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을 몇 권 읽지도 않고 일본소설만을 예찬한 내가 부끄럽다. 고래는 한국소설임에도 내가 기억하는 책들 중에서 최고의 작품이 되었다. 다수의 인물들이 등장함에도 난잡하지 않았고, 책 중간중간 관찰예능의 패널이 한마디 던지듯 나오는 작가의 해설은 충격을 주기도 했다. 내가 아는 딱딱하고 정적인 문학이 아니었다. 예능을 보듯 깔깔 웃기도, 신파극을 보듯 뭉클해지기도, 다큐멘터리를 보듯 사실적인 묘사에 감탄하기도 했다.
책은 국밥집 노파에서 시작해 금복의 생애, 춘희까지 연속해서 진행된다. 내가 가장 재밌게 읽었던 부분은 금복의 생애였지만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계속 생각하게 했던 인물은 춘희였다. 춘희는 벙어리로 태어나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사람들은 상대적 약자인 그녀에게 위해를 가한다. 그녀를 임신시키고 도망치기도, 최악의 방법으로 고문하기도(책에서는 너무나도 끔찍한 고문이라며 묘사를 멈춘다) 한다. 그러나 춘희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미움'이라는 감정이 그녀에겐 존재하지 않는다. 슬픔은 그녀의 안에서만 비롯된다. 이를 나타내는 문장이 있다.
"그동안 새순처럼 여리고 무구한 춘희의 감성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춘희는 자신의 상처를 어떤 뒤틀린 증오나 교묘한 복수심으로 바꿔내는 술책을 알지 못했다."
춘희를 바라보면서 혼란스러웠다. 그녀가 불쌍한 사람인가? 남을 원망하지 않고 살 수 있기에 행운인 건가? 남에게 폐를 끼치며 살아본 적이 없는 무고한 이가 왜 이런 부조리에 아파해야 하는가?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인간이지만, 가장 이성적인 생명체라 불리는 종족이지만, 동정심과 감수성이 몸을 지배하는 개체지만, 가슴 아주 깊숙한 곳에 진화되지 않은 야수의 본능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춘희같이 인간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희생양을 발견하면 마구 물어뜯고 싶은 게 인간일지도 모른다.
책의 후반부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진실이란 본시 손안에 쥐는 순간 녹아 없어지는 얼음처럼 사라지기 쉬운 법이다. 그래서 어쩌면 혹, 그 모든 설명과 해석을 유예하는 것만이 진실에 가까워지는 길이 아닐까?"
어떤 감정은 말로 표현하는 순간 보잘것없는 것이 되곤 한다. 번지르르한 말로 내 감정을 꾸미기보다는 그냥 두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