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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샴페인 May 17. 2020

역사속 스며드는 그녀들의 독서란....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사라 스튜어트의 그림책  <도서관>에는 책벌레 주인공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있다. 청소를 하면서도 그리스 여신들에 관한 책을 보고, 길을 가면서도 책을 본다. 책을 보다가 길을 잃으면 그냥 그곳에 정착을 한다. 그러다 결국 점점 책이 많아져 침대가 부서지고, 책들이 집을 온통 장악해 현관문까지 막히자, 엘리자베스는 책을 마을에 기증하여 작은 마을에는 엘리자베스 도서관이 생긴다.


사라 스튜어트의 글도 좋지만 그녀의 남편인 데이비드 스몰의 그림은 보는 내내, 엘리자베스의 책에 빠져있는 그 색채와 움직임에 편안함과 공감을 자아내 그림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코로나 19로 미술관과 도서관의 출입도 제한되어 있는 상황이다. 생활 방역으로 바뀐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집단감염이라는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되어,  아직은 외부활동에는 무리가 있어서 오랜만에 그림과 독서를 같이 할 수 있는 책 한 권을 골라 진한 커피를 내리고 자리를 잡았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여자의 독서 역사와 여성들이 책을 읽는 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책이다. 제목만으로는 여자의 독서가 어떤  도발적 행위나, 혁명적 역사를 이룬듯한 뉘앙스를 떠올려 볼 만 하지만, 저자는 그림 속에 책 읽는 여성들을 묘사하면서  미학적, 시대적 아름다움에 기준점을 두고, 그 시대에 걸맞은 책을 어떤 자세로 대하고 있는지, 자신만의 환경과 어떻게 융화되어 독서의 역사를 일구어 나가는지 시대적 나열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한 장 한 장 책을 넘길때마다 마치 미술관을 온 듯한 느낌을 주는 거장들의 그림이 펼쳐진다, 그것도 독서를 하는 여성들의 그림이라니... 정신없이 책에 빠져도 시간가는 줄 모를만한 책이다.  보는 내내 나와 책의 간극에 그림속의 여성들이 마치 살아 움직여 나와같은 공간을 채워주는 느낌이다.



여성에게 독서는 허용되지 않는 금기였다


그림속의 여성들이 살았던 시대에는 여성의 독서는 남성들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활자를 읽는 일은 특권층에게만 허락된 일이고, 노동을 강요당하는 시민이나 여성에게는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행위라는 지탄을 받아야만 했다. 1791년에 교육이론가 카를 바우어는 "책을 읽을 때 생기는 신체 활동 부족은 상상력과 감정이 억지로 뒤바뀌는 것과 결부되어서 근육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가래가 들끓고, 가스가 차고, 변비가 생기도록 만들 것이며, 잘 알려진 것처럼 특히 여자의 경우 생식기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라며, 독서를 하는 것은 수명 단축이라는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까지 했다.


그러다 스웨덴에서 1686년에서 1729년 사이에 실행한 문맹 퇴치 운동으로 여성은 건강 담당 관청에서 나누어 준 소책자를 읽고 위생과 자녀 양육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여 영아 사망률을 감소시켜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는 속박에서 벗어남으로써 여성에게 독서의 능력과 새로운 자유 영역이 주어졌다.


피터 얀센스 엘링가의  '책 읽는 여인'은 하녀가 관람객에게 등을 보이고, 가사 노동에서 잠시나마 해방되어 독서의 몰두하고 있는 그림이다. 주변에는 정돈되지 않은 물건들이 있으나, 하녀는 책 속에서 자신만의 감정과 생각에 행복하게 빠져 마음 껏 자신만의 자유를 그속에서 느끼는 듯한 모습을 담고 있다.  독서라는 작은 해방이 한 여인에게 안겨준 자유와 몰입이 내게도 와 닿는 듯한 그림이다..


이렇듯 이제 누구도 여성들의 독서는 막을 수 없었다. 여성들은 독서만이 자신의 현실과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을 것이며, 독서야 말로 유일하게 자신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만의 방'이 없던 시절


버지니아 울프는 <자가만의 방에서>라는 책에서 여성들에게는 필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고 했다. 하나는 돈이고 나머지 하나는 자기만의 방이라는 것이다.


한 여성이 방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녀가 방으로 들어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그녀가 말할 수 있으려면, 언어가 가진 자원이 훨씬 늘어야 하고 모든 단어들은 날개를 달고 뻗어나가 파격적으로 새롭게 탸어나야 할 겁니다


지금은 핵가족화되고 주거가 모두 안정되어 여자들에게는 읽고 쓸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모두 갖추어져 있지만, 16~17세 유럽에는 개인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개념이 없어 소리 내지 않고 책을 읽는 차분함과 고요함을 발견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양반가의 아낙네가 아니면 개인 공간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었고, 일제시대와 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여성들에게 자신만의 공간이나 시간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독서를 즐기며, 책 안에서 사유를 마음껏 누리고 즐겼던 많은 선구적인 여성들이 존재하였다는 것에, 요즘 같은 어디서든지 책을 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과 행복감을 가지게 되면서  그 시대 여성들에게 존경심마저 든다.


이 책의 역자는 책 중간중간에 책 읽는 여자라는 코너에서 여자의 독서에 대한 어려웠던 환경에 대한 부연설명을 해 주고 있다.


엄격한 가장의 눈길을 피해서 여자가 자신이 원하는 책을 비교적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곳은 침실뿐이었다. 집 안의 다른 장소는 가사를 수행해야만 하는 노동의 장소였고, 항상 가장의 눈길에 노출된 자유롭지 못한 공간이었다. 여자에게 침실은 노동의 피로를 풀로 안식을 취하는 휴식공간이며, 동시에 책 읽기의 즐거움과 상상력을 숨길 수 있는 은밀한 피난처가 되었다.


책 읽는 여자의 도도함은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다.


비토리오 마테오 코르코스  '꿈'은 벤치에 매력적인 자신감을 뿜어내는 여인이 지금 막 책을 읽고, 책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는 그림이다. 도도하게 다리를 꼬고 한 쪽 손을 턱에 궤고 있는 그녀옆에는 책이 3권이 놓여 있다.  책에 눌려 장미가 떨어져 있는 이 그림은 순결의 상징인 장미를 표현함으로써 반항적으로 치켜든  자의식이 강한 이 여인의 모습을 표현했다. 아마 이 모습도  독서가 일정한 몫을 담당했을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여성의 독서는 더 이상 대상화가 되는 것도 거부할 수 있고, 문화적 인습이나 편견에 순응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런 힘이 있기에 많은 핍박과 고된 노동에도 독서를 포기할 수 없었고, 또한 그러한 그들의 투쟁적 독서가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방대한 독서를 마음껏 누릴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지도...


엘케 하이덴라이히는 "독서가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제안으로 제시되는 우스운 이야기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다.., 현 존재를 견디는 유일한 방식은 영원히 지속되는 광란의 축체처럼 문학에 열광하는 것이다" 는 말로 이 책에 추천사를 썼다. 독서를 하면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삶도 함께 사는 것으로,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때로는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의 삶을, 전쟁을 누비는 전사의 삶을, 사랑에 온 생을 마치는 여인의 삶등을 살아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디어가 난무하고, 온갖 SNS로 우리의 시간이 도난당하는 지금의 우리들은 독서에 대한 갈증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모든 노동이 자동화되어가고, 가사노동이 남녀 공동분담으로 가는 지금에도 여성들의 독서는 얼마나 성장하고, 깊이가  더 해졌는지 우리 스스로 반성해 볼 문제이다. 미디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무시할 수 없지만, 소리 없이 침착하게 홀로 자신만의 시간에 이루어지는 사색과 독서는 한 시대에 여성들에게는 생존과도 같은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과연 우리의 생각과 눈을 다른 곳에 흘릴 수 있을까?


여자들이여, 책과 동행하라! 책과 함께 성장하라! 책을 통해 생각을 다듬고, 꿈을  키우고 친구를 얻고, 동지를 얻고, 선생을 발견하라.
<여자의 독서>, 김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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