잘 모르겠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 영지는, 자신이 확실히 아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할 줄 아는 어른이다.


“누군라도 널 때리면 맞서 싸워.” 그 말을 할 때 영지의 단단한 얼굴이 참 좋았다. 은희는 살아가면서 그 얼굴을 자주 떠올리게 될 거다. 엄마만 아이를 키우는 건 아니다.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다시 영화의 첫 장면. 서른여섯이 된 지금도 나는 종종 그런 느낌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나와 연결된 관계의 끈이 다 끊어지고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문을 두드리고 소리쳐도 아무도 응답해주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


영화 <벌새>는 대학원 재학 시절 김보라 감독이 꿨던 꿈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어디에도 뿌리 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것 같던 유학생 시절, 중학교 3학년을 다시 다니는 꿈을 꿨다고. 그러면서 자신에게 그 시절 풀리지 않은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성찰하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쿨한 척, 괜찮은 척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내 안에는 열네 살의 내가 남아있다는 걸 영화 벌새는 알려주었다. 그 시절을 통과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도.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영지의 편지


언젠가 중학생이 된 아이와 함께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


 


제가 저자로 참여한 책이 나왔어요. 나를 지키고 싶은 엄마들 마더티브가 쓰고 그린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주요 온라인 서점,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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