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언니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by 홍난영

2013년 12월 31일.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개봉했다. 영화를 자주 보지 않는 내가 어째서 개봉일에 맞춰 굳이 그 영화를 봤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2014년 새로운 해가 오기 전 나는 그 영화를 봤고, 마음이 요란하게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시원하게 뻗은 아이슬란드의 내리막길을 스케이트보드로 거침없이 내려오던 월터였다. 영화 속 상황은 꽤나 긴박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나는 그가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도 자유를 느껴보고 싶었다.


2013년은 10년간 투병을 한 엄마가 돌아가신 지 3년이 되던 해였다. 13년 전 나는 스물여섯이었고 유난히 기억나는 건 그 해 크리스마스였다. 나는 입원실에서 잠시 나와 서글픈 마음으로 병원 복도를 걸었었다. 물론 엄마는 훨씬 더 절망적이었겠지만.


다음 해부터 나는 집에 있으며 엄마의 보조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내 일을 하고 싶어 알바라도 할라치면 영락없이 엄마는 쓰러지셨다. 나는 갇혀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나는 갇혀있었다. 10년간 갇혔던 몸과 마음은 벗어나는 방법을 잊은 상태였다.


어느덧 나는 마흔을 바라보고 있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도시에서 나는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던 그때, 나는 월터를 만난 것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상상도 현실이 되길 간절히 바랬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열렬하게 상상 해보리.


그래서 떠나보기로 했다. 월터처럼. 하지만 잔뜩 움츠러든 내게 해외여행은 너무나 먼 꿈이었다. 그래, 제주로 가자. 대한민국의 가장 끝, 하지만 한국어는 통하는 곳.


그런데 가서 뭐하지?
사람들은 어떻게 여행을 하지?


가고자 했으나 어떻게 가야 할지 몰랐다. 이건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였다. 그때 내 머리를 스치는 것 하나, 국수. 아, 맞다. 나 서울에서도 국수 여행을 했었지. 그때 좋았잖아. 괜히 탐험하는 느낌도 들었고 말야(나는 2011년에 책 《서울 누들로드》를 출간했다).


지푸라기를 잡듯 국수 하나 부여잡고 제주로 떠났다. 일단 국수 중심으로 제주를 돌며 그 주변에 있는 여행지를 다녀보기로 했다. 남들은 여행지가 메인이었을지 몰라도 나에겐 국수가 메인이었다. 하지만 그 국수 덕분에 ‘나 혼자(!)’ 제주의 동서남북을 둘러볼 수 있었다. 태어나 한 번도 혼자서 여행을 해보지 않았던 내가 말이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그저 국수를 먹고 소화를 시켜야 했으니 걸었고, 또 국수를 먹고, 또 걸었을 뿐이었다.


이게 반복되다 보니 최장 7박 8일 동안 거의 국수만 먹었다. 한 끼는 밥을 먹었는데 그나마도 막연하게 ‘이쯤 되면 밥이 먹고 싶어 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그냥 먹은 노르웨이산 고등어구이였다.


그렇게 첫 번째 국수 여행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그 후에도 여러 번 다시 제주를 찾아 국수여행을 했다. 그러다 급기야는 제주로 이사해 국수를 먹었다.


그러니 한 것은 ‘제주 국수 여행’이지만 사실은 인생 여행이었다. 국수를 핑계로 제주를 여행하다 결국 다 버리고(?) 제주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제주라는 위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쩌다 제주를 선택했고 첫 선택지가 제주였기에 제주로 내려온 것뿐이다. 중요한 것은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먹는언니의 상상도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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