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후기

by 홍준오

두꺼운 책 3개 분량을 다 읽어내면 성취감이 생긴다. 1Q84가 그랬다. 1권 첫 장을 폈을 때 끈기 없는 내가 다 읽을 수 있을지 의문이 일었지만 수려한 문장을 더듬거리며 따라가다 보니 마지막 문장에 다다랐다.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활자를 흥미롭게 만드는 작가의 문장력이 존경스러웠다.


책의 내용은 '선구'라고 불리는 종교단체에서 빠져나온 소녀 후카다 에리코가 쓴 '공기 번데기'라는 책을 바탕으로 시작된다. 아오마메와 덴고가 맥락이 통하지 않는 1Q84 세계관에 우연히 발을 들이게 되며 겪는 일들이 중심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추가되는 인물과 얽히는 관계 탓에 '해변의 카프카'처럼 두 세줄의 문장으로 줄거리를 나타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방대한 내용과 다양한 인물이 글의 흐름을 흐리지 않는다. 오히려 가지에 붙은 나뭇잎처럼 맵시를 낸다.


이 작품은 작가의 다른 소설처럼 암시와 비유가 많았다. '1984'의 '빅 브라더'에 대비되는 '리틀 피플', '공기 번데기' 등 생소한 단어들로 채워진 새로운 세계관은 끝까지 직접적인 의미가 설명되지 않은 채 여운을 남긴다. 그렇게 긴 책의 어디에도 직접적인 설명은 없다.


내가 관심 있었던 건 '체호프의 총'에 관한 내용이었다. 체호프는 러시아의 유명 작가로 '1장에 총이 나왔다면 2장이나 3장에는 반드시 총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체호프의 총이다. 즉 이야기에 암시되었던 내용은 어떤 방식이든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아오마메에게 조력자 다마루가 총을 주며 인용한다. 호신용 및 유사시 자살을 위해 산 총이지만 결국 쓰이지 않는다. 또한 책의 여러 암시들이 무용이 되기도 한다. 체호프의 총에 반대된 것이다.


극 중 서로를 사랑한 두 주인공은 예언에 따르면 원래 만나지 못하는 운명이다. 아오마메는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덴고를 지키기로 선택했다. 그러나 그녀는 목숨을 잃지도, 그와의 재회를 실패하지도 않는다. 해변의 카프카와는 다른 전개다. 두 작품 다 암시와 결과가 있다. 그러나 전자는 주인공이 벗어나려 해도 결국 예언으로 향하는 결말이라면 1Q84는 그렇지 않는다는 것에 차이가 있다.


작가가 이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지 골똘히 생각했다. 책의 후반부에 칼융의 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건물의 벽에는 '차가워도, 차갑지 않아도 신은 이곳에 있다.'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 문장을 통해 주제로 닿아보자면 각자의 상실을 겪은 두 주인공들에게 신은 차가운 존재였겠지만 결국 절대자의 자비로 그들의 재회와 생명이 보장되었음을 뜻한다고 해석했다. 늘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엎치락뒤치락하는 우리 인생이 신의 가호와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해석을 내기 위해 번지르르한 말을 써넣었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철학적인 결말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사실 하루키 소설을 읽는 이유가 심오한 인생관 설정과 같은 큰 뜻에 있지 않다. 그저 등장인물들 개개인의 세심한 설정과 묘사로 실존인물의 수기를 보는 듯한 느낌(인물들 각자의 취향이 뚜렷하기에 그들의 세계에 빠져든다)이 좋다. 소설은 다른 매체와 달리 문장이 주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 작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류의 문장을 쓴다.


앞으로도 하루키의 소설을 즐겨 읽을 것 같다. 어차피 내용은 파악하지 못할 테니 재밌는 문장들을 필사하며 여유를 가질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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