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석철 Oct 31. 2019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놓인 평범한 사람들, 난민.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제목과 표정이다. 그는 우리가 보지 못한 어떤 것을 본 것일까?


  밖에서 날아든 총알에 부모, 형제들이 죽는 모습을 목격했다면 그곳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날아다니는 총알과 폭탄을 피해 집을 버리고, 마을을 버리고, 조국을 버리고 일단 배에 몸을 실어야 한다. 어디로 가는 배인지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다. 


  그런데 지옥에서 탈출에 성공했다고 해서 고난이 끝난 것은 아니다.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새캄한 바다 위에서 초 단위로 희망과 절망 바뀌는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바다 한가운데서 배는 성난 파도 속에 뒤집어지고... 그렇게 가라앉은 사람들이 정확히 몇 명인지 셀 수도 없다.


  그런데 기막힌 우연과 행운의 연속으로 총알을 피하고, 대포를 피하고, 파도를 피해서 목숨이 붙어 있는 채로 인접 국가들로 무사히 탈출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름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난민'이라 부른다. 


  신기한 것은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볼 때 생겼던 안타까운 마음이, 살아서 우리 곁에 온 사람들을 볼 때는 불안한 마음으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가짜 난민, 잠재적 범죄자의 낙인을 찍기도 한다.


2015년 9월 세 살의 아일란 쿠르디는 전 세계인들에게 말없이 질문을 던졌다.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운 가요?"

  

  먼 나라 상황에 대해서는 이성적으로 얘기를 잘하던 사람들이 막상 우리에게 닥쳤을 때는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때, 한 사람이 총때를 맸다. 보건복지부 장관도 아니고, 도올 김욕옥도 아니고, 진중권도 아니고, 한 연예인이었다. 배우 정우성이다. 


  배우로서 민감한 사회 이슈의 중심에 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더군다나 이런 이슈에 관해서 대중과 결이 다른 자기 목소리를 낸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사는 연예인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자칫 잘못하다 커리어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우성은 했다. 그동안 쌓아온 호감 이미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정우성이 난민 편에 섰기 때문에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더 관심을 가지고 사안을 들여다봤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책까지 구매했다. (중간중간 나오는 훈훈한 사진으로 안구정화 타임을 가질 수 있다~)


아이들은 배우 정우성이 누군지 모른다. 그저 새로운 사람이 와서 신기해할 뿐이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한 창 잘 나가는 배우로서 탑 연예인의 삶을 살고 있고, 일 년에 광고 한 두 편만 찍어도 풍족한 생활이 가능하고, 방송국에서는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고, 나가서 얼굴을 비추기만 하면 시청률이 팍팍 올라가고 사람들이 너무 사랑해주고...


  이런 상황에서 (돈도 안 되고, 시간도 빼앗기고, 혹시나 추후에 CF 사장님이 최종 계약을 머뭇거리실지도 모르는) 유엔 난민기구로부터 명예사절 제안이 들어왔다면 나라면 과연 그 제안을 받을 수 있었을까?


  배우 정우성은 수락했다. (그 외모에 하는 행동까지 멋있으면 평민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흔히 '성공하면 남을 돕는 좋은 일을 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실행으로 옮기는 경우는 드물다. 성공이라는 기준 자체가 모호하고 상황이 좋아져도 달라진 환경에 금방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99개를 가진 사람이 1개 가진 사람 것을 빼앗아서 100개를 채우려는 탐욕의 존재가 아니던가?..


  책에서 정우성의 학창 시절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1986년에 올림픽을 앞두고 보기 흉하다는 이유로 판잣집을 강제 철거하는 '경관 정화 사업'이 있었다. 이때 정우성은 사당동 달동네에 살고 있었는데, 아랫동네부터 포클레인이 집을 '정화'해오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봤다고 한다. 아마 어린 시절의 이런 경험이 난민 문제에 발 벗고 나서게 하는데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판잣집으로 이루어진 인구 100만의 로힝야 난민촌. 이곳에서의 하루하루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범접할 수 없는 외모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꽃길만 걸을 것 같던 배우 정우성이 난민 문제로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평생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는 인신공격성 발언도 마구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우성은 본인의 생각이 경솔했다고 사과를 하거나 입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흥분하지 않고 일관되게 본인의 의견을 피력했다. 악성 댓글에 대해서도 침착하게 그것은 난민에 대한 '오해'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몰랐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오해 1.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가짜 난민들이 있다.

- 보통 난민 하면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즉 '난민=거지&부랑자'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난민은 예기치 못한 이유로 잠시 고국에 돌아갈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들에게 스마트폰은 고국에 남아 있는 가족들과 연락하고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스마트폰이 절실하다. 그들은 고국을 그리워하며 고국이 평화를 되찾으면 그곳에 돌아가고 싶어 한다.


  오해 2. 난민 속에는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범죄자, 테러리스트, 불법체류자 등이 있다.

- 대한민국은 엄격하고 까다로운 난민 심사 과정이 있다. 국가 차원에서 이들을 잘못 받아들이면 매우 곤란해지기 때문에 치밀하게 조사한다. 그래서 심사 과정이 길어지고, 수백 명의 대기자가 생긴다. 가짜 서류가 통할 여지가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오해 3. 이슬람 난민은 위험하다.

- 일부 극단주의 성향의 무슬림 난민을 부풀린 가짜 뉴스가 많다. 통계를 보면 난민 출신의 범죄자 비율은 기존 거주민 범죄율보다 훨씬 낮다. 극히 소수의 사례를 가지고 이슬람 난민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는 것은 차별적인 시각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설명들이 있지만, 직접 사서 읽는 즐거움을 느낄 여지를 남기기 위해서 이만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문구가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소액이나마 유엔 난민기구에 기부했다.


  정우성은 유엔 난민기구 친선대사 활동을 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을 본인이 직접 부담했다고 한다. 본인에게 줄 비용을 난민들을 위해서 쓰라고 하면서... 마음까지 잘생긴 배우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 난민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난민은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놓은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잠시 머물다 고국이 평화로워지면 다시 돌아갈 사람들이다. 누구라도 난민이 될 수 있다. 책 마지막에 과거 군부시절에 20년 동안 프랑스에서 난민으로 살았던 홍세화 씨의 글을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그가 누구냐면... 아래 책의 저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세상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