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몸에도 이상한 반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집에 있으면 왜 머리가 헝클어지는 지 모른는 것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변화들이다.
첫 번째로는 생리 주기가 불안정해졌다. 칼같이 정확했던 나의 생리주기가 요동을 친다. 부정 출혈도 가끔씩 생긴다. 처음엔 임신인 줄 알고 임테기를 몇 번이나 낭비했는 지 모른다. 혹시 코로나 때문에 생리 주기가 불안정해질 수 있나 싶어 "코로나 생리" 라고 검색을 해 보니, 재난 상황에서 여성들의 '생리 불순'이 생기기도 한다는 뉴스가 여럿 뜬다.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마음에 약간 안심하기도 했다.
두 번째로는 고기와 단 음식을 더 많이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원래 영국에서 채식을 오래 했었고, 채식을 안 하지 않기 시작한 이후에도 집에서는 최대한 고기 섭취를 안 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봉쇄로 인해 외식이 어려워지고, 삶의 즐거움이 먹는 것으로 축소되자, 밥이라도 맛있게 먹어야지 하는 마음에 육류를 평소보다 더 많이 섭취하게 되었다. 또한 평소에는 잘 먹지 않던 달달한 디저트류들을 입에 달고 살게 되고, 특히 핫초콜렛과 같이 만족감을 주는 음료들을 더 많이 찾게 된다.
세 번째로는 그래서인지 변비가 생겼고, 인생 처음으로 치질도 경험하게 되었다. 운동을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고, 몸의 순환이 잘 안 되니 아침에 일어나 배변을 보는 일이 가장 큰 과제가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말로만 듣던 치질까지 걸려 꽤나 고생을 했는데, 다시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바꾸니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오는 듯 하다.
네 번째로는 눈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봄이 되면 한국에 가야지, 이 생각만 하며 일 년을 버텼는데, 전국 봉쇄라니. 새해부터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사소한 일에도 툭하면 눈물이 난다. 최근에는 영화 '미나리'를 보고 윤여정을 보며 펑펑 울었다. 외국에 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상황이 워낙 암울하니 계속해서 하게 된다.
다섯 번째로는 각종 쓰레기같은 드라마, 영화들을 마치 정크 푸드를 섭취하듯 시시 때때로 많이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머리가 복잡하다보니 생각하게 하는 작품성 있는 영화보다 그냥 아무 생각 하지 않아도 되게 해주는 영화들을 찾게 된다. 온갖 고정관념에 허풍으로 버무려진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끝까지 다 보다니...
몸과 마음이 엉망진창인 요즘, 힘들 법도 한데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 영국인 특성상 다들 매우 차분하고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을 보며 대단하다고 느낀다. 홈스쿨링에 지친 친구는 매일 끼니를 라면으로 떼운다고 한다. 엊그제는 우체국 콜센터에 전화를 했는데 대기 시간 40분에 상담원은 숨을 헐떡이며 전화를 받는다. 모두가 힘들고 예민한 시기에 불편해도 서로 조금씩 더 이해하고 살아가는 분위기가 있다. 무능의 끝을 보여주는 정부 밑에 그나마도 차분한 국민들이 있어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