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석철 Nov 06. 2019

82년생 김지영

82년생 남자가 바라본 82년생 김지영

  요즘 커플들 사이에서 남자 친구가 개념이 탑재되어 있는지 아닌지 알아보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82년생 김지영 보러 갈래?"


  여자 친구가 이렇게 물어봤을 때, 마지못해서라도 같이 보러 가는 남자는 그래도 평가가 나쁘지 않다. 잠재적 결혼 상대자로 통과?라는 얘기다. 그런데 갑자기 돌변해서 편견이 가득한 언어 쓰레기를 입에 올리는 남자들은 다시 생각해보라는 우스갯소리가 여자들 사이에서 떠돈다.


  인터넷에서는 82년생 김지영의 댓글에 대한 좋아요/싫어요가 수 만개나 달린다. 보통 정치적인 댓글에 좋아요/싫어요는 일방적인 비율을 보인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댓글은 좋아요/싫어요 비율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만큼 서로의 입장 차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주변에 2 커플이 헤어졌다.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의견 차이로 시작된 말다툼이 원인이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었길래 그렇게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인지 수능을 앞둔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서 책과 영화 모두 보았다. 


코엑스에 걸려 있는 광고판. 생각보다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영화를 보러 왔다. 남자 혼자 여자 혼자 온 분들도 눈에 띄었다.


  책의 저자는 78년생 여자이다. 내 누나가 79년생이니깐 대략 비슷한 사회적 경험을 공유하면서 자랐을 것 같다. 추측컨대 책과 영화에서 나오는 김지영이 겪은 일은 아마 저자가 직접 경험했거나, 저자의 지인들이 경험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책에서 나오는 에피소드들 중에서 내가, 누나가, 우리 가족이 경험했던 내용이 꽤나 많기 때문이다. 


  82년생 김지영에서 이야기하는 핵심 키워드를 세 가지로 정리해봤다. 



1. 남아선호사상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한 반에 55명 정도 있었다. 내 이름이 '홍'으로 시작하다 보니 항상 끝번호여서 기억하고 있다. 30명 정도가 남자였고 25명 정도가 여자였다. 그래서 늘 짝이 한/허/황 등으로 시작하는 남학생이었다. 


  이러한 성비 불균형은 남아선호의 결과였다. 그리고 당시 뉴스에서 지금의 청소년들이 앞으로 결혼할 시기가 되었을 때 남자 몇% 는 결혼 상대자가 없을 것이라는 내용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혼자 골방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그게 생각보다 무서운 말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통계적으로 대한민국 남자 중 누군가는 대한민국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남아선호는 자연스럽게 남녀차별로 이어졌다. 개인적인 경험만 해도 어릴 적 할머니가 누나보다 남동생인 나만 데리고 다니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사줬던 기억이 난다. 너무 대놓도 노골적으로 차별해서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감히' 귀한 내 손자 것에 욕심을 내? 남동생과 남동생의 것은 소중하고 귀해서 아무나 손대서는 안 되고, 김지영 씨는 그 '아무'보다도 못한 존재인 듯했다. p. 25


  일상에서 밥 먹을 때, 옷을 살 때, TV를 볼 때, 시장을 갈 때, 청소를 할 때, 간식을 먹을 때 계속해서 소소한 차별이 이어졌다. 어릴 적 이런 경험들을 그냥 그때는 그랬다고 씁쓸하게 한 번 웃고 넘어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평생 가슴에 상처로 남아 있는 사람도 있다. 


  당시에는 사회적으로도 어디 가나 이러한 차별적인 요소들이 만연해서, 이를 지적하는 사람이 오히려 '유별난' 사람으로 인식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농경사회의 노동력으로써 가치가 있었던 남자를 선호하는 현상이 지금은 어떨까?


아들을 가져서 시부모님께 당당해졌다는 얘기, 배 속의 아이가 아들인 것을 알고 비싼 음식들을 마음껏 사다 먹었다는 얘기를 김지영 씨 또래의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게 했다. p.142


  예전에 상담을 했던 한 학생이 떠오른다. 중3 남학생이었는데 게임중독이 심하다고 찾아왔다. 얘기를 들어보니 아이가 새벽 6시까지 게임을 하고 학교를 못 가는 날도 있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중증 수준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어머니의 반응이었다.


  3대 독자인지, 4대 독자인지 아주 힘들게 얻은 아이라서 존재 자체만으로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고 애지중지 하단다. 그저 숨만 쉬는 것을 보고만 있어도 본인은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아들을 낳고 시집에서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고 당당해질 수 있어서 아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했다. 


  그 학생은 하루 종일 게임만 해서 그런지 인지 발달 상태가 중3 수준이 아니었다.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 가까웠다. 어머니도 그 제서야 조금 걱정이 되어서 상담을 와본 것이다. 앞으로 게임을 조금만 줄였으면 좋겠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며 아이의 볼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쓰다듬으며 상담실을 나갔던 기억이 난다. 


  남아선호사상은 남매들 간에서도 차이를 드러낸다. 당시 딸이 남자 형제들 뒷바라지하는 경우는 흔했다. 김지영의 어머니 오미숙 씨도 오빠들 학비를 버느라 본인의 꿈을 포기했다.


"나도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국민학교 때는 오 남매 중에서 엄마가 제일 공부 잘했다. 큰외삼촌보다 더 잘했어." 
"근데 왜 선생님 안 했어?" 
"돈 벌어서 오빠들 학교 보내야 했으니까. 다 그랬어. 그때 여자들은 다 그러고 살았어." 
"그럼 선생님 지금 하면 되잖아." 
"지금은, 돈 벌어서 너희들 학교 보내야 하니까. 다 그래. 요즘 애 엄마들은 다 이러고 살아." p. 36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는 외삼촌들과 거의 왕래하지 않는다. 충분히 각오하고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희생에 대한 후회와 원망은 깊고 길었고, 결국 그 응어리가 가족 관계를 망쳤다. p.74


  당시에는 집집마다 이런 스토리들이 흔했다. 우리 집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울 어머니는 언니가 한 명 남동생이 두 명 있는데, 처음에는 언니가 남동생들 학비를 벌었다고 한다. 그런데 언니가 예상보다 결혼을 일찍 하면서 그 의무? 가 울 어머니에게로 왔다고 한다. 


  어머니는 동생들 학비를 벌다가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못 하겠다고 할머니에게 말하자, 할머니는 아들들 공부도 못 시킬 바에야 인생이 아무런 의미 없다고 죽는다고 난리 치는 통에 어머니는 울면서 큰 동생 고등학교까지는 졸업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을 한 후에 작은 동생을 울 아버지가 서점 수습생으로 거두어 주었다.


  다행히 큰삼촌은 어릴 적 누나들 덕에 공부한 것을 잊지 않고 작은 보답? 이나마 꾸준히 해서 지금도 사이가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작은 삼촌은 어머니 표현을 비리자면 '배은망덕'한 몹쓸 놈이 되어서 서운한 말들로 서로 상처를 주다가 소설에서 처럼 왕래가 끊겼다. 


  요즘은 '딸바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오히려 '여아선호'가 된 듯하다. 하지만 부부가 조용히 나누는 대화는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다. 요즘도 자기 전에 이런 대화를 나누는 부부가 있을까?


"만약에 지금 배 속에 있는 애가 또 딸이라면, 은영 아빠는 어쩔 거야?"
"말이 씨가 된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자." p. 29



2. 육아


  주변 결혼한 지인들의 아내를 보면 다들 대학을 나왔고 석/박사들도 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는 순간 여자들의 직업은 한 가지로 수렴했다. '엄마'이다. 누군가의 엄마가 되는 순간 삶이 형태는 신기하리 만치 닮아간다.


  영화에서도 서울대 공대 나온 엄마가 나온다. 요즘 아이 구구단 가르쳐주고 있다며 이럴 거면 왜 그렇게 공부를 했나 웃으면서 얘기한다. 영화에서는 한 바탕 웃으면서 지나가는 에피소드였지만, 사실 이는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한 번 웃고 넘어갈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본인이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사회생활을 해보니 너무 힘들어서 오히려 사랑스러운 내 아이, 내 가족을 위해서 집안일을 하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했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 모든 개인은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니. 


  하지만 일을 더 해서 승진도 하고 인정도 받고 싶은데 자의 반 타의 반 일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면, 그리고 앞으로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희박해진다면 어떨까? 


  영화에서는 배우 정유미 씨의 표정을 통해서 이런 복잡미묘한 심경을 느낄 수 있다. 아이를 보면 너무 이쁜데, 본인의 180도 달라진 인생을 생각하면 우울해지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남자들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돌보느라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는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그래도 결혼과 임신을 마냥 기뻐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의 젊음도, 건강도, 직장, 동료, 친구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도, 계획도,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그래서 자꾸 잃는 걸 생각하게 돼. 근데 오빠는 뭘 잃게 돼?"
"나도 지금 같지는 않겠지. 아무래도 집에 일찍 와야 하니까 친구들도 잘 못 만날 거고. 회식이냐 야근도 편하게 못할 거고. 일하고 와서 또 집안일 도우려면 피곤할 거고. 그리고 그, 너랑 우리 애랑, 가장으로서 부양하려면 책임감도 엄청 클 거고." p. 136


  사회적으로도 아까운 인재가 사라지는 것이다. 비행기가 추락할 때 비행기 조종사는 탈출한다. 비행기 가격보다 숙련된 조종사 한 명을 길러내는 비용이 더 들어가기 때문에 비행기보다 조종사가 우선인 것이다. 만약 비행기가 더 소중하다면 어떻게 해서든 마지막까지 비행기를 살려보라고 비상탈출장치 따위는 애초에 장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원도 없고 그나마 대부분이 산인 조그만 땅 떵어리에서 이만큼 살 수 있는 건 인적자원에 아낌없이 투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성장시킨 고급두뇌들 중 50%가 육아로 인해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다. 


  아내가 일을 할 수 있도록 영화 속 남편은 육아휴직을 쓰려고 했지만, 예상치 못한 어머니의 반발에 직면한다.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 김지영 씨는 몸도 성치 않은데 남편 앞길을 막는 이기적인 여자라는 비난의 화살이 날아든다. 결국 재취업은 무산되고 다른 엄마들과 같이 경력이 단절되고 만다.


결국 부부 중 한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그 한 사람은 당연히 김지영 씨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닌데 그래도 김지영 씨는 우울해졌다. p. 143


  회사에는 육아휴직이라는 유명무실한 제도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공무원, 공기업에서 처럼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회사가 얼마나 있을까? 내가 육아휴직을 쓰면 동료들이 더 힘들어지고, 육아휴직을 쓰지 않으면 계속 안 좋은 선례를 남기게 되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러한 사회적 시스템은 결국 소중한 내 딸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될 것이다. 그런데 현재 딸을 키우는 아빠들과 얘기를 해보면 충격적인 말을 들을 수 있다. 


"어차피 딸은 시집가면 그만인데 적당히 공부하면 되지 머. 와이프가 왜 그렇게 공부로 스트레스를 주는지 이해가 안가." 


  그렇다. 지금의 아빠들도 사회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면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취업 준비로 힘들어하던 대학생 김지영 씨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넌 그냥 얌전히 있다가 시집이나 가." p. 105


  요즘 아빠들은 여기에서 얼마나 인식이 발전했을까? 기술 발전으로 시대가 변하고 삶이 변하고 세대가 바뀌었는데 실제 우리 삶의 본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앞으로는 어떨까? 남자들의 인식으로 보건대 앞으로도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여성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배불러까지 지하철 타고 돈 벌러 다니는 사람이 애는 어쩌자고 낳아?" p. 140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 p. 164


  사실 여유 있게 아이를 키우는 가정은 매우 극소수이다. 대부분은 어떻게든 아끼고 아껴서 애 분유 값이라도 벌어보려고 애쓰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 없이 돌아다니는 말에 대부분의 엄마들은 상처를 받는다. 그 결과 결혼하는 커플들이 점점 줄어들고 출산율도 2018년 0.98명으로 떨어졌다. 한반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소설에서 영화에서 김지영 씨의 남편은 꽤 괜찮은 사람으로 나온다. (공유가 훈남이라서 더 괜찮아 보이는 것은 안 비밀.) 현실에서 그 정도의 남편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아내를 위해서 남편이 해줄 수 있는 건 딱히 없다.


정대현 씨는 가만히 김지영 씨의 어깨를 끌어다 안았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그저 등을 토닥이며 아니야, 그런 생각 하지 마, 라는 말만 반복했다. p.165



3. 직장 내 성차별


  아이가 태어나면서 여자들 경력이 단절되는 사회. 이런 사회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여자들은 어차피 오래 일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아예 뽑지 않거나, 누구나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전문성이 결여된 업무를 맡기지 않을까? 이런 우려는 사회에 진출하기 전부터 피부로 느낄 수 있다. 


50대 대기업 인사 담당자 설문 조사에서 '비슷한 조건이라면 남성 지원자를 선호한다'는 대답이 44%였고 '여성을 선호한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p.96


  취업을 준비하는데 남녀가 모두 힘들지만, 여자들이 느끼는 압박은 더 크다. 실제로 지인들이 이런 얘기를 자주 했었다.


"여자는 남자 스펙 하고 비슷하면 떨어지는 거고, 스펙이 더 좋아야 비슷하게 평가받고, 그렇다고 너무 뛰어나면 또 떨어지더라고."


기업에서 남학생을 원하는 뉘앙스였다, 군대를 갔다 온 것에 대한 보상이다, 등 그중에서 가장 절망적인 것은 학과장의 대답이었다.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회사에서도 부담스러워해. 지금 봐, 학생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줄 알아?" p.97


  학교 안에서도 남/녀 차별이 존재했지만, 그래도 비교적 소소한 문제들이었다. 같은 책으로 공부하고 같은 시험으로 평가를 받으니 학업의 과정과 결과가 꽤나 공정했다. 대학생들은 대부분 나이가 비슷한 20대라서 젊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고, 교수님들도 학생들과 소통을 해야 하고 또 모범을 보여야 하기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만한 언행은 자제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사회로 발을 내딛는 순간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사실 알려줄 수도 없다. 답이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거래처 미팅을 나갔단 말입니다. 그런데 거래처 상사가 자꾸 좀, 그런, 신체 접촉을 하는 겁니다. 괜히 어깨도 주물주물하고, 허벅지도 슬쩍슬쩍 만지고, 엉? 그런 거? 알죠?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김지영 씨부터. p.101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자료를 가지고 오면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피하겠습니다."
다른 면접자는 명백한 성희록이며 그 자리에서 주의를 주고, 그래도 고쳐지지 않는다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한 어조로 대답했다.
세 번째 면접자는 이렇게 말했다.
"제 옷차림이나 태도에 문제는 없었는지 돌아보고, 상사분의 적절치 못한 행동을 유발한 부분이 있다면 고치겠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김지영 씨도 씁쓸했는데, 한편으로는 저런 대답이 높은 점수를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후회했고, 그런 자신이 한심했다. p.102


  기업에 따라 조직문화가 다르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칼퇴근을 장려하고 불필요한 회식을 없애는 회사도 있다. 반면에 아직도 남성 중심의 마초 문화가 만연한 회사도 있다. 이런 회사는 회식도 많고, 술자리에서 은근슬쩍 성희롱과 성추행이 발생해도 술 먹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조직에서는 농담인지 성희롱인지 구분이 안 가는 말에 일일이 날카롭게 대응하다간 원만한 직장생활이 어렵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서민들은 성희롱 심지어 성추행을 당해도 이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마땅한 방법을 찾기도 힘들다. 결국 대부분 참게 되고 가해자들은 더 기세 등등하여 날뛰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결국 김지영 씨는 부장 옆에 앉았고, 따라 주는 맥주를 받았고, 강권에 못 이겨 몇 잔을 연거푸 마셨다. 김지영 씨는 얼굴형도 예쁘고 콧날도 날렵하니까 쌍꺼풀 수술만 하면 되겠다며 외모에 대한 칭찬인지 충고 인지도 계속 늘어놓았다. 남자 친구가 있느냐고 묻더니 원래 골키퍼가 있어야 골 넣을 맛이 난다는 둥 한 번도 안 해 본 여자는 있어도 한 번만 해 본 여자는 없다는 등 웃기지도 않는 19금 유머까지 남발했다. 무엇보다 계속 술을 권했다. 주량을 넘어섰다고, 귀갓길이 위험하다고, 이제 그만 마시겠다고 해도 여기 이렇게 남자가 많은데 뭐가 걱정이냐고 반문했다. p.116


  심각한 성추행을 당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해도 문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보통 높은 자리에 있는 남자가 직급이 낮은 여직원을 상대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만약 문제가 커진다면 법적 분쟁이 시작되고 누군가는 회사를 나가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 


  그런데 A팀장은 기업에서 핵심 부서를 책임지는 없어서는 안 되는 인력이다. 최근에 10억짜리 프로젝트를 따내서 이를 진두지휘하는 것도 A팀장이다. 반면에 B여사원은 다른 사람으로도 충분히 대체 가능한 대리이다. 


  도덕적 관점에서는 A팀장이 사과를 하고 퇴사를 해야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덕보다 자본이 더 힘이 세다. 이윤 추구를 최대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관점에서는 피해자인 B여사원이 나가는 것이 좋다.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가 되는 가짜 뉴스가 유통되고, B여사원이 회사에서 스스로 나갈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동일한 체급의 시합이 아니었다. 남자들만 키워주는 기업 분위기에서 여자는 전문성을 가질 수 없는 일에 투입이 된다. 하지만 신입사원이라 그저 주어진 일에 열심히 할 뿐이었다. 점점 경력이 쌓이고 중요한 업무를 맡을 시점이 되면 결혼-임신-육아의 사이클을 타게 된다.


  이쯤 되면 가정을 이루고 그 안에서 만족해야 하는 엄마의 역할과 남자들의 세계에서 험난하게 경쟁하며 살아가는 커리어 우먼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대부분 전자를 선택한다. 원해서가 아니라 사회도, 가정도, 돌아가는 분위기가 그렇게 해야 다른 사람들이 편하기 때문이다.


  여자가 계속 신입사원-주임-대리-퇴사-신입사원... 사이클을 도는 동안 남자들은 중요한 경력을 쌓아가며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재'가 되어간다. 애초에 공정한 경쟁이 아니었고 그들만의 리그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여자는 프로 의식이 없어."

  "여자는 시집가면 끝이야."

  "여자는 어차피 금방 나갈 거야." 


어느 날 문득 사무실을 둘러보았는데 부장급 이상으로는 여자가 거의 없었다. 10년 후 자신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고, 고민 끝에 사직서를 냈고, 이래서 여자는 안 된다는 비아냥이 돌아왔다. 선배는 여자를 자꾸 안 되게 만드니까 이러는 거라고 대답했다. p.98


 

에필로그


  한창 고도의 경제성장을 하던 70-8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이전 세대가 누리지 못했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더욱이 남자들은 가정에서, 사회적으로 온갖 특혜를 받으면서 자랐다. 특권에 계속되다 보니 당연한 줄 알게 되었다. 


  요즘에는 비교적 남녀가 평등해지고 오히려 여성들이 더 살기 편한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 여성의 기회를 박탈하는 악습? 들이 남아 있다. 


  20-30대 여성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이 책이 왜 문제가 되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반면에 20-30 남자들과 얘기해보면 공감하는 사람도 있고 억지로 끼워 맞춘 비련의 여주인공 소설 따위 읽을 가치가 없다고 흥분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남자도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82년생 김지영은 여자만 힘들다는 얘기는 아니다. 여자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점들을 바라본 것이다. 앞으로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이제부터 우리의 몫이다.


  김지영은 결국 회사의 구조를 알고 퇴사를 결심한다. 그리고 회사를 떠나면서 질문을 던진다.


  "남은 이들은 행복할까."


여직원들을 오래갈 동료로 여기지 않는다. 못 버틸 직원이 버틸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보다, 버틸 직원을 더 키우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게 대표의 판단이다. 그동안 김지영 씨와 강혜수 씨에게 까다로운 클라이언트를 맡긴 것도 같은 이유였다. 두 사람을 더 신뢰해서가 아니라, 오래 남아 할 일이 많은 남자들에게 굳이 힘들고 진 빠지는 일을 시키지 않은 것이다.
김지영 씨는 미로 한가운데 선 기분이었다. 성실하고 차분하게 출구를 찾고 있는데 애초부터 출구가 없었다고 한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안 되면 벽이라도 뚫어야 한다고 한다. 사업가의 목표는 결국 돈을 버는 것이고, 최소 투자로 최대 이익을 내겠다는 대표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효율과 합리만 내세우는 게 과연 공정한 걸까.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는 결국 무엇이 남을까. 남은 이들은 행복할까. p.123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