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로 시작해 나의 삼촌 브루스 리를 거쳐 고령화 가족까지 읽으며 3권의 책을 천명관 작가와 함께 했다. 글을 쓰는 지금으로는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를 마치고 유쾌한 하녀 마리사의 첫 장을 폈다. 이제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까지 읽으면 그의 모든 책을 섭렵하게 된다.
그의 책에 대한 후기를 적을 때마다 언급했지만 그의 위트와 인간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참 좋다. 40대임에도 돈이 없어 어머니의 집에 얹혀사는 글의 주인공 인모도, 강간과 폭행 등의 질 나쁜 범죄로 감옥을 집처럼 드나드는 그의 형 한모도, 사정을 모르면 그저 상종하고 싶지 않은 족속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과 살을 비비고, 한솥 끓인 찌개를 각자의 숟가락으로 퍼먹으며 침을 나누고, 욕하고, 저주하고, 웃고, 울다 보면 어느새 가족이 된다.
특히 한모에 대한 애정이 가장 커진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방귀를 뀌고, 조카의 팬티를 훔쳐 수음하는 것을 가족에게 들키기도 한다. 그가 형노릇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한모를 진심으로 가엾어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저 모든 일에 순수한 사람은 아니었을까, 하는 팔불출이 된다.
그의 책에는 소위 '망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구석으로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다시는 행복해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우울하고 음침한 인간들이 그렇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들은 나름의 행복을 찾아간다. 삶을 뒤흔드는 깨달음을 얻지는 못하지만 좋은 구석 하나 없이 꽉 막힌 인생에서 아주 작은 틈이라도 발견한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가장 가까운 소설이 아닐까 한다. 여러 책과 영상에서 말하는 성공하는 방법들이 정말 내 삶을 행복하게 할까? 10분짜리 영상이, 손에 쥘 수 있는 종이 무더기쯤이 과연 내 인생을 바꾸는 지침이 될 수 있을까? 인생을 바꾸는 깨달음은 내 경험과 식견이 쌓이고 쌓여 천천히 변하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크게 변하지 않는 책의 인물들이, 그럼에도 조금씩은 모난 부분이 깎여 나간 변화의 미세한 생채기가 여느 감동적인 책들보다 더 큰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