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를 읽은 후, 천명관 작가는 내 최애가 되었다. 내가 문학을 읽을 때 가장 중시하는 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재치다. 그런 점에서 그는 내 마음속 1등이 되기에 충분하다. 특히 사람이라면 무릇 가지고 있는 찌질함을 꼬집는 능력이 탁월하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의 이상향이다.
누구에게나 정이 도통 붙지 않는 미운 구석이 있다. 난 사람들을 관찰하며 그런 모순된 부분을 분석하는 걸 좋아한다. 변태적인 취미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완벽해만 보이는 사람이 허술한 약점을 보이면 인간미가 느껴진다. 지금의 세상은 완벽을 요구한다. 각자 다른 도덕적 잣대로 누군가를 평가하기에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에 인간의 미운점마저 코믹하게 써내는 천명관 작가가 좋다. 그의 작품 속 인물은 입체적이다. 객관적인 악행을 저지른 인물마저도 이해하게 만들며,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만한 선한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참 좋다.
이 책의 주인공인 도운은 이소룡을 동경한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서자의 운명을 타고난 그에게 야망은 평생을 닿을 수 없는 애절한 짝사랑이 된다. 2권의 책에서 독자는 조카의 시각을 통해 도운의 학창 시절부터 불혹까지 함께한다. 그의 인생은 행복이라고는 없는 최악과 불운의 연속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가슴이 먹먹해 잠시동안 멍을 때리기도 했다. 결말까지 함께 한 독자라면 누구나 여운에 젖을 것임을 확신한다. 그러고는 곰곰이 생각한다. 과연 도운은 행복한 삶을 산 것일까? 작가는 이소룡을 좇다 실패한 짝퉁 인생을 보여주며 어떤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내 나름대로의 해답을 말하자면 작가는 치열한 인생을 살아온 우리 모두에게 위로를 건넨 것 같았다. 사건만을 나열하면 불행할 뿐이었던 인생일지라도, 한 번의 치열한 사랑, 진심을 함께하는 소중한 사람, 모든 걸 걸고 몰입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다면 이소룡과도 견줄 수 있는 위대한 목표를 이룬 것임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소룡과 도운의 차이는 그저 운과 처한 상황에만 있었음을, 삶의 모든 순간 부당했던 도운마저도 행복해질 수 있다. 많은 돈을 벌어 아빠의 차를 외제차로 바꾸고, 엄마의 목에 무거운 목걸이를 달아주고 싶었던 예전의 나의 꿈은 혼자 순댓국 집에 가서 쫄지 않고 수육을 시킬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는 정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